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탕은 달달해

작고 하찮은

by 기차는 달려가고

지금은 상상되지 않겠지만 내가 어렸던 1960년 대에는 설탕이 선호받는 명절 선물 품목 중 하나였다.

명절에 들어오는 대용량 설탕 포대를 구석방에 풀어놓고,

국자로 푹푹, 아낌없이 꺼내 썼다.


그 시절 우리 할머니는,

더운 여름날 집에 들르는 우체부라든가 전기검침원이라든가 하는 분들께,

하얀 설탕 한 숟가락을 스테인리스 주발에 담고 찬물을 부어 휘휘 저어주셨다.

땀을 몹시 흘리며 더위에 지친 그분들은 물방울이 송골송골 맺힌 차가운 주발을 받아 들고 꿀떡꿀떡,

참 시원하게도 들이켰다지.

그렇게 설탕 한 숟가락은 달달하게 선의와 격려의 마음을 전하며,

고달프고 암담한 이 세상을 헤쳐나갈 작은 힘이 되었다.



지금은 단맛 과잉의 시대라서,

건강에 좋지 않은 정제 설탕은 피하라,

치아에 해로우니 조심하라, 경고한다.

단맛이 과한 시중 음식들에 나는 불만이 많지만,

그렇다고 단맛 없는 한식의 맛도 상상하기 어렵기는 하다.

부엌에는 반드시 설탕이 있고.

갈비에도, 장조림이나 불고기에도 설탕은 필수이다.

생선조림을 만들어도,

북어채를 무쳐도,

김치 양념에도 설탕은 들어간다.

잡채, 닭볶음탕에도, 떡갈비에도, 나물을 무쳐도, 떡볶이에도 설탕은 빠지지 않지.

한과를 만들거나 떡을 찔 때 설탕은 필수이고.

유자를 재우거나 매실액을 만들 때, 설탕이 반이다.

케이크와 과자, 젤리를 만들 때 설탕을 쏟아붓고.

잼에도, 아이스크림과 주스에도 설탕은 어마어마하게 들어간다.


개인적으로 담백하고 달지 않은 맛을 좋아하여

음식 할 때 되도록 설탕을 적게 사용하고.

음료수에는 꿀이나 메이플 시럽을 종종 이용하며.

장조림 같은 조림 음식이나 국물 요리에는 무, 양파, 대파 같은 재료를 충분히 넣어 단맛을 우리지만.

그래도 대부분의 음식에 오직 설탕만이 뒤끝 없이 깔끔한 달달한 맛을 내준다.


쓰디쓴 커피에 넣는 한 스푼의 설탕은 단맛과 쓴맛이 함께 하는 인생의 맛이고.

덤덤한 밀가루에 들어가서 설탕은,

주식인 밀가루를 간식으로 변신시켜 주는 마법을 부린다.


하얗고 미세한 반짝거리는 결정체 한 스푼은 우리 혀의 미각을 만족시키고는,

조르르 위장을 지나 곧바로 에너지를 낸다.

이러니 저러니 말이 많지만,

우리 생활에 빼놓을 수 없는 필수품 설탕.

가격이 올랐다 해도 여전히 저렴하다.



적절한 곳에, 적절한 분량만 쓰자.

지옥 같은 사탕수수 농장에서 고달프게 죽음에 이르는 노동을 하다가 죽어간 노예들이 있고,

멀고 먼 하와이 사탕수수 농장에서 온종일 뙤약볕에서 비참하게 일해 번 돈을 독립자금에 보탰던 우리 조상들이 있다.

여전히 열대 우림을 밀어내고 일구는 사탕수수 농장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결코 아름답지 않으니.


달콤한 설탕은 깊은 슬픔을 품고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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