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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차는 달려가고 Mar 22. 2023

댓글을 읽으며

끄적끄적

하루종일 안절부절못하는 날이 있다.

책을 읽어도 글자만 훑고 지나갈 뿐 내용 파악은 안 되고.

음악을 들어도 선율이 그저 귓전을 지나쳐서 사라진다.


벌떡 몸을 일으켜 청소를 하고,

세탁기를 돌리고,

반찬이 만들고... 하는 중에는 그 행위에 집중하는데.

그 순간이 지나면 다시 웅성웅성,

마음이 시끄럽다.



그렇게 침몰했던 어느 날이었다.

종일 세수도 하지 않고 빈둥빈둥 누워서 휴대폰만 쥐었다, 던졌다, 하던 날.

커뮤니티들과 유튜브를 들락거리면서 뿌연 안갯속을  헤매고 다니던 중에.

우연히 어느 댓글에 눈이 갔는데 그 짧은 몇 글자 안에 담긴 글쓴이의 절망과 그럼에도 살고 싶다, 잘 살아내고 싶다, 는 간절한 바람이,

팍, 내 마음에 와서 꽂혔다.

한 달 정도의 운세를 는? 콘텐츠였다.

"이 달에는 좋은 일이 생긴다!"는 지푸라기라도 필요했겠지.

의욕을 갖고 할 만큼 했던 날들이 있었겠고.

하면 된다!, 는 믿음도 있었을 것이다.

하고 또 하고,

바라고 또 바랐지만,

달라지지 않는 운명에 지쳤겠지.


이렇게나 많은 이들의 마음속에

돈을 기다리고,

사랑을 바라며,

건강을 회복하고,

친밀인간관계를 꿈꾸면서.

 예뻐지게 해달라고,

시험에 붙게 해달라고,

취업하게 해달라고,

누군가와 손을 잡을 수 있게 해달라고,

수렁에서 건져질 기적을 기다리고 있구나.

사월 초파일 무렵 절에 가면

부처님 앞에 연등을 올리며 리본에 쓴 소원들을 유심히 읽는데.

어느 정도 걸러지고 포장된 그 소원 문구보다,

댓글에 담긴 사람들의 마음이 훨씬 솔직해서,

무심히 거리를 지나 사람들이 어떤 바람을 품고 살아가는지 생생하게 들여다본 기분이었다.



헤어진 연인과의 재회 가능성을 점치는 타로 콘텐츠에는 특히나 애절한 마음들이 흘러넘쳤다.

"진짜 잘해줄게 이제는 돌아와", 하는 댓글이 눈에 띄었다.

사랑이 뭐라고.

실체가 없나, 싶다가도

이렇게나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차지하는데,

어쩌면 한 사람에 대한 사랑이 평생 마음을 차지하기도 하는데.


아휴,

사랑아,

도대체 넌 뭐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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