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쪽 여행, 3- 유쾌한 순천 할머니들
마음에 남은 풍경들
순천 버스정류장에는 항상 할머니들이 앉아계신다.
의자가 온돌패널이라 따뜻하기도 하고,
무엇보다 주변 지역을 운행하는 버스 간격이 길어서 일을 보시고 버스를 탈 때까지 시간이 오래 남기 때문이다.
순천은 리아스식 해안으로 마치 손가락처럼 길게 갈라진 바다 쪽 지형과,
내륙 쪽으로는 겹쳐지는 산들이 또 이리저리 지역을 손가락처럼 갈라지게 만든다.
버스로는 다른 동네로 곧장 가기가 곤란해 어떤 할머니는 어디를 가려면 무조건 노선이 많은 버스터미널 앞 정류장으로 온다고 하셨다.
그러니까 순천역에서 아랫장을 지나 종합버스터미널에 이르는 동네에 순천의 산과 바다,
사방에서 나오는 버스들이 모이고 갈라진다.
순천 이곳저곳에서 오신 할머니들은 버스를 기다리며 옆자리 할머니들과 스스럼없이 이야기를 나누신다.
각자 와서 버스정류장 의자에 앉아 정답게 이야기를 나누시다가 자신의 버스가 도착하면,
"잘 가시욧!" 하고는 미련 없이 제갈길 가는 방식.
그러면 버스는 할머니들만 타느냐, 물으시겠는데.
아니죠.
할머니들이 유독 많기는 하지만 다른 분들은 그냥 주변에 서계십니다.
버스정류장 자리는 으레 할머니들 몫으로 남겨두고요.
할머니들의 대세 패션은 이렇다.
엉덩이를 덮거나 무릎 정도 길이의 그리 두껍지 않은 누빔 외투에,
헝겊이나 털실로 짠, 동그랗게 챙이 달린 모자.
얼굴을 거의 덮는 하얀 마스크에,
배낭 또는 앞가슴을 가로지르는 가방.
그리고 바퀴 달린 장바구니, 지팡이와 운동화.
무릎 기장의 누비코트에, 동그란 모자, 발 편한 구두를 신고 체크무늬 스커트를 단정하게 차려입은 할머니도 보았다.
송광사 가는 길은 이 산 저 산 굽이굽이 돌아가며 산골마을들을 지나간다.
길 저편 양지바른 산 아래에 적게는 네댓 집, 많게는 수십 채의 집들이 마을을 이루고 있다.
그러다 갑자기 관공서가 있고, 학교, 마트, 병원이 있는 큰 동네가 등장한다.
어김없이 그곳에서 할머니들은 무거운 장바구니와 함께 끙, 버스에 오르고.
뻥튀기를 한 보따리 안고 탄 할머니는 이미 버스에 타고 있던 할머니들께 뻥튀기를 나누기도 하고.
대용량 커피믹스와 10kg은 되어 보이는 귤 한 상자를 양손에 들고 작은 마을 앞에서 버스를 내리는 할머니도 계셨다.
그 마을 할머니들은 함께 모닝커피와 모닝 귤을 나누는 걸까? 하는, 잠깐의 상상.
버스를 기다리며 주르르 앉아계시는 할머니들께 가방에 든 사탕을 모두 꺼내어 하나씩 나눠드렸다.
활짝 웃으시며 고맙다고, 맛있다고.
오물오물 사탕을 입에 넣고,
좋은 일 한다며 잘 놀다 가라, 는 덕담을 아끼지 않으셨다.
달랑 사탕 몇 알로,
크나큰 인사를 받고 말았다.
민망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