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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차는 달려가고 Aug 17. 2022

벨 에포크 시대에 대한 조지 오웰의 시각

책을 기록함

시기에 관해서는 다소 이견이 있지만,

대체로 1차 세계대전 발발 이전의 이십 년 이상 기간을

서구에서는 '아름다운 시절'이라는 뜻인 "벨 에포크" 시대라 부른다.


산업혁명, 과학 발달, 민주주의와 민족주의의 발전, 제국주의의 절정으로.

물질적인 풍요 속에서 문화적인, 학문적인, 산업적인 발달과 근대국가의 융성을 구가했던 이 시기에.

서구 문명은 인류의 힘과 인간 사회의 무한한 발전과 번영을 믿으며 자신만만해했었다.



그러나 이런 풍요와 낙관은 세계 1차 대전으로 박살이 나는데,

사실 "아름다운 시절"이란 지구 위 오직 한 줌의 인간들만 그 결실을 누리던 것이었으니.

세계 곳곳 식민지 지역과 자국의 노동 계급에 대한 비열하고 잔인한 수탈 위에 지어진 뜬구름이었다.

조지 오웰은 이 화려한 벨 에포크 시절 부유층에 널리 퍼졌던 속물적인 가치관과 공고한 계급사회를 증언한다.


1903년에 태어난 조지 오웰은,

1911년, 8세의 나이에 집을 떠나 사립학교에 입학하기 위한 고급  기숙 예비학교에 입학하게 된다.

넉넉지 않은 집안 출신으로 조지 오웰은 어릴 때부터 명석했는지 장학생으로 뽑혀 입학했는데.

작가는 <즐겁고도 즐거웠던 시절>

-( <조지 오웰 산문선>, 조지 오웰 지음, 허진 옮김, 열린 책들 출판)

이라는 반어적인 제목을 가진 글에서 자신의 소년기를 회상하며 벨 에포크 시대의 이면을 드러낸다.



세인트시프리언스는 학비가 비싸고 속물적인 학교였고, 더욱 비싸고 속물적인 학교로 변하는 중이었다....

대부분 부잣집 아이들이었지만 대체로 귀족 혈통이 아닌 부자, 본머스나 리치먼드의 거대한 관목으로 둘러싸인 저택에 살면서 자동차와 집사도 있지만 시골 영지는 없는 사람들이었다. 외국인도 있었다. 남미 아이들, 아르헨티나 쇠고기 갑부의 아들들, 러시아인 한두 명, 심지어는 샴의 왕자 비슷한 아이도 하나 있었다.

샘보에게는 크나큰 야망이 두 가지 있었다. 하나는 작위를 가진 아이들을 입학시키는 것이었고, 또 다른 하나는 학생들을 가르쳐서 퍼블릭 스쿨에, 그중에서도 이튼에 장학생으로 진학시키는 것이었다. 내가 졸업할 즈음 샘보는 진짜 영국 작위를 가진 학생을 두 명 확보했다....... 아이들 면전에서 <누구누구 경>이라고 불렀다. 손님에게 학교를 안내할 때면 갖가지 방법으로 이 아이들을 주목하게 만들었다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아주 부유한 아이들은 대놓고 편애를 했다....

아버지의 연수입이 2천 파운드를 훌쩍 넘는 아이들은 절대 매를 맞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샘보는 가끔 학교의 명성을 위해 금전적 이익을 기꺼이 포기하기도 했다. 장학생으로 명문 학교에 진학해서 학교의 명성을 높여 줄 만한 아이들은 아주 저렴한 학비만 받고 입학시켰던 것이다. 나 역시 그러한 조건으로 세인트시프리언스에 들어갔다.

(338, 339, 340쪽)



아이들을 제대로 먹이거나 돌보지도 않고 아주 폭력적이고  불결한 환경 속에서,

오직 명문 사립학교 입학을 위한 시험 답안지를 맞추는, 지극히 비교육적인 가치관과 과정으로 운영되는 이 비싼 기숙학교에.

부모들은 명문 사립학교 입학을 바라보며 어린 자녀들을 들여보낸다.

