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스 디킨스의 <올리버 트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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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버 트위스트 1권, 2권〉,
찰스 디킨스 지음, 윤혜준 옮김, 창비,
1812년 2월, 영국 포츠머스 디킨스 집안에서는 장남이 태어났다.
찰스라고 이름 붙여진 이 아이는 자라서 영국을 대표하는 걸출한 작가가 되었고,
200년 가까이 그의 작품들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으며 명성을 누리고 있다.
작가는 거의 첫 작품부터 열렬한 호응을 받으며 등장해 잇달아 대작을 출간했는데.
사회정의와 선에 대한 굳은 믿음을 바탕으로,
당시 영국 사회와 인간의 행태를 예리하게 통찰하는 작품을 썼다.
이 소설에서 작가는 산업혁명으로 물질적 성공을 이룬 빅토리아 시대 영국 사회의 부조리와 어두운 측면을 쉽고 재미있게 해학과 익살로 풀어간다.
〈올리버 트위스트〉는 1837년, 작가가 25세 때 잡지에 연재하기 시작하여,
모든 신분과 연령층을 아우르는 독자들의 열렬한 호응을 받으며 1838년 연말에 단행본으로 출판된다.
선풍적인 인기를 모은 만큼 가난하고 희망 없는 사람들의 비참한 생활과 생생한 범죄 조직의 행태, 관리들의 무책임과 탐욕 등 영국 사회의 부조리하고 부패한 양상에 대한 실감 나는 묘사에 이런저런 말들이 있었던 모양이다.
단행본으로 출간하면서 작가는 머리말에,
범죄에 연줄을 댄 패거리를 실제 존재하는 그대로 그려내고, 그들의 온갖 흉한 모습 그대로, 그들의 갖은 야비함과 그들 삶의 모든 누추한 참상을 그대로 제시하는 것. 어디로 향하건 거대하고 음침한 교수대가 앞길을 어둡게 하고 늘 삶의 가장 지저분한 길가를 불안하게 숨어 다니는 그들의 실제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 필자의 생각엔 이 일을 하는 것이야말로 무언가 필요한 일을 하는 것이며 사회에 기여하는 일을 시도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최선을 다해 이 작업을 수행한 것이다.
(1권 7쪽),
라고 소설이 현실에 기반했음을 천명하면서.
낸씨의 행실과 인격이 자연스러우냐 부자연스러우냐, 그럴 법하냐 아니냐, 옳으냐 그르냐를 따지는 것은 사실 쓸모없는 일이다. 그녀의 존재가 사실이기 때문이다. 인생의 이 우울한 그늘을 관찰해 본 이라면 누구나 사실이 이러하다는 것을 알 것이다.... 이 불쌍한 생명이 작품에 처음 등장하는 데서부터 강도의 가슴에 피로 물든 머리를 기대고 죽을 때까지 단 한마디도 과장하거나 지나치게 꾸미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것은 하느님이 이런 타락하고 불쌍한 가슴들에도 남겨놓는 진리요, 아직 머뭇거리며 남아 있는 마지막 물 한 방울이기 때문이다. 거기에는 인간성의 가장 좋은 색조와 가장 나쁜 색조가 다 들어간다. 가장 흉한 색깔의 대부분과 가장 아름다운 색깔 몇 가지가 섞여서, 하나의 모순, 비정상, 또는 불가능함으로 보이는 것이다.
(1권 12,13쪽)라고 일갈한다.
올리버의 탄생은 이러했다.
먼 길을 걸어온 젊은 여자가, 구빈원에서 아기를 낳고 곧 죽는다.
무관심 속에서 아무렇게나 올리버라 이름 붙여진 아기는,
동일한 직무를 이미 숱하게 수행하느라 누렇게 바랜 캘리코 천으로 된 헌 옷으로 그를 감싸고 이름표와 번호표를 달아놓자 올리버는 즉시 자기에 합당한 신분으로 분류되었다- 교구가 책임지는 아이, 구빈원 고아, 끼니의 반은 굶고 뼈 빠지게 일만 하는 미천한 처지, 세상을 헤매 다니며 쇠고랑을 차거나 구둣발에나 차일 신세, 누구나 경멸하고 아무도 동정하지 않는 인간.
(1권 20쪽)으로 세상에 내던져진다.
그 후 대략 여덟 달 내지 열 달 동안 올리버는 체계적으로 진행된 사기와 기만의 희생자였다.
(1권 21쪽)
생명으로서 존중이나 배려를 전혀 받지 못한 아기는 같은 처지의 아이들을 맡아 양육하는 시설로 옮겨지고.
이곳에서 올리버는 정당한 보살핌을 받지 못하면서 학대와 굶주림 속에서 성장하게 된다.
