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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차는 달려가고 Mar 29. 2023

죽음을 앞둔 어머니와 나누었던 이야기

끄적끄적

어머니는 마지막 닷새를 머물던 호스피스 병동에서

약물에 취해 수면 상태에 들어가기 전,

그러니까 돌아가시기 이틀 전까지 정신이 또렷하셨다.

집에 계실 때는 지독한 통증이 좀 가시면,

곁에 있는 딸과 편안한 표정으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셨다.


죽음을 앞둔 그때,

자식 누구 하나 빠지지 않고 다 걱정거리였는데.

평생 부모 그늘에서 살아온,

뜬구름 속에서만 살아가려는 이 딸의 앞날을 떠올리면 정말 암담하셨으리라.



그렇게 딸의 처지를 걱정하시길래,

"엄마, 난 내 장래 걱정 안 해. 내가 지금까지 나쁘게 살아오지 않았어. 그러니까 내가 감당할 수 없는 힘든 상황은 오지 않을 거라 믿어."

그랬더니.

"그럼, 그럼. 네가 얼마나 착하게 살았니."

"그치, 그치?"

"그렇게 생각하니까 마음이 놓이는구나. 호호호"

뭐 이런 오글거리는 얘기가 오갔더랬습니다.


그런데 어머니 돌아가시고 혼자되어 지난날들을 곱씹다 보니.

어이쿠, 착하게 살아오긴 개뿔,

내가 잘못한 일들이 매일매일 우수수 떠오르고.

무엇보다 이 세상은,

착하게 살아간해도 안전과 평안이 보장된다는 건 또 다른 차원의  이야기라는 진실을 깨달았다지요.



90년 가까이,

한반도 격랑의 세월을 지나면서도,

평생 착하고 순한 세계관을 지켜낼 수 있었던 어머니의 인생은 행운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머니의 92세 생신,

천국에서 평안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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