값이 오르지 않은 게 없어서 계절에 따라 가격 차이가 있는 무도 싸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쓰임에 비해 여전히 저렴한 식품이다.
주연, 조연, 엑스트라-를 가리지 않고 우리 음식에 등장하여,
영양가를 제공하면서 입맛까지 즐겁게 해 준다.
김치 양념에는 무채가 듬뿍 들어가고,
배추김치 항아리에 꾹꾹 눌러 박은 아삭한 무 조각을 어렸을 때 나는 무척이나 사랑했었다.
무는 깍둑 썰어 깍두기를 담고.
살얼음 낀 말간 동치미는 얼마나 상큼한가.
긴 겨울 김장 김치가 떨어질 무렵,
매콤 달콤 시원한 무생채는 반가운 봄소식 그 자체.
가을에 거둔 무를 소금물이나 간장물에 담그면 일 년 내내 먹을 수 있는 무 장아찌가 되고.
식당 라면에는 노란 단무지가 동반자다.
치킨의 느끼함을 달래주는 하얀 치킨 무는 또 어떻고!
고기 먹을 때는 푸릇푸릇, 불그스름 물들인 얇고 동그란 무절임이 있고.
전복 찔 때는 무가 기꺼이 덮개가 되어주지.
소고기 뭇국은 맑거나 빨갛거나 무조건 맛있고.
구수한 된장찌개에 납작 썬 무를 넣기도 한다.
멸치나 밴댕이로 육수를 낼 때나
갖가지 채소로 채수를 끓일 때도
무는 특유의 시원, 달큼한 맛을 더한다.
생선조림에 큼직하게 썰어 넣은 무 조각은 달착지근,
짭조름한 맛과 보드라운 식감으로 사랑받고.
가늘고 긴 무나물은 또 얼마나 연하고 부드러운가.
무채를 얹어 밥을 짓고.
무를 숭덩숭덩 큼직하게 잘라서 따로 양념에 조리기도 하고.
무로 전을 지지기도 한다는데,
나는 아직 먹어보지 못했네.
무는 날 것도 맛있다.
늦은 가을,
추위가 닥칠 무렵 시끌벅적한 김장 날.
바쁜 어른들 앞을 아이들이 자꾸 얼쩡거리면,
어머니는 채 썰던 손을 잠시 멈추고,
무의 윗부분, 푸르스름한 부분을 쥐기 좋으라고 길쭉하게 잘라 손에 들려주셨다.
입안에서 물기가 톡톡 터지는 시원 달큼 무의 맛을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자신을 내세우지 않고 아무것도 아닌 듯,
있는 듯 없는 듯 시침 뚝 떼면서는.
그저 묵묵히 고기의 맛, 채소의 맛, 생선의 맛을 앞세우며 뒤에서 모자란 맛을 감싸주는 무.
다방면으로 헌신하나 주목도, 칭찬도 특별히 받지 못하면서 서운하지도 않은지.
오늘도 하얀 무는 덩치나 무게에 비해 낮은 가격을 붙이고 수북이 쌓여서는 따라갈 손을 기다리는구나.
내 오늘은 네 공을 특별히 알아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