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형제 민담집>을 읽고 있다.
(김경연 옮김, 현암사)
우리가 어릴 적에 동화로 읽어서 순화된 내용으로 기억하고 있는데,
원래 그림 형제가 수집한 민담에는 거친 내용이 적지 않다.
기근이 들면 아이들은 버려지고,
쉽게 사람을 죽인다.
왕과 결혼하는 신분상승 미녀들과 이를 시기하는 악독한 의붓어머니가 있는가 하면,
콧대 높은 공주와 결혼하는 꾀 많은 청년들이 있다.
19세기 초에 채집한 이야기들인데 이야기 속 배경은 아직 근대가 아니다.
그 시절에는 어린아이들을 두고 병들어 죽는 어머니들과,
아이들을 키울 수 없는 가난한 어머니들이 적지 않았다.
의붓어머니는 아이들을 학대하고,
친아버지는 무력하다.
그러니 아직 어린 자식들을 두고 세상을 떠나야 하는 어머니들은 얼마나 애가 닳았을까.
어느 나라의 왕은 열세 번째 아이를 낳는 왕비에게 만약 딸이라면 그 딸에게 나라를 물려주겠으니 아들들은 모두 죽이겠다고 선언한다.
급히 아들들을 숲으로 피신시키는 왕비.
무서운 숲으로 열두 아들들을 떠나보내며 슬픈 어머니는 아들들이 추위에 떨지 않기를 축원한다.
자식을 품에서 떠나보내는 모든 어머니의 마음이겠지.
“하느님께서 너희들을 지켜 주시기를! 밤마다 일어나 너희들이 겨울에는 불 옆에서 따뜻하게 지내도록, 여름이면 더위에 몸이 여위지 않도록 기도하겠다.”
(79쪽)
우리가 신데렐라로 알고 있는 이야기에서도 죽어가는 어머니는 역시 신께 아기를 부탁한다.
아이가 앞으로 겪게 될 고통을 상상이나 했을까.
“얘야, 믿음을 갖고 경건하고 착하게 살아가면 자애로운 하느님이 언제나 지켜줄 게다. 나도 하늘에서 너를 내려다보며 늘 네 곁에 있겠다.”
(149쪽)
죽어서도 아이를 지켜보는 어머니.
지켜보는 것만으로는 모자라서,
억울하게 죽임을 당한 어머니는 신의 허락을 받았는지 직접 아기를 돌보러 현실에 나타나기도 한다.
모두 잠이 든 한밤중이었다. 유모가 아기 방 요람 곁에서 혼자 지키고 앉아 있는데, 문이 열리며 진짜 왕비가 들어오는 것이었다. 왕비는 아이를 요람에서 꺼내 팔에 안고 젖을 주었다. 그런 다음 베개를 다독다독 털어서 아이를 다시 눕히고 요람 덮개를 덮어 주었다.
(93쪽)
어머니를 잃은 아이처럼 애처로운 존재가 또 있을까.
동서고금, 아이에게 어머니는 세상의 전부이고.
여린 생명이 성인으로 자라기까지 어머니 품은 필수이다.
동화 "헨젤과 그레텔"에서 아버지는 아이들과 함께 기근을 견디려 했지만,
식량이 모자라니 자식들을 버리자는 새 아내의 말에 굴복한다.
남편은 마음이 무거웠다. ‘아비로서 마지막 한 입까지 아이들과 나누어 먹는 것이 더 좋을 텐데.’ 남편은 그렇게 생각했지만 아내가 도무지 그의 말을 듣지 않았다. 오히려 그를 나무라고 비난했다. 일단 시작한 일은 물릴 수 없는 법이니 한 번 굴복했던 사람은 그다음에도 굴복할 수밖에.
(112쪽)
시대와 지역을 막론하고 자식을 지키려는 어머니의 분투는 눈물겹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