거칠고 불공정하며 속물 그 자체인 환경 속에서 아이들은 서로 집안의 부유한 정도와 계급을 따지면서,

른 세상, 다른 가치관은 알 지도 못한 채 약육강식, 각자도생으로 자라난다.


지금 돌아보면 우리 모두가 얼마나 스스럼없고도 총명하게 속물적이었는지, 이름과 주소를 얼마나 잘 외웠는지, 말투와 몸가짐과 재단된 옷의 미세한 차이를 얼마나 재빨리 알아차렸는지 정말 놀랍기만 하다. 좁고 비참한 겨울 학기 중간에도 땀구멍에서 돈이 뚝뚝 떨어지는 듯한 아이들이 있었다. 특히 학기초와 학기말에는 스위스에 대해서, 스코틀랜드의 사냥터 안내인과 뇌조 사냥에 대해서, <삼촌의 요트>와 <우리 시골 영지>와 <내 조랑말>과 <우리 아버지의 관광 자동차>에 대해서 순진하면서도 속물적인 대화가 오갔다. 세계 역사에서 1914년 이전만큼 천박하고 기름진 부가 귀족적 우아함이라는 장식조차 없이 노골적으로 드러난 적은 없었다. 당시는 정신 나간 백만장자들이 실크해트에 라벤더색 조끼를 입고 템스강의 숙박설비가 딸린 로코코식 요트에서 샴페인 파티를 열던 시대, 저글링 장난감과 통 좁은 치마의 시대, 회색 중산모를 쓰고 앞자락이 비스듬한 상의를 입은 <멋쟁이>의 시대, 「즐거운 과부」와 풍자 작가 사키의 단편들과 피터팬과 「무지개가 끝나는 곳」의 시대, 사람들이 초콜릿과 련을 즐기고, 근사하고 뛰어나고 훌륭하다고 이야기하던 시대. 브라이튼에서 천국 같은 주말을 보내고, 파리의 토르카데로 카페에서 맛있는 차를 마시던 시대였다. 1914년 이전의 10년은 더욱 천박하고 미숙한 사치의 냄새를, 머릿기름과 박하향 술과 초콜릿 푸딩의 향을 풍기는 듯하다.... 놀라운 것은 다들 영국 상류층과 중상류층의 넘쳐나는 부가 영원히 계속되리라고, 그것이 만물의 질서라고 당연시했다는 점이다. 1918년 이후에는 완전히 달라졌다. 속물근성과 값비싼 습성이 돌아온 것은 분명했지만, 다른 사람의 시선을 신경 썼고 방어적이었다. 전쟁 전에는 돈을 숭배하면서 반성하지도, 양심의 가책에 시달리지도 않았다. 돈의 미덕은 건강이나 아름다움의 미덕만큼이나 확실했고,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번쩍이는 자동차와 작위. 하인 군단이 도덕관념과 뒤섞였다.

(374, 375쪽)


미덕은 다른 사람보다 크고, 힘세고, 잘생기고, 돈 많고, 인기 많고, 우아하고, 비양심적인 것이었다. 즉 다른 사람들을 지배하고, 괴롭히고, 고통스럽게 만들고, 바보처럼 만들고, 모든 면에서 그들을 앞서는 것이 미덕이었다. 삶은 위계였고, 그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든 옳았다. 강자는 이기는 것이 당연하면서 실제로도 항상 이겼고, 약자는 지는 것이 당연하면서 항상, 언제까지나 졌다.

나는 이 일반적인 기준에 의문을 제기하지 않았다. 내가 보기에는 다른 기준이 없었기 때문이다. 부유한 자, 힘센 자, 우아한 자, 세련된 자, 강력한 자가 어떻게 틀릴 수 있을까? 그들의 세상이었으므로 그들이 만든 규칙이 옳을 수밖에 없었다.

(379쪽)



내가 이 글에 유난히 마음이 쓰이는 이유는 지금 바로 이 시대가 어느 하나 빠짐없이 조지 오웰의 묘사와 지극히 닮아 있기 때문이다.


나중에 우리 역시 이 시기를 "아름다운 시절"이었다면서 그리워할까?

손아귀에서 영영 빠져나간 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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