물건이나 서비스를 구입할 때 미리 돈을 지불하기도, 나중에 계산하기도 하는데.
어떤 서비스를 받았을 때 고맙고 흡족하면 일이 끝난 뒤 팁을 준다.
서구의 팁 문화가 우리에게는 불편한데,
식당 음식 값에 서비스 인건비가 포함되어 있지 않다, 고 생각하면 팁 문화가 이해되더라.
그러니까 주문을 받고 밥을 갖다 주며 다 먹은 그릇을 치워주는 데 대한 비용은 손님이 지불하는 시스템이랄지.
영국의 근대 초 소설 중에 하인이 일을 잘했거나 직무에 충실할 때 그 자리에서 주인이 돈을 주며 칭찬하는 부분이 있었다.
영국 귀족 집안의 집사를 위시한 일꾼들에 관한 책을 읽어보니
주인이나 손님들이 하인들에게서 좋은 서비스를 받으면 그렇게 즉석에서 팁을 주었다고 한다.
심지어는 하인들이 손님들에게 팁을 강요하기도 했다고.
귀족 행세라는 게 돈도 많이 들고 격식도 복잡하니 인생 어렵게 사는구나, 싶었다.
서비스를 받은 뒤에 좋은 마음으로 주는 돈이 팁이라면.
우리 어릴 때 흔했던 '와이로'라는 말은,
당연한 절차인데도 불이익을 받지 않으려고 관련자에게 먼저 돈봉투를 건네거나,
아는 사람을 동원해 일이 진행되도록 하는, 거의 의무 수준이었다.
안 하면 불이익이 있으므로 울며 겨자 먹기로 해야 했다.
이렇게 당연히 돼야 하는 일을 순탄하게 되도록 '와이로'를 써야 했다면.
안 되는 일을 하도록 만드는데도 '와이로'가 동원됐다.
즉, 뇌물.
'와이로'가 있으면 안 되는 일이 없다, 는 상식이었지.
요새 해외여행하는 우리나라 청년들이 국경 넘어갈 때 트집 잡으며 돈을 뜯어내는 관리들의 부당한 행위에 분개하는데,
예전 우리나라에서 부정부패가 일상이었다는 점을 말하고 싶다.
그런 세상을 살아온 세대가 지금의 노인들이고.
그러니 그분들의 오묘한 가치관이 이해불가인 거다.
우리 아버지는 그 시대를 살아가시면서 와이로를 정말 싫어하셨다.
남한테 밥도, 술도 잘 사시고 경조사에 부조를 아끼지 않으셨지만,
와이로 같은 부정한 거래는 경멸하셨다.
나도 팁은 기분 좋게 건네지만 와이로처럼 미리 돈을 주는 행위는 마치 내가 부당한 이득을 요구하는 것 같아 싫다.
일부러 안 한다.
그런 식으로 대접받고 싶지 않다.
그런데 어른이 되어 생활인으로 살아보니 돈의 문제가 그리 단순하지는 않은 거구나, 깨닫는다.
어떤 일을 할 때 잘해주면 끝난 뒤 고맙다고 물론 인사하지만.
그 일을 하는 사람이 나중에 보답을 받을지 말지 눈치 보는 분위기가 너무 싫다.
그분들께는 팁을 받느냐 여부가 수입이 되기도 하기 때문에 신경 쓰이는 것이다.
그래서 일 중간쯤에 "식사하세요" 하면서 봉투를 건네거나 작은 선물로 고마운 인사를 미리 할 때도 있다.
그러면 받은 입장에서는 안심이 된달까, 부담을 갖는달까.
어른으로 살아가는 시간은 여러모로 고려할 것도 많고 신중하게 행동할 것도 많으며,
돈도 필요하다.
그래, 맞다.
내가 아무리 돈보다 귀중한 게 훨씬 많다, 고 강조하지만.
돈이 요긴한 순간이 적지 않다.
아, 언제나 우리는 돈에서 해방되어 진정 자유로울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