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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차는 달려가고 Aug 13. 2022

알베르 카뮈의 <페스트>

책을 기록함

<페스트>     

알베르 카뮈 지음, 유호식 옮김, 문학동네          



도서관에서 서가를 살피는데 카뮈의 <페스트>가 눈에 띄었다.

끝나지 않는 팬데믹 시대를 살아가느라 그랬는지 저절로 소설에 손이 나가네.

세상을 몰라서 고뇌도 없었던, 얄팍했던 그 시절에 이 소설을 읽었었는데,

그때 나는 어떤 소감을 가졌었을까?


도시 봉쇄까지 이르지는 않았지만 막막한 역병의 시간을 살아내는 경험 때문인지.

인구 20만, 알제리 해안가 도시 오랑에서 겪어내는 페스트 상황이 마음에 쏙쏙 와닿았다.

이게 도대체 무슨 일? 어리둥절하다가.

점점 목을 죄어오는 재난에 두려워하며 감각과 감정을 잃으며 삭막해지는 마음들.

어서 재난이 끝나기만을 바라면서 속수무책, 무기력하게 상황을 그저 견딜 뿐이다.


단순히 전염병으로 고통받는 특별한 시기만이 아니라,

어쩌면 인간이란 고난과 불안과 암담한 재난을 몰고 오는 악의 씨앗을 품고 있기에...

결국은 조리하고 어리석으며 악이 득세하는 이 세상에서 답답하고 힘겹게 고군분투하 인간들의 이야기가 아닌가, 암울한 기분이 들었.



작가는 소설에서 재난의 시기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여러 행태를 그려내는데.

이름을 밝히고 등장하는 인물들은 대체로 기필코 고난을 극복하려는 의지를 가진, 이타적이고 긍정적인 사람들이다.

특히 의사 외는 애당초 이런 사람이었다.


리외는 .... 자신의 발언은 현재 살고 있는 세계에 대해 혐오감을 느끼면서도 인간에 대해서는 애정을 간직하고 있고, 또 나름대로 불의와 타협을 거부하기로 결심한 한 남자의 발언이라고 담담하게 말했다.

 (22쪽)

     

의사 리외는 여러 환자들에게 나타나는 치명적인 증상이 전염병임을 인지하자 적극적으로 대처하도록,

미온적인 관청을 설득한다.

리외는 전지전능한 초인이 아니다.


의사 리외도 다른 시민들과 마찬가지로 아무 대책이 없었다. 그의 망설임은 그렇게 이해해야 한다. 그가 불안한 마음과 믿음을 동시에 갖고 있었던 것도 마찬가지로 그렇게 이해해야 한다. 전쟁이 일어나면 사람들은 “오래 안 갈 거야. 너무 어리석은 짓이야”라고 말한다. 전쟁이 어리석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그렇다고 해서 전쟁이 금방 끝나는 것은 아니다. 어리석음도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만약 사람들이 항상 자기만 생각하지 않았다면 그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재앙은 비현실적인 것, 곧 지나가버릴 악몽에 불과한 것으로 여긴다. 재앙이 지나가버릴 때도 있지만 항상 그런 것은 아니다.  

(50, 51쪽)



인간에 대한 애정을 갖고,

사람들이 겪어야 하는 이별의 아픔에 공감하면서.

용기를 잃어가는, 미쳐가는, 열악해지는 생존의 조건에서.

최소한의 품위도 지키지 못하고 땅에 묻히는 죽은 자들을 보면서.

단지 페스트의 종말을 위해,

전염병에 굴복하지 않고 반드시 해방의 순간을 앞당기기 위해,

그 무언가를, 자신의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었다.

비록 치료가 아니라 단지 진단하고 서류를 작성하는 역할이라는 자괴감으로 괴로워하면서도.


어떤 방법으로든 싸워야 하며 무릎을 꿇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문제는 최대한 많은 사람을 살리는 것, 그들이 돌이킬 수 없는 이별을 경험하지 않게 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하려면 방법은 하나밖에 없었다. 바로 페스트와 싸우는 것이었다.  

(159쪽)


"... 이 모든 것은 영웅주의와는 아무 상관이 없어요. 이건 성실성의 문제예요. 비웃을지 모르지만, 페스트와 싸우는 유일한 방법은 성실성입니다.".....

"일반적인 의미에서는 잘 모르겠어요. 하지만 나를 예로 들면, 성실성은 내 직분을 완수하는 거예요."

(194쪽)



의사 리외에게서 정은경 전 질병청장 님의 모습이 보였다.

그렇게 순수하게 직분에 헌신하면서도 악의와 모함에까지 시달려야 했던 분.


무거운 업무에서 벗어나셨으니,

개인적인 행복을 맘껏 누리시기를 기원합니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고맙고 감사하고 존경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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