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좋아하는 작가 W.G. 제발트의 <전원에 머문 날들>, (문학동네)을 읽었다.
제목에서 풍기는 한가한 이미지와 달리 19세기-20세기 초, 독일어권의 몇 작가들에 관한 매우 치열한 글이었는데.
제발트다운 안목이고 시각이었다.
소개된 작가들은 일반 독자들에게는 생소한 변방의 작가들로, 살아서도 그리 명성을 얻은 분들은 아니었는데.
그들의 저서들 중 일부는 우리말로 번역되어 있다.
찾아봐야지.
이 작가들은 궁핍하고 고독하게 살아가면서 글을 쓴 분들이었다.
그중에 '로베르트 발저'라는 작가가 내게는 특히 인상적이었는데,
그는 평생 아무것도 소유하지 못했다.
집도, 가족도, 안정된 직장도, 돈도, 책조차도.
심지어는 자신이 쓰고 출판된 책도 갖지 못했고,
글을 쓴 종이도 남이 썼던 종이라고 한다.
평생을 일정한 직장도, 지역도, 머무는 집도 없이 계속 떠돌아다니다가 인생 후기에 시골 정신병원에서 28년을 살았다.
정신병원에 있을 때 작가를 찾아온 카를 제리히라는 헌신적인 편집자의 노력으로,
잊혔던 작가의 작품들이 세상에 알려지고 평가받을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인터넷으로 작가를 검색하다가 편집자 카를 제리히가 물려받은 재산으로 문학에 종사했다는, 짧은 언급을 찾았다.
그러니까 손익 따지지 않고 오직 발저의 작품이 좋아 세상에 널리 알릴 수 있는 경제적 여건이 마련되어 있었다는 말이겠지.
<종의 기원>을 발표한 다윈도 부잣집 자식이었다.
물려받은 재산으로 생계 걱정 없이 혼자 학문에 열중했다.
20세기 초까지 근대기에 구미에서 보면,
빈곤한 집안에서 걸출한 작가 또는 학자가 나온 경우가 물론 많지만.
상당히 부유한 집안 자제들이 집안의 기대와 지원을 받으며 문학 같은 돈 안 되는 예술분야에 투신한 경우가 많았다.
일본만 해도 근대기에 귀족 가문 출신들이 문학에 뛰어들어 만든 동인인 '시라카바 파'가 있었다.
내가 좋아하지는 않지만 번역된 거의 모든 작품을 읽은, 오스트리아 작가 '슈테판 츠바이크'도 유대계 실업가 집안에서 태어났는데.
그의 글이었던가,
부유한 유대인 집안에서는 자식 하나는 가업을 잇게 하고,
다른 자식은 문화 또는 학문을 하도록 뒷바라지한다, 는 구절이 있었다.
지금 세계의 금융업 분야, 정치계에서 차지하는 유대계 비중이 상당해서 유대계 음모론을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인데.
학문 분야와 문화 분야 또한 유대계가 월등한 형편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편집과 기획 분야에서 유대계가 장악한 비중이 훨씬 클지도 모른다.
서구의 경우를 보면 한 세대가 재력을 일구면 다음 세대는 문화에 진출하여,
교육자본, 문화자본을 쌓는다.
우리나라도 개인들의 재력이 쌓인 지 한 세대가 넘었다.
이쯤 되면 우리나라 부자들도 문화자본을 쌓을 때가 되었는데...
고작 사치품 브랜드 정보, 유명 과외교사, 해외 명문학교 위법 진학 요령, 호색, 주량만 풍부할 뿐.
기본적인 매너도 없고 세련되지도 못하다.
윤리나 도덕, 공생에 관한 감각은 특히나 없으니.
정경, 검경 결탁으로 재물 불리는 데 골몰하느라 바빠서
인간과 세상을 탐구하는 문화가 머리에 자리 잡을 틈이 있겠나.
돈 쫌 제대로 쓰자.
가난뱅이를 비웃으면서 돈에 헐떡이는 건 더 심하다.
부자로서 자부심을 갖자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