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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차는 달려가고 Aug 07. 2022

조지 오웰이 말하는, 글 쓰는 동기

책을 기록함

<조지 오웰 산문선>

조지 오웰 지음, 허진 옮김, 열린책들 출판



조지 오웰 산문집을 읽었다.

작가의 다양한 글이 실려 있는데,

이 내용은 브런치에 글을 올리는 분들과 공유할 수 있는 관심사라 옮겨본다.



<나는 왜 쓰는가>-라는 글은 작가가 1946년에 쓴 산문이다.

작가는 작가들이 글을 쓰는 주요 동기로 다음의 네 가지를 꼽고 있다.


나는 글을 쓰는 데에는, 어쨌든 산문을 쓰는 데에는 생계 수단의 필요성을 제외하고 네 가지 주요 동기가 있다고 생각한다. 각각의 동기를 어느 정도 가지고 있는지는 작가마다 다르고, 같은 작가라 해도 그가 살고 있는 상황에 따라 그 비율이 때때로 달라질 것이다.  (11쪽)


라고 하면서,

   1. 순전한 자기만족,

   2. 미학적 열정,

   3. 역사적 충동,

   4. 정치적 목적,

 네 가지를 지적한다.


특히 작가는 <정치적 동기>상세히 설명하는데 이는 작가가 살아온 시대,

자신의 가치관과 깊이 연관되어 있다.

다소 길지만 작가가 서술하는 <정치적 동기> 부분을 인용해보자.


세상을 특정한 방향으로 추진하고 , 우리가 어떤 사회를 추구해야 하는지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을 바꾸고자 하는 욕구 역시 그 어떤 책도 정치적 편견으로부터 진정 자유롭지 않다. 예술은 정치와 상관이 없어야 한다는 생각 자체도 정치적 태도이다.

 ....

평화로운 시대였다면 나는 아주 수사적인 책이나 묘사 밖에 없는 책을 썼을 것이고, 나의 정치적 성향을 거의 인식하지 못했을 것이다. 사실 나는 어쩔 수 없이 소책자 작가 비슷한 것이 되었다. 나는 맨 처음 5년 동안 나와 맞지 않는 일(버마에서 인도 제국 경찰로 일했다)을 했고, 그 뒤에는 가난하고 실패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권위에 대한 타고난 증오가 더욱 커지고 처음으로 노동 계급의 존재를 완전히 인식하게 되었으며, 버마에서 겪은 일을 통해 제국주의의 본질을 어느 정도 이해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경험만으로는 확실한 정치적 지향점을 가질 수 없었다. 바로 그때 히틀러가 등장했고, 스페인 내전 등의 사건이 발생했다. 1935년 말경에도 나는 실한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12,13쪽)


그러니까 사람의 '정치적'  태도라는 게 별다른 것이 아니라 이 세상과 사회에 대한 해석,

그리고 세상에 대한 자신의 기대가 아닐까?


사람은 누구나 '이상적인 세상'에 대한 열망이 있을 테고.

이상향을 향해 나아가려는 욕망에 누구보다 열심인 사람이,

그 열망을 타인들과 함께 나누려는 사람이 작가일 터.

세속에서의 권력과 상관없이 이상향에 대해 생각하고, 말하고, 실천하는 평범한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행위가 바로 '정치적인 태도'라고 작가는 설명하는 것이리라.


그리하여 작가의 정치적인 견해는,

작가가 살아간 시대와 작가의 평소 가치관이 어우러지면서 점점 입장이 확실해진다.


스페인 내전과 1936~37년의 사건 때문에 저울이 반대쪽으로 기울었고. 그때 나는 내가 어디에 서 있는지 깨달았다. 1936년 이후 내가 쓴 진지한 작품은 한 줄 한 줄 모두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내가 아는 전체주의에 <반대>하고 민주 사회주의에 <찬성> 하기 위해서 쓴 것이다.... 자신의 정치적 성향을 잘 인식할수록 미학적, 지적 진정성을 희생시키지 않으면서 정치적으로 행동할 기회가 더 많다.

지난 10년간 내가 가장 하고 싶었던 것은 정치적 글을 술로 승화하는 일이었다. 내 출발점은 항상 당파성을, 불의를 감지하는 것이다. 나는 <예술 작품을 만들어 내겠다>라고 말하면서 자리에 앉아 책을 쓰는 것이 아니다. 내가 글을 쓰는 것은 폭로하고 싶은 거짓말, 사람들의 주의를 끌고 싶은 어떤 사실이 있기 때문이며, 나의 가장 최우선적 관심사는 사람들이 귀를 기울이게 만드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또한 미학적 경험과 무관한 것이었다면 책을, 또는 장문의 잡지 기사조차도 쓰지 못했을 것이다. 내 작품을 신경 써서 읽은 사람이라면 노골적인 선전문이라고 해도 전업 정치인이 본다면 엉뚱하다고 여길 만한 내용이 많이 담겨 있음을 알아차릴 것이다. 나는 어린 시절에 습득한 세계관을 전히 버릴 수 없으며, 버리고 싶지도 않다.  (15,16쪽)



아프고 괴로운 현실을 응시하고 통찰하여  본질을 꿰뚫고.

정확하고 간결하며 일상적인 언어로 세상을 재구성하여 보여주는 작가의 작품들에는,

세상을 보다 아름다운 곳으로 이루려는 작가의 노력이 바탕이 된 것이다.


그래서 작가는 자신이 써낸 작품들을 이렇게 소개한다.


최근 몇 년 동안 내가 그림같이 아름다운 글보다는 정확한 글을 쓰려고 노력해 왔다는 말만 해두기로 하자....『동물농장』은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완전히 의식하면서 정치적 목적과 예술적 목적을 하나로 통일하려고 시도한 첫 번째 책이다..... 나는 내가 어떤 책을 쓰고 싶은지 정확하게 알고 있다. (17쪽)


내가 글을 쓰는 동기가 공공심(公共心)밖에 없다는 듯이 말한 것 같다. 나는 그것을 마지막 인상으로 남기고 싶지 않다. 모든 작가는 허영심이 강하고 이기적이며, 게으르고 가장 밑바닥에 깔린 동기는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 책을 쓰는 것은 고통스럽고 기나긴 병치레와 같아서 끔찍하고 기진맥진한 싸움이다. 저항할 수도 이해할 수도 없는 악마에게 사로잡히지 않는다면 우리는 절대 그런 일을 시작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아는 한 이 악마는 아기가 관심을 끌려고 울부짖는 것과 똑같은 본능이다. 그러나 작가가 자신의 존재를 지우려고 끊임없이 싸우지 않는 한 읽을 만한 글을 쓸 수 없다는 것 역시 사실이다...... 나는 어떤 동기가 가장 강한지 단언할 수 없지만 어느 동기를 따라야 하는지는 안다. 내 작품들을 돌이켜 보면 항상 <정치적> 목적이 없을 때는 생명력 없는 글을 썼고 화려한 문단, 의미 없는 문장, 장식적인 형용사에 현혹되어 전체적으로 실없는 글이 되었다. (18쪽)

                                                            


허접한 글 밖에 쓰지 못하는 사람도 쉽게 글을 쓰지는 못한다.

하물며 조지 오웰 같은 대단한 작가는,

아무리 뛰어난 재능을 타고났다 하더라도,

자신의 존재를 글쓰기에 전부 내던젔으리라.


덕분에 우리는 세상을 통찰하는 좋은 글을 읽을 수 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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