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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차는 달려가고 Apr 08. 2023

출생은 상벌이 아니다

끄적끄적

전에 소개한 찰스 디킨스의 소설 <황폐한 집>에 나오는 에스더는, 

자라면서 자신을 키워준 의붓어머니, 사실은 이모,로부터 늘 이런 말을 들었다.


에스더, 너에겐 생일 따위가 없는 편이, 차라리 태어나지 않는 편이 좋았을지도 모르겠구나!”


너처럼 어두운 그림자를 짊어지고 태어난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려면 먼저 복종과 극기와 부지런함을 배워야 한다. 너는 다른 아이들과는 달라, 에스더, 넌 다른 사람들과 달리 예사롭지 않은 천벌을 받은 채 태어났으니까, 넌 달라.”

(29쪽, 30쪽)



작중 화자인 에스더는 혼전 사생아였던 거다.

집안을 먹칠하는 출생이라서 존재조차 숨겨야만 했던 아기.

에스더를 키워준 이모는,

친모인 동생에게는 아기가 죽었다 알리고는,

자신은 결혼을 포기하고 아기와 함께 세상에서 숨어버렸다.

그러고는 영문도 모르는 어린 에스더를 죄악시했던 것이다.


까닭 없이 주눅 들고 미안한 마음으로 최선을 다해 살아온 에스더는,

잔다이스 씨 댁에서 편안한 마음으로 살게 되면서 자신의 존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된다.


여왕이 자신의 출생에 대해 그렇듯이 나 또한 내 출생에 아무 책임이 없습니다. 하늘에 계시는 아버지 앞에서는, 나는 태어났다는 이유로 벌을 받지 않고, 여왕도 그 태생으로 인해 상을 받지 않습니다.

(582쪽)



그렇다.

출생의 원인이나 생명 자체는 아기의 공도 아니고 죄도 아니다.

그냥 우연일 뿐이다.

그런데 그 우연이 어떤 인생에게는 평생의 축복이 되기도 하고,

누구에게는 짐이 되기도 하며.

벗어날 수 없는 한계가 되거나,

까닭 없는 혜택이라는 가능성을 주기도 한다.

낙인이 찍히기도 하고, 족쇄가 되어 평생을 좌우하기도 하지.


전두환의 손자가 5.18을 사죄한다.

자신의 정체성으로 극심한 갈등과 고뇌의 시간을 보낸 기색이다.

자신의 출생부터 고뇌했다는 내용에서 청년이 몹시 안쓰러웠던 나는, 에스더의 말을 꼭 전하고 싶었다.


파렴치범이나 극악한 범죄자의 뉴스를 접할 때,

그런 사람을 부모로 둔 아이들을 떠올린다.

내 안에 흐르는 피,

내가 물려받은 유전자를 부인해야 하는 무거운 등짐을 지고 태어난 아기는 어떤 마음으로 세상을 살아가야 할까.



여왕으로 태어났다고 떠받들 것이 아니고,

죄인의 자식으로 태어났다고 함부로 할 일이 아니다.

어떤 생명도 죄가 없으니.

모든 아이들은 따뜻한 보호와 사랑을 받을 태생적 권리가 있다.


최저의 출산율로 인구 소멸 단계에 들어선 우리나라에서는 특히 모든 생명을 소중히 여겨야 하는데 말입니다.

제발,

모든 아이들이 태생적인 한계로 형벌 같은 삶을 사는 일은 없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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