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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차는 달려가고 Apr 07. 2023

19세기 서양

끄적끄적

건축가 르 코르뷔지에의 책 <도시계획>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온다.


서양 문명을 통해 쟁취한 우리의 현대 문화는 고대 문화를 소멸시켰던 침입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현대 문화는 1000년의 좌절을 알고 난 후, 10세기에 걸쳐 서서히 엮어졌다. 중세에 발명된 탄복할 만한 연구열의 첫 번째 도구로, 18세기에 위대한 광명의 단계를 기록했다. 이어서 19세기는 역사적으로 가장 놀랄 만한 준비의 시기였다. 이성의 근본원리를 제기했던 18세기 덕분에, 엄청난 노력을 기울였던 19세기에는 분석과 실험에 몰두했고, 완벽하게 새롭고, 놀라우며, 혁명적으로 사회를 변혁시킬 만한 도구를 만들었다. 이 노력의 후계자들은, 우리는 현대적 감정을 인지하고 창조의 한 시대가 시작한다는 것을 느낀다. 다행히도 이전에는 결코 갖지 못했던 효과적인 수단을 마음대로 이용함으로써 우리는 현대적 감정을 통해 강제로 밀어붙였다.

<도시계획> 중 50쪽,  르 코브뤼지에 지음, 정성현 옮김, 동녘,


서양 19세기는 확실히 대단했다.

나는 19세기 서양을 배경으로 하는 소설들을 많이 읽어왔고,

소설에서 시작된 19세기에 관한 흥미는

각 분야, 세계 곳곳의 19세기로 확대되었는데.

그 시기에 관한 읽을거리들이 아직도 줄 서있다.

19세기에서 현대로 넘어오지 못하고 있다.

소설은 확실히 근대 시기 서양의 산물이고,

특히 19세기, 그들의 사회를 가장 잘 담은 문화적 양식으로 내게는 보인다.



동양인으로서 나는 결코 그 시대 서양을 호의적으로만 바라볼 수 없는 입장이고.

각 분야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이루어진 눈부신 발전과 경제적 성장,

사실 소수에게만 그 혜택이 돌아갔을 뿐이다.

발전의 이면에는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겪으며 어둠 속에서 처참하게 살아갔다는 사실을 잘 안다.

또 서양 몇 나라의 지배 하에서 지구의 훨씬 넓은 지역에서 대다수의 인류는 이루 말할 수 없는 수탈을 당했다.


그럼에 내가 19세기 서양이 대단했다, 평가할 수 있는

"인간의 자부심이 최고점을 찍었다", 는 점이다.

신의 뜻에 따라 주어진 인생을 그저 살아가는 미미한 존재였던 인간이,

자연계를 비롯해 이 세상의 진실을 발견하고,

과학이 발전하고 기술을 발명했으며.

사람의 내면을 파악하고 사유하면서 인간의 "이성"을 자신하게 되었다.

인간의 능력은 앞으로도 계속 진보할 것이며,

따라서 언젠가는 세상의 모든 문제점들을 해결할 수 있다고 믿었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유일무이한 존재 인간은,

그 시절을 살아갔던 사람들 중 아주 소수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이다.

식민지 인구도 아니고,

노예는 당연히 아니며.

자국의 노동계층도 물론 아니었다.



그 시절의 문학 특히 소설들은 동아시아에 살고 있던 나를 비롯한 전 세계 수많은 사람들을 서구 문화 속으로 자연스럽게 끌어들였을 것이다.

그들 시선을 고스란히 흡수하면서 그 시선으로 자신을 평가했겠지.

지금도 편향된 시선은 여전하다.


개인의 경험을 이해하는 데도,

시대 전체를 조망하는 데도 시간이 필요하다.

지난달부터 계속 지난 시기의 개인적인 어떤 경험을 떠올리고 있는데,

이제야 그 시절 내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또렷이 보인다.

아, 사람은 얼마나 어리석은 존재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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