일주일 당 한 명당 7 페니 반 시세로 돈을 받고 이 어린 죄수들을 친자식처럼 보살피고 있었다. 일주일에 7 페니 반이면 아이 하나쯤은 잘 먹이고도 남을 만한 돈이다. 7 페니 반은 아이가 배가 불러 불편할 정도로 많은 음식을 살 수 있는 큰돈이다. 나이가 지긋한 이 아주머니는 지혜와 경륜이 넘치는 분이라... 자신에게 좋은 것이 무엇인지도 매우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그래서 매주 지급되는 식비의 대부분을 자기 몫으로 챙기고 교구의 자라나는 세대에게는 심지어 본원보다도 더 적은 음식을 할당해 주었으니, 이렇게 가장 깊이 파먹은 우물을 더 파고 들어가 먹으면서...
(1권 22쪽)
그러니 아이들의 식사는 이랬다.
수도회사와 계약하고 곡물상에게는 가끔씩 오트밀을 공급하도록 해서, 하루 세끼 묽은 죽과 일주일에 두 번 양파 조금, 일요일엔 둥근 빵 반 덩어리를 지급하게 했다.
(1권 32쪽)
몹시 배고픈 올리버가 감히 단지 먹을 것을 조금 더 달라고 했다는 이유로,
이사들은 열띤 토론을 벌였다. 올리버를 즉각 징벌방에 가두라고 명령했고, 다음날 아침 대문에 올리버 트위스트를 교구의 손에서 데려가는 사람이 있다면 5파운드의 사례를 하겠다는 방을 붙였다.
(1권 34쪽)
관련자 누구도 아이들의 사정을 알아보려 하거나 관심을 갖기는커녕 귀찮게만 여기고 아이들을 사리사욕의 도구로 쓰는데만 골몰했으니.
올리버가 죽든 말든, 기계처럼 맘대로 부려 먹히든 말든, 귀찮은 물건 떠밀 듯 되는대로 처리하려고만 한다.
결국 보호자 없는 이 불행한 아이들은 소설의 첫머리에 쓰여 있듯 그렇게,
굶주리고, 뼈 빠지게 일하고, 이리저리 짓밟히다가 결국은 쇠고랑을 차는- 그런 인생행로 말고는 도무지 다른 방법은 없는 것일까?
책을 읽는 내내 평정심을 지키기 어려울 만큼 올리버의 고난은 계속되고 상황은 악화된다.
그렇게 목숨마저 위협받는 최악의 상황에서, 끝내 온전한 자신으로 살아남는 올리버.
혈기왕성한 약관의 작가는 세상은 반드시 권선징악이어야 한다는 믿음을 가졌던 듯하다,
(후기 작품으로 가면서 이처럼 눈에 보이는 권선징악의 방식은 다소 형태가 달라지는 듯하다-개인적인 소견)
다행히도 올리버는 행복한 가족 안에서 건실한 청년으로 성장하는 해피엔딩을 이룬다.
악의 소굴에 빠진 올리버가 악에 물들지 않고 자신의 선함을 굳게 지킬 수 있었던 요인은 무엇일까?
어린아이 하나가 작은 화단에서 잡풀을 뽑고 있었는데, 그가 손을 멈추고 창백한 얼굴을 들자 자기의 옛 동료 중 하나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올리버는 떠나기 전에 그 애를 보게 되어 기뻤다. 비록 자기보다 나이가 어렸어도 그 애는 자기의 벗이요 놀이친구였던 것이다. 그들은 정말 숱하게도 함께 얻어맞고 함께 굶고 함께 갇혔던 것이다.
...
“난 도망가는 중이야, 사람들이 하도 때리고 괴롭혀서. 딕. 난 멀리멀리 가서 크게 성공할 거야. 어디로 갈지는 아직 몰라. 너 참 창백하기도 하구나!
(1권 85쪽)
“머지않아 난 죽을 거야. 의사가 사람들한테 말하는 것을 들었어.” 아이가 옅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형 얼굴을 봐서 참 좋다. 정말 하지만 여기서 머뭇거리면 안 돼. 어서 가, 응?”
“그래, 그래. 작별인사나 하고.” 올리버가 대답했다. “다시 만나자, 딕. 우린 꼭 다시 볼 거야! 건강하고 행복하게 지내, 응!”
“나도 그랬으면 좋겠어.” 아이가 말했다. “죽은 다음엔 아마 그렇게 되겠지. 하지만 그전엔 안될 거야. 의사 선생님 말이 맞을 거야. 올리버. 왜냐하면 꿈에 천국이나, 천사들, 그리고 깨어있을 땐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다정한 얼굴들이 자주 나타나거든. 뽀뽀해 줘, 형.”
아이가 낮은 대문 위로 기어올라 작은 두 팔로 올리버의 목을 감으며 말했다. “잘 가, 형! 하느님이 형을 지켜주실 거야!”
이 축복의 말은 어린아이의 입술에서 나온 것이었지만, 올리버가 지금까지 받은 최초의 축복이었고, 그 후 그는 온갖 투쟁과 고생, 곤경과 변화 속에서 단 한 번도 이것을 잊은 적이 없었다.
