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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차는 달려가고 Mar 26. 2023

추락이 가속화되는 과정

끄적끄적

전에 소개한 찰스 디킨스의 소설 <황폐한 집>에는 인간사의 여러 가지를 다루고 있어 나와 주변을 돌아보는 계기가 된다.

작가의 재능이란 확실히,

가려져 있는 표면의 이면을 통찰하는 것에 더해,

이를 누구나 알아듣도록 쉽고 명확하게 표현하고 전달하는 데 있다.



부모가 없는 리처드는 학교 생활을 마치고 같은 처지인 친척 에이더, 소설의 화자인 에스더와 함께 후견인인 잔다이스 씨 집으로 오게 된다.

소설의 화자인 에스더는 잔다이스 씨가 지인의 부탁을 받고 조건 없이 돌봐주는 상황으로,

잔다이스 씨 집에서 하인들을 통솔하며 살림을 주관하는 안주인 역할을 맡는다.

친척 관계인 에이더와 리처드, 잔다이스 씨는 모두 선조 때부터 물려받은 같은 소송 건의 당사자인데.

그 소송은 조상의 유언장을 둘러싼 재산과 신탁 문제로 이미 몇 대를 내려오면서 시간만 질질 끌 뿐,

내용이 변질되어 버린 오리무중 상태이다.


제법 넉넉한 재산가인 중년의 독신남 잔다이스 씨는 그 소송에 대한 일말의 기대 없이,

내버릴 수도 없어 지긋지긋해할 뿐이고.

에이더를 사랑하는 리처드는 시도했던 여러 가지 직업에서 모두 실패하고 빚이 쌓이면서 가능성 없는 소송에 마지막 희망을 걸게 된다.


처지가 절망적이 될수록 리처드는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성실하게 활로를 모색하는 대신,

순수한 마음으로 자신을 돕는 은인 잔다이스 씨에게 오히려 탓을 돌리면서 잔다이스 씨가 자신을 괴롭힌다는 망상에 빠진다.

  

 “볼스 씨! 내가 처음 존 잔다이스의 집으로 갔을 때 누군가가 내게 그는 겉으로 보이는 것만큼 욕심 없는 아군이 아니라고, 나중에 차츰 정체를 드러내는 걸 보면 알 거라고 말했다면 난 얼마든지 거친 말을 써가며 그 비방을 물리치고, 그를 위해 얼마든지 열심히 변호했을 겁니다. 난 세상 물정을 전혀 몰랐어요! 하지만 지금은 분명히 말하지만, 그는 나한테는 소송의 화신이나 다름없어요. 이 소송사건은 추상적인 것이 아니라 존 잔다이스 자체예요. 난 힘들어지면 힘들어질수록 더 그에게 이를 갑니다. 소송이 하루씩 늦어질수록, 실망이 차곡차곡 쌓일수록 존 잔다이스에게서 받는 손해가 커지는 셈입니다.”

(633쪽)

  

한때는 싱그럽고 활기찼던 명랑한 청년 리처드가 왜곡되고 피폐해 가는 심정을 작가는 이렇게 대변한다.


하지만 끊임없이 부당한 대우에 시달리면 자신도 남을 부당하게 대하고 싶은 마음이 들기 마련이다. 실체가 보이지 않는 그림자와 싸우다 지면 분명히 눈에 보이는 적을 만들어내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것이다. 실체 없는 공소 사건보다 분명히 눈에 보이는 한 친구- 그를 파멸에서 구해주고자 한 친구-를 적으로 돌려야만 우울한 와중에서도 마음이 후련해지는 것이다.

(637쪽)


그런 리처드를 끝까지 사랑으로 감싸면서 자신을 희생하는 에이더.

그런 에이더를 바라보면서 자신에 대한 절망감으로 잔다이스 씨를 더 미워하며 추락해 가는 리처드.

에스더와 잔다이스 씨는 이런 대화를 나눈다.


“오해로 똘똘 뭉친 불쌍한 리처드,” 내가 말했습니다.

“도대체 언제나 되어야 미망에서 벗어날까요?”

“지금으로서는 가망이 없겠지.” 잔다이스 씨가 대답했습니다.

“그는 자기가 고통스럽게 되면 될수록 내가 그를 괴롭히는 원흉이라고 생각해서 나를 더 싫어할 거야.”

(914쪽)



헤어나기 힘든 어려움에 처했을 때,

가장 먼저 할 일은 끓어오르는 분노와 좌절감을 추스르는 것이고.

담담하고 맑은 정신으로  문제의 원인을 올바로 파악해야 한다.

가만히 나를 들여다보면서 나의 잘못과 부족함을 인정하고.

내가 겪는 어려움에 대한 사회와 세상의 몫을 분석하면서.

내가 풀 수 있는 만큼은 내가 풀어내고,

사회의 몫은 사회 개혁에 한 손 보탠다거나.

참을성을 갖고 운명의 수레바퀴가 돌아가기를 기다리거나.


고난은 우리를 키워주는 디딤돌이 되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고난의 바다에서 버둥거리다 비명을 지르며 침몰해 간다.


지금 정부는,

이쁜 적도 전혀 없었던 삐뚤어진 거짓말쟁이,

더 못되고, 더 못나고, 흉포하며,

더, 더, 더 무능 배은망덕 리처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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