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은 살아있는 왕의 거처이고
능은 죽은 왕이 묻힌 곳이다.
아버지가 우리를 부르신다.
나갈까?
가족들 점심 식사를 마치고 잠깐 쉬시던 어머니와
심심해, 심심해, 몸을 배배 꼬고 있던 일요일 오후의 아이들은,
행여 사정이 바뀔세라 후다닥 옷을 갈아입고 아버지를 따라나선다.
오늘은 왕릉을 가자신다.
어딘들!
부모와 외출하게 되어 한껏 흥분한 아이들은,
깔깔깔, 쉴 새 없이 떠들어댄다.
'제발 조용히 좀!'
아버지의 한 마디,
그리고 잠깐의 침묵.
숨 두어 번 겨우 참다가는 다시 재잘재잘.
아버지와 아이들의 무한반복 도돌이표였지.
1970년을 전후한 시기에는 지금처럼 왕릉이 잘 관리되지 않았었다.
봄, 가을에는 학생들의 소풍지로 북적였는데,
평소에는 취향이 특이한 연인들이나 다녀갈까.
조용하고 한가한 장소였다.
릉의 곳곳은 부분 부분 허물어지고,
삐그덕거리는 건물은 색이 바랬다.
오랜 시간의 흐름이,
허허로움이 확연히 느껴지던,
한적하고 고즈넉한 공간이었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비어버린 땅에
우리 가족은 발을 들여놓는다.
홍살문을 지나, 참도를 걸어, 봉분에 다가가면서 발걸음은 조심조심.
말소리도 조용조용.
적막하고 인적이 드문,
중심에서 비껴 나,
중심에서 고개를 돌린 듯한 텅 빈 장소에는
의미를 모르는 석물들이 이리저리 놓여 있고.
둥실하게 흙이 덮인 봉분은 쓸쓸하게 세상의 기억에서 잊힌 듯했다.
왕릉에서 우리는 각자 이리저리 다녔던 기억이다.
능침 옆 소나무 숲을 터덜터덜 거닐던 아버지.
능침 공간 봉분이 앉힌 언덕진 곳을 신나게 오르내리던 아이들.
이 모두를 지켜보던 어머니.
일요일 오후 왕릉은 고요하니 늦은 햇살이 비추었는데.
해가 기울고, 바람이 불고, 우리들의 발걸음 소리가 지나가면.
왕릉은 다시 깊은 어둠 속으로 가라앉겠지.
처자를 데리고 왕릉을 찾았던 40대의 아버지를 떠올린다.
일제강점기의 궁핍과 전쟁의 참상과,
독재의 억압적인 시기를.
그 모든 시대를 관통하는 부당함을 견뎌야 했던 아버지 세대는.
휴식 없이 이른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일만 하셨다.
일요일 오후.
잠깐 틈이 난 시간에 가족과 함께 집을 나와,
들을 걷고, 식당을 찾아 저녁을 먹던 몇 시간.
당신이 누렸던 거의 유일한 휴식.
내면에서는 당신의 또렷한 자아가
인생이 이것만은 아니라고 아우성을 지르며
몹시 고통스러워했을지도 모르는데.
그저 몰락한 왕조, 죽은 왕들의 무덤을 거닐며.
한때 세상을 호령하던 권력과 욕망도 땅에 묻힐 뿐이고.
지나고 나면 그뿐.
세상사 헛되고 헛되다면서.
당신은 치밀어 오르는 괴로움을 꾹꾹 억눌렀는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