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 끝날 무렵,
나는 우울해진다.
더위를 잘 참기는 하지만.
더위가 극성을 부리면 꼭 몸에 탈이 난다.
소화 기능이 더 무력해져 탈이 나니 밤새 잠을 못 자고 통증에 시달리며,
냉방과 더위를 오가면서 체온 조절이 되지 않아 금세 감기 기운으로 콧물을 훌쩍인다.
비실거리며 흐리멍덩한 정신으로
책을 폈다가, 음악을 틀었다가, 드러누웠다가, 졸다가.
뭐 하나 집중하지 못하는 생산력 제로의 나날.
특히 여름에 더 힘들어지는 이런 체질적인 문제에 더해.
이 더위가 지나면 여름이 끝나고.
그러면 곧 추석이고,
추석 연휴까지 지나버리면 올 한 해도 다가는 기분이라...
한 해의 3분의 2가 지나가도록 나는,
어느 하나 제대로 한 것 없이 빈둥빈둥, 게으르게 시간을 흘려보냈다는 자책으로.
후르르 증발해버린,
새해를 맞으며 기대했던 몇 가지 계획을 떠올리며.
수십 년 반복해온 나의 계절성 자책을 올해도 되풀이한다.
지나서 보면 굴곡은 있었지만 밥 해 먹고, 청소하고, 책 읽고 글도 쓰는,
그냥저냥 무난한 시간을 살았는데
막상 살아가는 하루하루, 한 주일, 두 주일, 또 한 달. 두 달은
자잘한 걱정과 쓸데없는 잡념과 이런저런 불안과 막연한 공상으로 주저앉아서.
무엇 하나에도 씩씩한 발길을 내딛지 못했다.
월요일이 시작됐나 하면 주말이고.
그렇게 한 달 두 달, 하여 겨울이 끝나고 봄이 오더니 이제 여름까지 가려하는구나.
망하지는 않았으나 흥한 것도 없는 지지부진한 세월이었다.
신기하게도 추위가 올 때쯤이면 다시 새해를 기약하느라 이런 우울한 기분이 사라지긴 합니다.
어른을 지나 이제 노인이 되어가는 나이인데,
여전히 계획은 쉽고 실천은 어렵습니다.
올 한 해 버린 시간만큼 더 오래 살지 뭐- 이렇게 무럭무럭 자라는 장수에 대한 욕심.
그러니까 내 입장에서 볼 때 노인들이 더 살고 싶어 하는 이유는,
뭐 하나 제대로 한 것 없이 세월을 흘려보냈다는 아쉬움 때문이라 해석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