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쪽 여행, 11- 어디 가나 밥 문제

마음에 남은 풍경들

by 기차는 달려가고

순천에 도착한 날이 아랫장 장날이었다.

아무리 전통시장 분위기가 죽었다 해도 장날은 장날이라

손님들에, 장사꾼에 해서 시끌시끌 북적거렸다.


나는 이렇게 온갖 먹거리들이 쌓인 북적이는 전통시장에 오면 살림 의욕이 샘솟는다.

배추 사다가 김치 담고, 메주 사서 된장 담고-

뭐, 평소에 하지 않는 이런 거사에 덤비려는 포부가 솟구치는 것이다.

박스가 아닌, 망에 든 고구마를 보셨는가?

팔뚝만 한 고구마들을 망에 담아서 높이 높이 쌓았다.

내가 좋아하는 곱창김도 한 손에 잡히지 않는 대량의 묶음으로.

바닷가라 펄떡이는 생선에, 말린 생선에.

과일은 확실히 저렴하고,

한창 제철인 꼬막도 무더기로 쌓여있었다.



부산에 가면 전복죽과 복국을 먹어야지, 했었다.

서울에서는 비싼 복어를 귀히 여겨 조심조심, 아끼면서 복어 요리라 부르는 것을.

부산에서는 마치

"아이고, 그게 뭐라고 예!" 반문하듯이,

툭툭 자른 복어 한 마리에 다진 마늘 넣고 콩나물 잔뜩 얹어 포르르 끓여낸 "복국".

오래전에 부산분이 데려간 동네 복국 집에서 먹은 복국이 그렇게 맛있어서,

이후로는 동네 복국만 찾아다녔다.


해운대에 유명한 복요리집이 있지만 아침부터 줄 서있는 그런 데 말고 동네 복국 집을 찾아다녔다.

내 눈에만 보이지 않았는지 옛날 동네를 가도 눈에 띄지 않았고.

겨우 발견한 두 개의 간판 중 하나는 문이 닫혀있었고,

한 집은 아예 '임대'라 쓰인 커다란 플래카드로 창문이 덮여 있더라.

이대로 돌아가나, 했을 때.

앗, 저기!

점심시간이라 온통 시커먼 아저씨, 할아버지들이 가득한 식당에서 겨우 한 자리 얻어 고대하던 맑은 "복국"을 먹을 수 있었네.

좋아하는 복어 껍질 무침까지 주셔서 기뻤다.

그런데,

경상도 남자들 말 없다, 는 소문은 누가 낸 거지?

와, 수다스럽데요.

밥 한 숟가락 당 테이블 위로 대화 한 바퀴.

목소리도 크시고요.



전복죽은 끝내 못 먹었다.

옛날 한국콘도 옆에 있던 허름한 전복죽집은 그 일대가 싹 바뀌어 자취가 없어.

젊은 호텔 직원에게 물었는데 한국콘도도 보지 못한 세대라,

나이 든 손님 티만 내고 말았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남쪽 여행, 10- 동네 풍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