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브랜드에 무심한 것은 아니어서 대략 괜찮다, 싶은 브랜드는 있다.
하지만 상표가 눈에 확 띄게 드러나는 물건들은 민망하다.
그래서 물건 한가운데 로고가 떡하니 붙어있거나,
누가 봐도 상표를 알 만한 제품은 꺼린다.
1980년대에 서구 유명 브랜드들이 기세를 떨치던 일본에 갔을 때,
브랜드에 의존하는 일본의 당시 풍조에 반발하여
브랜드 이름을 아예 "상표 없는 좋은 물건"이라 붙이고 로고나 상표가 없는 <무인양품>이 퍽 신선하게 보였다.
지금은 그 자체로 브랜드가 되었지만 말이다.
1990년대 초, 홍콩에 우리나라 기업 주재원으로 온 남편을 따라온 주부들의 세계를 관전할 기회가 있었다.
그때 우리나라에서도 해외 유명 브랜드가 유행하기 시작했던 시기라
주재원 아내들이 홍콩에 오면 널려있는 세계적인 브랜드에 입문한달까.
백화점을 다니면서 각종 브랜드들을 외우고 세일 때는 물건을 사들이느라 바빴다.
비록 상표 이름은 틀리게 외웠을지언정.
1970~80년 대에 우리나라가 급속히 경제성장을 한 데에는 의류 하청 산업이 큰 몫을 했을 것이다.
주로 10대 소녀들이 봉제공장에 대거 취직하여 그들의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과 꼼꼼한 기술력으로 제품 경쟁력이 있었으니.
그 시절 우리나라는 해외 유명 브랜드들의 주요한 생산기지였다.
해외 브랜드 회사에 납품하고 남은 제품들이 '보세'라 하며 시중에 풀리기도 했는데.
수출품과 같은 재질, 같은 디자인의 제품들은 아주 희박했고.
비슷해 보이지만 싼 재질과 흉내 낸 디자인으로 수출품 비슷하게 만든 것들이 많았으며.
심지어 얼토당토않은 아무 물건에다 상표만 비슷하게 만들어 붙인 것들도 있었다.
이를테면 청바지에 벤츠 상표가 붙어있는 식으로.
당시 우리나라 소비자들 대부분은 상표를 봐도 뭐가 뭔지 모를 때라 시장에서 파니까 그냥 샀을 텐데.
외국인 관광객들과 일부 우리나라 소비자들은 각종 상표를 찾아 일부러 가짜상품을 사러 다니곤 했었다.
올해 초까지만 해도 우리가 선진국에 들었나, 자부심이 넘쳤는데.
지금 우리 사회는 심하게 퇴행하는 중이다.
되는대로 만든 엉터리 물건에, 유명 브랜드 상표만 비슷하게 만들어 가슴팍에 떡하니 달고 우쭐거리는 모양새다.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동네방네 휘젓고 다니면서.
지난 수십 년 동안 우리나라가 상당히 발전한 줄 알았는데
의식 수준은 그대로였더라.
아니, 그 시절의 소박함, 순진함은 내다 버리고 졸부 행세만 남아 썩고 또 썩어서, 악취만 심해졌다.
속은 다 썩어버린 껍데기를 포장해 진짜인 듯 상표만 요란하게 조명을 비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