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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차는 달려가고 Oct 09. 2022

미켈란젤로

책을 기록함

미켈란젤로에 관한 책을 읽고 있다.


<미켈란젤로, 생의 마지막 도전>, 윌리엄 E. 윌리스 지음, 이종인 옮김, 책과함께,



내가 첫 해외여행에서 이탈리아에 갔을 때.

미켈란젤로가 젊어서 조각한 '피에타'를 보았다.

(제목 배경 사진)

1980년대인 그 시절에는 관람객들이 작품 사진 찍는 행위가 금지되지 않았을 때라 그 앞에서 찍은 사진이 있다.

눈알이 빨갛게 나온.


그림을 그리고, 대리석을 조각하고, 건물을 설계하고 건축 현장을 지휘한 이 다재다능한 천재는,

70세가 넘어서 바티칸의 성 베드로 대성당 건축을 맡았다.

로마에 다시 가게 면 미켈란젤로 작품들과 그의 자취를 쫓는 것만으로도 한참을 머물러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인생사가 그렇듯,

예술가가 작품을 이루기 위해 예술만 하는 건 아니었다.

순수한 열정과 영감과 재능의 결합체인 예술 작품을 만들어 내기까지,

지극히 현실적이고 세속적인 과정을 포함한다.

미켈란젤로가 오랫동안 여러 건축가들의 손을 거치며 공사가 진행되어 온 '성 베드로 대성당'의 건축을 맡게 되었을 때,

권력자인 교황의 결정과 후원으로 전권을 부여받았지만.

행정적인 실무를 맡고 있는 기구와 그 임원들의 방해와 군림에 맞서거나 설득해야 했고.

사망한 전임 건축가들의 오류를 바로잡고 자신의 구상을 실현하는 과정에서 전임자의 손발이었던 작업자들의 반발을 무마해야 했다.


더하여 건축적인 구상과 미학과 신앙심을 총괄하는 예술적인 설계안을 제시하는 동시에,

밧줄의 표준화나 작업자의 작업시간 조정, 납품 업자들의 농간을 꿰뚫고 가격을 협상하는 세부적인 작업 실무까지 일일이 챙기면서,

예술가는 실무자들의 인정과 협력을 받아내고 자신의 예술적인 구상을 실현해나갈 수 있었다.


1557년에 미켈란젤로는 82세가 되었다. 그는 대규모 노동력, 거대한 작업장, 복잡한 사무, 건설의 전반적 공정, 이  모든 일을 관할했다. 그는 예술가인가 하면 건설 공사의 현장 소장이고, 장인인가 하면 사업가이고, 천재인가 하면 기업가였다. (295쪽)



그뿐만이 아니었다.

정치적으로 불안정한 시기인 데다 그의 작품들이 혼자 힘으로는 이룰 수 없는 대역사인지라,

반드시 엄청난 비용을 대는 후원자가 필요한 일이니.

연이은 교황들의 사망으로 권력자는 여러 번 바뀌었고

그때마다 공사는 중단되면서 새로 선출될 교황의 뜻을 기다려야 했다.

또한 적과 동지가 수시로 바뀌는 불안정한 정치 구도에 첩자와 밀고가 날뛰던 시절이라 극도로 처신을 주의해야 했으니.

즉, 개인적인 호불호나 판단을 드러내지 않아야 했다.

예술가의 재능과 업적을 질시하여 모략하는 못난 사람들은 항상 존재하니 이 또한 견뎌내야 하는 일상이었다.


고령의 예술가는 믿고 가까이 지내던 주변 사람들의 죽음을 연달아 겪고.

자신의 죽음을 항상 염두에 두면서 벅차고 어려운 대성당의 건축과 교황이 주문한 다른 여러 작업들까지 동시에 감당해야 했다.

때로는 이것들이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헛되고 헛되다는 생각으로 극심한 우울과 좌절빠지기도 했는데.



무엇을 이룬다 함은,

순수한 재능과 열정과 성실함과 헌신 같은 긍정적인 모든 요인에 더해서.

지극히 세속적인 절차, 인간들의 악의, 고된 노동과 지루한 협상, 돈, 지식, 정보를 모두 처리해야 하고.

끝없는 참을성, 기다림, 희망과 믿음까지 인간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동시에 해내야 한다는 의미임을 다시 확인한다.


아무나 못함.

재능은 필요조건일 뿐, 결코 충분조건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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