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한강

마음에 남은 풍경들

by 기차는 달려가고

지난달 남쪽 여행에

이른 아침, 서울역에서 순천으로 가는 KTX를 탔었다.

캄캄한 시간이어서 주변이 겨우 식별되었는데.

한강을 지날 때,

날이 약간 흐렸던 것 같다.



색감을 확 떨어뜨린 어둠으로 흔들리는 강물과

그 위 경계가 구분되지 않는 같은 빛깔의 하늘에는

보름달을 막 지난 둥근달이 서쪽 하늘로 기울어가고 있었다.

흑백의 세상에 세피아 색감이 스며든,

빛바랜,

희미한,

뿌연 풍경은 마치 환영 같아서 나의 촉촉한 감수성을 건드렸다.


우리의 서울 생활이 부대끼고 시달리며 고달파서 그렇지,

사람들이 잠에서 깨어날 즈음의 너른 한강은,

혼자 잔잔히 흔들리면서 물이 흐르고.

하늘에는 달도 흘러가는 꽤 괜찮은 풍경이었다.



평생 늦잠을 자고.

지금처럼 새벽에 깨어 있어도 움직이지는 않아 집 바깥 풍경을 보지 못하고 살다 보니.

겨울 끝자락,

흐린 날, 달 밝은 새벽의 한강 풍경이 마음에 깊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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