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쪽 여행, 10- 동네 풍경

마음에 남은 풍경들

by 기차는 달려가고

서울을 떠날 때마다 느끼게 되는데,

정말 서울에는 1970년대 이전의 자취가 빠르게 소멸되어가고 있다.

단일 건물은 남아 있더라도 그 시절의 거리가 고스란히 남은 곳은 없다.


이번 여행은 서울에서 기차로 순천,

순천에서 오랫동안 타고 싶었던 경전선 기차로 남쪽 도시들을 지나 부산의 부전역에 내려서,

해운대로 이동하는 여정이었다.



순천은 인구 27~8만 정도로 작지 않은 도시이다.

하지만 여행자들이 처음 도착하는 순천역에서 종합버스터미널 부근을 보면,

오래되고 작은 도시라는 인상을 받을 것이다.

신구의 격차가 크고,

새로 지어지는 동네는 도시계획에 따라 형성되는 건 아닌지 도시 전체가 산만하다는 느낌이다.

한참 빈터를 지나가다가 불쑥 고층아파트 동네가 나타나는 식.

밤에는 도로 걷기가 무서울 것 같았다.

기차역에서 종합버스터미널에 이르는 구간이 통행인도 있고 복잡하지만 그렇다고 순천의 중심가이거나 번화가는 아닌 것 같다.

다음에 가면 요새사람들의 번화가를 반드시 가보리라.


차에서 바라보는 순천의 농어촌 주택들은 절대 황폐하지 않았다.

동네와 집의 형태는 예전 그대로였지만,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고치고 손질하는 듯 반질반질한 느낌이랄까.

할아버지들보다 할머니들이 월등히 많이 눈에 띄었는데 다들 깔끔하고 밝은 표정들이셔서 기분이 좋았다.

서울 사람으로서 남쪽 지방에 가면 동네 언덕 또는 집과 집 사이에 뜬금없이 나타나는 대나무숲이 인상 깊다.

한 그루, 두 그루가 아니라 가느다란 대나무숲 전체가 한 뭉텅이로 쓰윽, 바람에 흔들린다.



경상도 부산과 전라도 광주를 연결하여 이름 붙은 경전선은 객차 두 량의 무궁화호였다.

느릿느릿 한반도 남쪽을 지나가는데,

기차역 부근이 반드시 도시의 중심가는 아니어서

역 부근은 한산하고 멀리 모여있는 집들이 보이기도 했다.

작은 도시로 갈수록 1960, 1970년대의 거리가 여전히 활동 중이고.

거리의 모습과 주민들의 연령층은 비례하는 것으로 보였다.


그러니까 1960, 1970년대가 대단하다기보다는,

그 이후로 인구와 자본은 도시로, 그중에서도 오직 대도시로 집중되어서.

규모가 작은 지역들은 1970년대 이후로는 위축되어 가는 중으로 보였는데.

2000년대 이후,

농어촌 지역에 얼마쯤 재정지원이 이루어지고.

노인들에게 기초연금이 꾸준하게 지급되면서 생활에

조금은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개인적인 추측이다.



부산은 큰 도시이다.

내가 다닌 시간에만 그랬는지 모르겠는데

버스도, 지하철도, 동해선도 모두모두 승객이 많고 도로는 밀렸다.

출퇴근 시간이 아니었는데 말이다.


새로 지어진 고층아파트 군이나 옛날 동네나 할 거 없이 집들은 빽빽하다.

옛날 동네에는 확실히 노인분들이 빈번히 거리를 오가는데.

대체로 관광지 아니면 길에 다니는 사람들은 많지 않았다.

도로는 그렇게 막히고 차 안에는 승객들이 꽉 차있는데 말입니다.

산과 바다가 모두 있는 좋은 지역이지만 살기에는 쉽지 않겠다, 는 인상.

한 달 살기라면 모를까, 계속 살라면?

개인적으로 기장의 옛날 동네가 재미있었다.

시장이 있고 버스정류장과 전철역이 있으며,

오르락내리락하는 바글바글 복잡한 동네.

다음에 부산 가면 하루 시간을 내어 옛날 기장 동네 곳곳을 걸어보고 싶다.



진주에 가서 남강을 거닐어보고 싶었다.

보성에도, 벌교에도, 하동에도, 마산항에도,

경전선 기차 타고 가서 점심 한 끼 먹고 동네를 어슬렁거리다가,

다시 경전선 기차로 돌아오고 싶었는데,

머릿속에서 오락가락 생각으로만 그치고 말았다.

다음을 기약하자.


배낭 메고 두어 달 우리나라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니고 싶은 바람은 있는데,

실행하기에는 육신의 부담이 너무 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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