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만의 방>
버지니아 울프 지음, 오진숙 옮김, 솔,
몇십 년 만에 이 책을 다시 읽었다.
전에 읽을 때는 부모님 품에서 세상 무서울 거 없던 20대여서,
"음, 그렇지" 정도로 큰 감흥 없이 동의했던 것 같다.
젊었을 때 버지니아 울프의 글들을 찾을 수 있는 한에서는 다 찾아 읽었었다.
특별한 이야기 없이 마음과 머릿속을 안개처럼 떠도는 느낌과 상념들을 파스텔 그림처럼 형태로 만들어낸 그 방식이 좋았다.
40년이 지나 다시 읽은 <자기만의 방>은 하필이면 내가 로베르트 발저의 소설을 읽은 뒤였다.
마음에 아릿한 슬픔이 남아 있는 상태에서 읽은 버지니아 울프의 글에서는 지나간 시대의 느낌이 확연했다.
내 기분에는 말이다.
19 세기말~ 20세기 전반기에 시대를 풍미했던 작가의 글에서 '시대의 한계'를 느낄 때가 있다.
주로 지식인 그룹에 시야가 갇혀있다는 소감인데, 즉-
실제 경제를 몸으로 실행하고,
심지어는 일상생활의 모든 실제 행위를 가능하게 해주는 노동계급에 대해서는 나와는 다른 세상,
그렇게 노동만 하기 위해 태어난 존재로 여긴다는 점이다.
당시 사회가 지금과 다르니 그 시대를 반영한 것이라 봐야지.
이번에 읽은 <자기만의 방>에서 두 가지가 특히 유감스러운데.
1) 지은이의 실화인지,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허구의 설정인지는 분명하지 않은데.
화자는 유산으로 받은 연 오백 파운드의 고정 수입을 갖고 있다.
… 우선 자신이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항상 하고 있다는 것, 그것도 노예처럼 아첨을 떨고 아양을 부리며 …(55쪽) ,
이런 싫은 일을 하지 않고 글쓰기에 매진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글을 쓰고자 하는 모든 여성들이 유산을 받을 수는 없을 테니.
그러면 어디서 고정 수입을 얻어 글을 쓰라는 말인가?
2) 물론 이 글이 여자대학생들에게 픽션을 쓸 수 있는 조건에 관해 강연한 원고에서 출발했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이 시대의 다른 작가들에게서 보이는 시대적 한계가 있다.
'자기만의 공간'과 '고정된 수입'이라는 조건은 남녀 구분 없이 글을 쓰고자 하는 누구에게나 절실한 조건이다.
그러나 추측이긴 하지만 어떤 천재가 노동자 계급 사이에 틀림없이 존재했던 것처럼 여성들 사이에서도 반드시 존재하였을 것입니다. 심심찮게 에밀리 브론테나 로버트 번스 같은 천재가 불꽃을 일으켜 그 현존을 증명하니까요. 그러나 확실히, 결코 그 천재는 자신의 생각을 종이에 옮기지는 못하였습니다. (70쪽)
'노동자 계급에서 태어난 어떤 천재'에게까지 '자기만의 방'과 '고정 수입'이라는 필요조건은 왜 확대되지 못했을까?
노동계급에서 태어난 남자 천재는 그저 노동계급일 뿐이라,
작가의 인식 범위 밖이었을까?
그 시대에 이런 계급적 관점은 드물지 않다.
그런 시대적 한계를 깨뜨린 사람들이 대단한 거고,
그 안목이 새로운 시대를 열어온 거겠지.
격렬하게 동의한 구절도 있었다.
걸작이란 혼자 외롭게 태어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지요. 그것은 여러 해 동안 일군의 사람들이 공통으로 생각한 결과이며, 따라서 다수의 경험이 한 사람의 목소리 뒤에 존재하는 것이지요. (92쪽)
내 시절 흥미 있었던 작가였고 버지니아 울프의 글이 갖는 힘은 여전하겠지만,
인상은 확 바뀌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