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기차는 달려가고 Jan 13. 2023

소비에 대한 극단적인 태도

끄적끄적

내가 고등학생이던 1970년 중후반 대는,

국민들을 독재권력에 맞게 순응시키는 것을 교육과정으로 삼았던 시절이었다.

학생 간부들을 대상으로,

숙박하며 교육하는 여러 수련회가 전국적으로 실시되었다.


그중에는 활쏘기, 교련 같은 군사교육 수업도 있었고.

몇 시간이고 똑바로 앉아서 미동 없이 들어야 하는,

독재 이념을 설파하는 정신교육도 있었다.



나는 몸이 약한 이유로 수련회를 빠지기도 했고.

가더라도 견디기 힘든 시간은 적당히 빠져서 방에서 빈둥거리기도 했는데.

(사고 나면 누구도 책임지기 싫으니 수련생에게 건강 문제가 보이면 수업에 빠질 수 있는 가능성은 있었다.)

그렇다고 아예 수련회를 피할 수는 없었으니.


내게는 수련회의 내용들이 하나같이 이상해 보였지만

그중에서 '가나안 농군학교'에서의 경험은 정말 신기했다.

기독교적 바탕에서 근로와 절약으로 성공한 분이 지도하는 곳이어서,

길고 험한 노동과 지독한 절약을 강조했다.

치약은 1~2mm만 짜서 쓰고,

화장실 휴지는 한 번에 두 칸만 쓰라는 것부터 해서(가능한가요?).

물 아껴라, 전기 쓰지 마라, 하는 식으로 생활의 기본이 되는 모든 소비를 극단적으로 절약하라는 입장이었다.



1970년대 후반 우리나라는 미국의 대중문화가 들어오고 일부 계층에서는 소비가 증가하는 시기여서,

질은 낮지만 생활에 도움이 되는 소비제품들이 국내에서 활발하게 생산되던 시기였다.

국가적으로는 근검절약을 강조했지만 윗분들 사이에서는 양주가 흔했고 저택을 짓는 게 유행이었다.

밀수 또는 미군 PX에서 흘러나온 외국 제품들이 다양하게 소비되었고.

라디오나 TV 광고도 많아서 국민들의 소비생활에 영향을 끼쳤는데,

칫솔 가득 두텁게 짜내던 치약 광고는 기억이 선명하다.

나도 그 광고를 보고 치약을 칫솔 가득히 짜내어 쓰기 시작했으니까.

가나안농군학교에서 배운 것과는 전혀 다른 상업의 속삭임이었다.



칫솔모가 작은 전동칫솔을 사용하면서 치약에 대한 극단적인 두 가지 태도를 가끔 떠올린다.

치약이 효과를 발휘할 수 있는 사용량에 대한 고려 없이 무조건 아끼라는 입장과,

입안에 남은 잔여 치약을 말끔히 헹구어 내는 것에는 관심 없이 무작정 소비를 조장하는 광고라는,

소비에 대한 극단적인 입장 사이에서 오락가락했을 뿐.

우리 시대의 소비자들은 적절하고 효율적인 소비 교육을 못 받았구나, 싶다.

돈을 제대로 쓰는 방법,

가급적 우리가 행복하게 살아가도록 돈과 적절한 관계를 맺는 방식은 오로지 개인의 선택과 역량에 맡겨버렸다.


소비는 죄악이고 돈은 무조건 모아야 한다, 는 신념이

지독한 빈곤이라는 비인간적인 경험에서 비롯된 반작용일 수도 있지만.

여기에는 돈이 무조건 좋은 것이라는 가치 판단이 개입된 물신 숭배의 변형이 아닐까, 싶다.

동시에 돈은 무조건 많아야 하고,

소비를 많이 하며,

값비싼 물건을 많이 소유할수록 행복하고 내가 남들에게 훌륭해 보일 거라가치관도 물신 숭배 그 자체겠지.



상업 광고가 생활 깊숙이 들어오고.

저열한 욕망을 자극하는 자본주의 외에는 생활 방식을 찾지 못하는 현실에서 소비는,

더 많고 비싼 소비는 인생의 목표가 된 것 같다.


지금이라도 극단적인 절약이나 소비로 표현되는 물신 숭배에서 벗어나,

돈 또는 물질과 편안하게 관계를 맺고 사용하는 방식을 토론하고 익혀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황금 도끼와 황무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