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참 전에 지나간 세계의 역사란,
거의 대부분이 일정 지역을 지배한 권력자 즉 왕가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권력을 잡기도 어렵지만 그 권력을 유지하기는 더 힘들다.
왕들은 즉위하는 순간부터 권력을 유지하고 권력을 물려줄 후계자를 키우는데 전력한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권력자들에게 결혼은 세력 범위를 넓히거나 지키거나 굳히는 전략이었다.
전쟁과 결혼을 반복하면서 권력은 이합집산과 재편성을 거듭한다.
그래서 제2차 세계대전으로 유럽의 왕족들 대부분이 사라지기 전에,
국가 불문 왕족들은 서로 친척지간이었다.
그러니까 서구의 왕가들은 국경이나 국민들과 상관없이 그들끼리가 한통속이었다.
유교 이념이 강력하게 적용되었던 우리나라와 달리 유럽에서는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항렬과 족보가 꼬이고 얽히는 근친결혼이 비일비재했으니.
삼촌인가 하면 남편이고.
사촌인가 하면 작은 아버지이며.
사돈인가 하면 형제에, 외가에, 시가도 되었고.
이모인 동시에 고모이고,
형수였다가 아내가 되는.
때로는 시아버지이기로 했는데 남편이 되어버린,
헤아리기 어려운 관계가 형성되었다.
열댓 살 소녀가 오십이 넘은 왕과 결혼하는 것은 어느 왕가나 마찬가지.
옛날 사람들 수명이 짧고 유아 사망률이 지금보다 훨씬 높기는 했지만,
그래도 근친결혼이 많은 유럽 왕실은 합스부르크 왕가의 심한 주걱턱처럼 유전병이 있고 신체도 유난히 허약했다.
아이를 낳기도 쉽지 않았고,
힘들게 아이를 낳았나 싶으면 일찍 죽거나 정신병이 있거나, 빈번하게 자손이 끊기더라.
그래서 몇 대를 못 넘기고 왕위는 방계로 넘어갔다.
어제는 '합스부르크 600년' 전시회를 보고 와서 유럽의 왕족을 떠올렸는데.
오늘은 오랜만에 종묘에 다녀왔다.
세자로 책봉된 어린아이가 받는 중압감.
만약의 경우를 준비하는 여분으로 필요할 뿐,
세자가 아니어서 권력의 눈치를 살피며 평생 조심스럽게 살아가야 했던 차남 이하 아들들.
자율적일 수 없었던 그들의 아내들과 후궁들.
다들 쉽지 않은 삶을 살았다.
왕족들 이야기를 읽다 보면 왜 싯달타가 왕가를 떠났을지 상상이 된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힘과 재물이 있는 그곳에는,
그것을 좋아하고 탐내는 욕망 그득한 야심가들이 모이고. 맛난 먹잇감을 노리고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모략과 거짓과 아첨과 의심으로 가득 찬 나날에,
차마 제정신으로는 못할 악행들이 숱하게 일어나니.
그 괴로움에서 벗어나 맑은 마음으로 살기 위해 싯달타는 모든 것을 버리고 탈출했던 거였다.
* 참고 사항,
현재 종묘의 정전은 수리 중이어서 가림막이 쳐져 있습니다.
2024년에나 가야 모습을 드러낼 듯요.
제목의 배경이 되는 사진은 '영녕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