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쪽 여행, 13- 잘 다녀왔다네
마음에 남은 풍경들
겨울 내내 건강이 좋지 않았고 기분도 가볍지 않았다.
때때로 찾아오는 혹한과 도무지 걷히지 않는 미세먼지에 더해,
대책 없는 물가상승과 막무가내 권력은 내 마음을 더욱 힘들게 했다.
어서 봄이 왔으면, 하는 마음뿐이었고.
그래서 먼저 봄을 맞으러 남쪽으로 갔다.
확실히 남쪽은 서울보다 따뜻했다.
산과 들은 황량한 겨울이었지만 물오른 나무들은 봄을 준비하고 있었고.
산을 맴도는 푸르스름한 기운은 곧 화사한 봄이 올 것임을 일러주었다.
순천에 있던 날들은 화창했다.
날씨는 포근하고 공기 질도 무난했으며 선선한 정도의 바람이 불었다.
송광사의 아름다움,
와온 바다의 호젓함이 좋았다.
부산에서는 거의 흐린 날들이었지만 춥지는 않았다.
해운대 바다는 시야를 가리지 않는 툭 트인 전망이 좋다.
양옆으로 위압적인 초고층 주상복합 건물들로 바다까지 위축된 듯했으나.
해운대 바다 주변은 완전히 번화가라서 장점이 될 수도 있고 반대일 수도 있겠다.
편리하고 안전하다는 장점은 확실히 있었다.
아침에 세수하지 않고 슬리퍼 신고 바다에 떠오르는 해를 볼 수 있는 즐거움을 누렸다.
관광지 음식점 가격은 어디나 서울 수준이다.
하지만 지방 식당은 밑반찬과 양이 많다.
이번 여행 숙소는 두 곳 모두 아침밥을 주는 곳이라 편리했는데,
대신 조리가 어려워 점심, 저녁은 사 먹었다.
혼자 밥을 먹는 데다가 깔끔해 보이는 식당을 찾다 보니 음식을 하지 않는 주인과 임시직 주방장의 식당을 종종 이용한 것 같다.
확실히 음식은 매뉴얼대로 조합한다고 되는 게 아니다.
감각 있고 경륜이 풍부한 식당 주인이 직접 또는 세심한 관리 하에 만들어지는 음식 맛의 중요성을 다시 확인했다.
남쪽 지방 사람들은 서울 사람들보다 추위에 약한지,
서울에서라면 벌써 벗어버렸을 기온에 두툼한 패딩을 입은 분이 드물지 않더군.
공공 인터넷은 대체로 원활하다.
교통 정보쯤은 공공 와이파이로 해결 가능함.
여행 중에는 소지품을 한눈에 보이게 늘어놓는 편이 낫다.
내가 물건을 흘리지 않는 사람인데 이번에 사소한 물건 하나를 두고 왔더라.
누구라도 잘 쓰시기를.
쓸 만한 물건이니 그냥 버리지는 않았기를 바란다.
때맞춰 잘 떠난 여행이었다.
해결된 문제는 물론 없지만 마음은 다소 가벼워졌다.
심란한 기분을 조금은 덜어냈다고 할지.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파도가 일렁이는 바다이고,
쉴 새 없이 크고 작은 너울이 다가오리니.
또 오는군,
담담하게 대응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