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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차는 달려가고 Apr 14. 2022

빅토르 위고에 대한 프랑스 사람들의 사랑

끄적끄적

어렸을 때 <장발장>이라는 동화책으로 읽었던 슬픈 이야기는,

프랑스 작가 빅토르 위고가 쓴 소설 [레 미제라블]을 간략하게 줄인 것이었다.

도독과 사제와 어린 소녀가 이끌어가는 줄거리만 알고 있지,

그 안에 담긴 작가의 인간에 대한 이해와 사회에 대한 이상을 미처 알지 못했었다.


앞에서 소개한 책 [로맨틱, 파리]- 데이비드 다우니 지음, 김수진 옮김, 올댓북스 출판-에는 파리의 낭만주의에 관해서,

또 이와 연관된 장소들과 역사의 전개를 꼼꼼하게 담고 있는 책이다.

사회와 국가의 비전에 있어 작가의 역할이라는, 생각거리를 던져주는데.

빅토르 위고가 프랑스 민주주의와 문화를 작동하는 데 있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사실을 이 책을 읽고 알았다.



작가는 참 행복한 사람이었다.

많은 천재들이 시대를 앞서가는 자신의 재능을 인정받지 못하여 외로움과 가난에 시달리며 불우하게 살다가.

죽어서야 비로소 뛰어난 재능과 작품들을 인정받아서.

엄한 사람들의 주머니를 불려주는 억울한 역할을 맡는데.

위고는 젊어서부터 대중들에게 사랑을 받으며 자신의 생각과 이상을 맘껏 펼칠 수 있었고.

개인적으로도 거리낌 없이 수많은 여인들과 넘치는 애정을 주고 또 받았으며.

좋아하고 잘하는 일로 넉넉한 생활을 꾸려갈 수 있었다.


지금도 프랑스에서 빅토르 위고의 위치는 대단하지만,

그는 살아서도 프랑스 국민들로부터 애정과 존경을 듬뿍 받았던 것 같다.

작가의 사상과 세계에 대한 이해를 담은 책들은 대중들에게 쏙쏙 받아들여졌고,

그는 상원의원으로 일하면서 자신의 사상을 현실화할 수 있는 기회도 가졌다.



그가 팔십 세 되던 생일에는 국민들이 나서서 3일 동안 축하해주었다고 한다.


사흘째인 다음 날에는 60만 명의 시민들이 16구에 있는 엘로가를 걸어 내려와 샹젤리제에서부터 인간띠를 이루어 6시간 동안 행진을 벌였다. 위고는 1878년에 뇌졸중을 일으킨 몸 상태였지만 한겨울 찬바람에도 창문을 활짝 열고 그의 집 앞을 지나는 축하행렬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감사의 인사를 했다.

(222, 223쪽)


또 그가 죽었을 때는,

국장으로서는 프랑스 역사상 최대 규모의 의식이었다. 그는 소박한 관과 소박한 영구차에 실려 가난한 사람의 몸으로 묻히기를 원했다. 그의 바람은 존중되었다. 검은색 영구차는 간소한 흰색 장미 화환 두 개로만 장식되었다. 하지만 위고가 추구했던 평화가 전쟁광과 보나파르트 왕조에 대항해서 승리한 것을 상징하기 위해 영구차는 개선문 아래에서 하룻밤을 지냈다. 이것은 위태로운 상태의 제1공화정을 전복하려던 군국주의자들에게 날리는 경고의 의미도 있었다. 슬픔은 환희로 승화되었다. 인생을 즐기며 살았던 위고였던 만큼, 수만 명의 파리 시민들이 모여서 밤새도록 파티를 벌이는 것도 이상할 것이 없어 보였다. 이날 이 자리에 있었던 노벨상 수상자인 소설가 로맹 롤랑의 말에 따르면 위고에게 경의를 표하는 디오니소스적인 열광의 축제였다고 한다.

.....

새벽이 되기 전에 2백만 명의 문상객들이 개선문이 있는 에투알 광장에서 팡테옹까지 영구차를 따라갔다. 검은색으로 차려입은 품위 있는 행렬이었다.  약 6킬로미터 거리를 지나는 동안 위고가 남긴 걸작들의 제목- 《레 미제라블》, 《관조시집》, 《동방시집》 등 –이 새겨진 현수막들이 펄럭였다. 하루 내내 가스등도 검은색 천으로 가려진 채 불을 밝혔다. “검은빛이 보인다.”라는 시인의 마지막 말을 떠올리게 하는 기묘한 정이었다.

(223, 224 쪽)



저자는 위고가 프랑스에 미치는 영향력에 관해 이렇게 평가한다.


 나는 위고에 대해서 많이 알면 알수록 혼란스러워서 어찌할 바를 몰랐고 그가 부활해서 조국과 세계를 이끌어주었으면 하고 바랐다. 그러다가 생각을 멈추었다.... 그는 이미 프랑스를-전면에 나서는 것이 아니라 뒤에서부터- 이끌고 있었기 때문이다. (221쪽)


이렇게 사랑과 존경을 받을 수 있는 걸출한 인물을 가진 프랑스가 부럽고.

 인물의 재능과 선한 의지를 알아보고 그에 걸맞은 애정과 대접을 보여주는 프랑스 사람들이 대단하다.

프랑스 사람들의 혜안과 수용이 없었다면 이 천재도 구석방에서 슬픔과 절망으로 제대로 크기도 전에 꺾여버렸겠지.

결국 프랑스 사람들이 대단했던 거였다.

그 시절의 프랑스 사람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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