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절대 말이 적은 사람도 아니고 솔직하지 않은 사람도 아니어서 어디 가면 요것조것 수다스럽기는 하다.
동시에 떳떳하다는 건방진 태도를 고수하는 사람이라서 거짓말은 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종종 속을 알 수 없다는 평이 있는 것은 일정한 범위 안에서 말을 하기 때문이리라.
상대와 통하지 않을 화제나 개인적인 범주에 있는 이야기는 떠들지 않는다.
상대를 봐가면서 이야기한다는 뜻이다.
내가 벽 보고 말할 이유는 없지 않은가.
또한 왜곡될 것이 뻔한데 먹잇감을 줄 생각도 없고 말이다.
종종 필터 없이 떠들어대는 사람과 마주친다.
본인은 솔직하다고 여길지 모르겠지만 내 시각에서는 사고 과정에 여과 장치가 전혀 작동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떠들지 않으면 불안한 사람이 있다.
그렇다고 그런 사람들이 정직한 건 아니다.
상대방에게 인식시키고 싶은 자신의 모습을 꾸미고 과장하며 수시로 거짓말한다.
어떤 부분에 입을 다무는 나나,
부풀리는 자신이나 다를 게 뭐냐고 따진다면.
예, 그러시든가, 하고 마는데.
어쨌든 말이 많다 보면 원치 않게 자신의 어두컴컴한 속내를 적나라하게 드러내게 된다.
그러니까 시기, 질투, 원망, 욕심, 불안과 불행감 같은.
나는 남의 개인사에는 관심이 없는데
인간의 복잡하면서 동시에 단순한 심리상태와 그 작동 구조에는 관심이 있었다.
사람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분석하기를 좋아했다.
그래서 인간의 보편적인 심리 구조에 관해서,
동시에 내 앞에 있는 도무지 이해불가인 개인을 정확히 이해해보려는 성실함에서 관찰과 분석과 해석에 열중했던 적이 있었는데.
이제는 인간을 이해하려는 성실성이 사라졌다.
나도 모르게 습관적으로 어떤 대상을 관찰하려다가는 화들짝,
아이 피곤해라, 고개를 돌려버린다.
결코 아름답지 않은 그 속을 알아 뭐할까.
공적인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너무 많이 떠든다.
불안한가 보다.
그들의 구질구질한 속내를 우리의 세금까지 써가면서 실시간 중계당해야 하다니.
이런 낭비가 또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