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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차는 달려가고 Aug 09. 2022

홍수의 기억

끄적끄적

내가 어렸을 때는 홍수가 여러 번 있었다.

산에서 내려온 흙탕물이 온 동네를 덮쳐 큰길이 무릎까지

잠겼던 적이 있었고.

당연히 집 마당에도,

바닥이 낮았던 부엌에도 물이 들어찼었다.

그 시절은 수세식 화장실이 널리 보급되기 전이었으니, 흠.



1987년 물난리의 기억이 있다.

반포에 살던 친구네 아파트 단지에 물이 들어차서

나중에 구호품이 일괄 지급되었다고 했다.

구호품 중에 담요가 들어있다, 는 얘기를 듣고

여전히 현실이 아닌 딴 세상에 살고 있던 나는 까르르 웃으면서.

와, 수재민 실감 난다, 경박한 반응을 보였던 부끄러운 기억이.


언제더라.

망원동에 시댁이 있는 친구가 있었는데.

망원동 물난리에 놀란 시부모님이 아예 다른 곳으로 이사하셨다는 얘기도 기억난다.


아마 그즈음,

우리 집 뒷동네 비탈에 물길을 막고 마구잡이로 택지를 조성하더니.

비가 많이 내린 어느 날,

골목이 계곡이 되었더라.

나무들이 뽑히고 도로포장이 으깨진 난장판에서, 확실히 자연의 위력을 느꼈었다.



그리고 잊었다.

강북지역에 살아온 나는 어릴 때 이후로는 직접 물난리를 겪은 적이 없어서.

비가 많이 온다기에 며칠 바깥에 나가지 않을 심산으로 먹을 것을 골고루 사다 두었다.

그렇게 며칠 창밖의 비 구경을 하다 보면 구름이 걷히고 반짝,

뜨거운 여름 해가 공기를 데울 줄 알았지.


사정없이 비는 내리고.

줄기차게 굵은 빗방울이 쏟아지고.

몇십 년 만에 물난리를 다시 겪는다.


피해 보신 분들도 많고.

불편을 겪으시는 분들은 어마어마하게 많을 테고.

눈에 보이지 않게 뒤처리로 고생하시는 분들,

고맙고 또 고맙고요.

유명을 달리하신 분들께는...

마음이 아프다.

예의를 갖춰 명복을 빕니다.



여러모로 난세다.

안 그래도 지치는데 그로기 상태까지 몰리는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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