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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에 남긴 풍경들
권진규의 사랑
마음에 남은 풍경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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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는 달려가고
Aug 20. 2022
봄에 서울시립미술관 본관에서 열린 권진규 전시회에 관한 짧은 글을 썼었다.
전시회도 여러 번 보았고 아틀리에에도 가보았고.
두 조카분께서 특별 도슨트가 되어 각각 소개하는 작품 해설도 모두 들었으며.
권진규에 관한 책도 몇 권 읽었다.
마음을 꽉 채우는 울림이 있어서 언제 조각가 권진규에 관한 글을 써보고 싶은데
.
지금은 정리되지 않은 소감들이 뒤엉켜 있어서 아직은 쓰지 못하겠다.
먼저 그의 사랑을 이야기해보고 싶다.
뒤늦게 일본 도쿄의 무사시노 미술대학에 입학한 권진규는 '도모'라는 어린 여학생과 사귀게 된다.
권진규의 작품 모델이 된 도모와 나중에는 함께 살면서
생활비를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해야 하는 고달픈 나날이었으나,
두 사람은 최대한 낭만적으로 살면서 작품 활동도 활발하게 했다.
방학에는 도모의 본가 별장에 머물며 작품 제작을 하거나,
그 아버지의 의뢰를 받거나 소개를 받아 작품을 팔기도 하는 등,
도모의 가족과도 좋은 사이였던 것 같다.
그렇게 몇 년.
한국에서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셔서 어머니가 홀로 되시기도 했고.
또 이제는 독자적인 작품 세계에 도전할 시기가 되었다는 마음에서,
일본에의
귀화나
정착 대신 한국에 돌아가기로 한다.
1959년인 그때,
한국과 일본은 수교가 없었으니 도모를 동반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가능했다 하더라도 각오만 있을 뿐,
한국에서 자신의 앞날이 가늠되지
않는 처지였으니 무작정 도모와 함께 움직일 수도 없었으리라.
출발 한 달 전,
그는 도모와 혼인신고를 하고.
곧 데리러 오겠다, 는 말을 남기고 비행기를 탄다.
그러나,
열심히, 정말 열심히 작업했지만.
생활 기반도, 작업 환경도 도무지 만들어내지 못한 권진규는,
당시 일본과 소식을 주고받기 어려운 이유도 있었겠지만.
그 꼿꼿한 성품에 구구절절 자신의 고달픔과 절망을 도모에게 토로하지도 못했으리라.
그렇게 무심한 듯 보이는 5년을 보냈을 때 화가 난 장인은 이혼 서류를 보내왔고.
무력한 권진규는 서류에 도장을 찍어 보낼
밖에.
다시 시간이 지나 도쿄의 화랑에서 초대전을 열게 되어 작가로서의 돌파구와,
내심 도모와의 재회를 꿈꾸며 심혈을 기울여 제작한 작품을 들고 일본으로 갔는데.
...
전시회 첫날 전시장에 나타난 도모는,
"권 상, 바보!" 라 외치더니 한없이 울었고 권진규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고 한다.
도모는 재혼을 한 상태였다.
며칠 뒤 일본 후배 앞에서 눈물을 주르르 흘렸다고.
그가 살고 작업하던 동선동 아틀리에는 산비탈, 꼬불꼬불 가파른 마지막 집이었다.
볕이 잘 드는 작은 마당이 있어서,
작가의 고달픈 나날에 위로가 되었겠지,
마음이 좀 놓이더라.
마루에 있는 스크린에서는 작가를 다룬 동영상들이 반복해서 돌아가고 있었다.
예전 도모가 살아있을 때 방송사에서 인터뷰를 했더라.
"작가는 먼 곳을 바라보는 사람이었습니다."
"그와 함께 한 시간이 참 좋았습니다",라고 늙은 도모는 담담하게 말했다.
그 사랑 때문에, 그 사람 때문에
얼마나 가슴 저리고 마음 아픈 나날을 보냈을 텐데.
그 고통을 모두 지나
"그와 함께 할 수 있어 좋았습니다",
두 사람 모두 같은 심정이 아니었을까.
사실 사랑이란,
그거면 된 거 아닐까.
아픔은 시간으로 흘러갈 테니.
서로에게 꽉 찬 마음을 가졌던 그날이면 좋으리라.
작품 《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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