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달 만에 명동에 나갔다.
저녁 어스름할 때 나가본 건 수십 년만인가.
지난 초봄 낮에 지나갔을 때와 달리 제법 활기가 있었다.
코로나 사태 이후 3년 가까이 텅 비어버려서
점심시간에 부근의 직장인 부대가 나타났다가 곧 사라지곤 했던 명동에는,
주말이라 그런지 천천히 걸어 다니는 단순 방문객들이 적지 않았다.
가로 세로 관통도로에는 다시 노점상들이 문을 열었더라.
건물들 상가는 비어있어 깜깜한 곳이 태반이었고
뒷길은 여전히 인적이 끊겼지만.
다시 사람들로 붐비던 명동 시대가 찾아올지 이대로 가라앉을지 모르겠다.
나의 성장기이던 1960, 70년대 명동은 전성기를 구가했다.
일제 강점기에 일본인들의 상가로 개발된 명동은,
전쟁을 겪으며 폭격을 맞고 부서져서 초라하기만 했는데.
경제가 급성장하면서 명동은 우리나라 최고의 번화가로 번성했다.
연말연시,
아직 가난한 연인들은 명동 거리를 걸어 다니며 들뜬 기분으로 도시의 화려함을 즐겼다.
비엔나커피도, 클래식 음악 감상실도, 생맥주홀도, 경양식 집도, 고급 양장점, 양복점들도, 보석가게도, 날짜 지난 외국 잡지들이 있던 곳.
청춘들로, 자녀를 데리고 나온 부부들로 늘 북적이던 곳.
그리고 한때 민주화 운동의 든든한 보호자였던 명동성당.
서울이 확장되고 강남 쪽으로 부의 중심이 옮겨가면서.
신촌, 영등포 같은 각 지역 별 중심지가 형성되면서 유행을 선도하는 번화가로서 명동의 지위는 주춤했는데.
21세기 들어 외국인 관광객들이 몰려들면서 명동은 다시 살아났다.
비싼 임대료와 물가로 외국인들에게만 어필하는 특수한 지위를 구가하더니.
코로나로 가장 큰 타격을 입고 순식간에 을씨년스러운 동네가 되었다.
60여 년, 명동의 부침을 지켜보면서.
땅도, 지역도 사람의 인생처럼 부침이 있는 굴곡진 세월을 보낸다는 걸 알겠다.
명동만이 아니다.
내가 살아온 60여 년 동안 서울은 상전벽해,
이름이 같을 뿐 전혀 다른 도시가 되었다.
번화가도, 변두리도 고정된 성격이나 지위가 아닌,
제각각 변화하면서 영광과 쇠퇴와 부활과 침몰을 겪는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앞으로 서울이 어떤 모습이 될까,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