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원의 추억

by 기차는 달려가고

캐나다 캘거리 동계올림픽이 끝나고 오래지 않아서.

나는 미국 공항을 경유해 캐나다로 갔다.

캘거리에서 한번 경유했던 작은 비행기는 30분 정도를 더 날아 도시에 도착했다.

봄이 오고 있던 서울과 달리 그곳은 여전히 겨울왕국이었다.


바깥은 온통 하얀 설국이었지만 햇빛이 좋아서 도시 분위기는 화사했다.

유리 천장을 덮은 쇼핑센터 아케이드는 밝은 햇빛으로 따듯한 봄날인 양 포근하기까지 했지.

아직도 긴 겨울을 견디고 있던 주민들은 다른 느낌이었겠지만 말입니다.

스키장도 몇 개 코스는 아직 열려 있었는데 정말 산을 넘나드는 긴 거리였다.



한동안 머물렀다.

밴프와 재스퍼에도 다녀왔다.

알프스가 중년을 넘어선 연륜 있는 멋쟁이 신사라면,

캐나다 록키는 팔팔한 청년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알프스에서 나는 생모리츠라는 고급스럽고 세련된 스키장에 갔었는데,

밴프와 재스퍼의 캐나다 로키 지역은 소박하고 기능적이며 훨씬 자연적이었다.

시즌이 아니라 그랬는지 사람이 적어서 내가 자연 속에 있다는 기분이 강하게 들었다.



한국 교민들이 있었다.

북미 대륙 다른 지역을 거쳐 온 몇 안 되는 교민분들은 서로 친하게 지냈다.

집을 방문해 식사도 하고 아이들을 데리고 함께 놀러 다니기도 하면서,

한국 음식과 한국의 생활 문화를 잘 이어가고 있었다.


하루는 교민 몇 가족이 공원으로 B.B.Q. 를 하러 갔다.

공원은 끝없는 평원으로

눈이 가득 쌓인 하얀 세상이었다.

그 넓은 면적에 드문드문 B.B.Q. 시설과 나무 오두막으로 최소한의 편의시설을 설치해서 자연을 그대로 누릴 수 있도록 했다.

하얗게 눈이 덮인 넓은 공원에는 우리 일행 말고는 아무도 없었다.


우리는 차콜에 불을 붙여 준비해온 고기를 굽고,

김 오르는 밥과 국물, 김치, 잡채...

입김을 후후 불며 뭐 그런 음식을 먹었던 것 같다.

바람이 불고 눈에 발이 파묻히는 허허벌판에서 말이다.

햇빛이 좋고 음식이 맛있으며 끊임없이 하하호호 이야기를 나누니,

뭐 겨울 날씨쯤이야.



만족한 식사와 즐거운 이야기를 나누고,

걸어서 공원을 돌았다.

그리고 썰매를 탔다.

시중에서 파는 두 사람 정도 앉을 수 있는 썰매로 기억되는데, 사람이 끄는 게 아니었다.

썰매 앞에 줄을 이어 SUV의 꽁무니에 연결한다.


줄의 길이가 성공의 관건이다.

너무 길면 썰매가 쉽게 뒤집히고,

짧으면 자동차 배기가스가 사람에게 닿는다.

몇 번의 시행착오 끝에 드디어 적절한 길이를 찾아내!

빨리, 느리게, 속도에 변화를 주면서.

돌고, 돌고, 또 돌고.


나이로는 어린이 시절을 오래전에 지났지만,

손님 대접으로 나는.

아이들과 함께 썰매에 올라 얏호, 얏호

괴성을 지르며 하얀 평원을 빙글빙글 돌았다.

바람에 볼이 빨갛게 얼어 입이 굳어서는.



길었던 겨울이 끝나고 사람들의 표정이 환해지는 그곳의 봄이 올 무렵,

나는 봄의 끄트머리에 있던 서울로 돌아왔다.

30년도 넘은 옛날이야기지만

하얀 평원에서 거리낌 없이 재미있게 썰매 탔던 기억은,

여전히 내게 웃음을 띄게 만드는 즐거운 추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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