(1권 86쪽)
노파는 배가 좌초해서 이 세상 어딘가에서 맨발로 방랑하는 손주가 있던 터라, 이 가엾은 고아를 불쌍히 여겨서 줄 수 있는 것은 다 주었고 그리고 그 이상으로 베풀었다. 노파는 친절하고도 다정하게 위로해 주고 게다가 동정과 연민의 눈물까지 흘렸으니 그것은 올리버의 영혼에 지금까지 겪은 고통보다 훨씬 더 깊이 새겨졌다.
(1권 90쪽)
올리버는 그랬다.
밥과 돌봄 대신 굶주림과 학대, 저주와 모욕을 받으며 자라났지만.
죽어가는 친구에게서 받은 '최초의 축복'을 절대 잊지 않았고.
가난한 노파가 가엾이 여기며 베풀어주었던 친절을 자신이 겪어야 했던 고통보다 더 깊이 마음에 새겼다.
또 범죄 집단에 끌려가 생명을 잃을 경지까지 놓였던 올리버는,
아이는 두려움으로 갑자기 부르르 떨면서 책을 덮어 옆으로 밀어버렸다. 그리고는 무릎을 꿇고, 자기가 이런 짓을 하지 않게 해 달라고, 만약 이렇게 무섭고 엄청난 범죄를 저지를 운명이라면 차라리 당장 죽게 해달라고 하늘에 기도했다.
(1권 222쪽)
올리버는 끔찍한 괴로움을 겪으면서도 고통스러운 자신에게 와닿았던 한줄기 따사로운 햇살을 고마워하면서 오래도록 기억하고 소중히 여길 줄 알았다.
역경 속에서도 체념하지 않고 선함과 올바름을 구하는 정직한 마음이 있었다.
“저 아이가 나쁜 애였다고 쳐요.” 로즈가 말을 이었다. “하지만 저 애가 얼마나 어린지 생각해 보세요. 저 애가 어머니의 사랑이나 가정의 안락함을 전혀 몰랐을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해 보세요. 학대받고 주먹질을 당해서, 아니면 배가 고파서 저들과 한 패가 되어 억지로 죄를 짓게 됐는지도 모르잖아요. 고모님, 친애하는 고모님. 제발 이것을 감안해 주세요. 이 병든 아이가 감옥에 끌려가기 전에 말이에요. 일단 그렇게 되면 저 애를 바른 길로 가게 할 가능성은 완전히 사라지는 셈이잖아요. 아! 고모님께서 절 사랑하시고 다정하게 대해주셔서 전 부모님이 안 계신 슬픔을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어요. 하지만 고모님이 계시지 않았다면 이 불쌍한 아이처럼 그 누구의 도움도 그 누구의 보호도 받지 못했을 거예요. 너무 늦기 전에 아이에게 동정을 베푸세요!”
(2권 15쪽)
무엇보다 올리버의 착한 성품을 알아주고 믿어주고 이해해 주며,
수렁에서 빠져나올 수 있도록 기꺼이 손을 내밀어 힘껏 잡아 올려준 도움이 있었다.
물론 그 구원의 밧줄을 잡을 수 있는 행운은 올리버의 천성적으로 착하고 반듯한 성품 덕택이었지만.
그러한 모두가 행운의 혜택을 입는 것은 아니니.
(제발 스스로 빠져나오기 힘든 어려움 속에 있는 착한 사람들에게 늦기 전에 구원의 밧줄이 내려오기를.)
소설을 읽다 보면 인간성이란 과연 타고나는 것인가?
아니면 환경일까?
사람들에게 작용하는 그 두 가지 요인의 영향력은 얼마 큼의 비율일까- 몹시 궁금해진다.
극악한 범죄자 빌 싸익스나 페이긴은 말할 것도 없고.
같은 상황에서도 유난히 나쁜 쪽으로만 끌리는 사람들은 분명히 있다.
이를테면 비열한 밉상 범블 씨.
그(범블 씨)는 약한 자를 못살게 구는 성향이 명백히 있었고 자질구레한 가혹행위를 하면서 상당한 쾌감을 얻었는데, (2권 95쪽)
올리버를 참 모질게도 괴롭혔던 노어 클레이폴도 사악함을 타고났다는 면에서는 빠지지 않지.
“그런 일이라면 잘할 수 있을 것 같아요. “ 볼터(노어 클레이폴)가 말했다. ”나는 학교 다닐 때 진짜로 교활한 고자질쟁이였으니까요.“(2권 203쪽)
마땅히 해내야 할, 봉급 받는 자신의 업무를 사리사욕의 도구로 삼는 공복들이 있다.
더해서 자신의 직책에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지 않거나, 해서는 안 될 일을 돈벌이의 수단으로 삼는다.
그 입으로 하는 말은 예나 지금이나 어찌나 똑같은지.
“내 생각으로는 결혼한 남자란,”... “기회가 닿는다면 정직하게 돈벌이를 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을 것이오. 홀몸일 때보다 더 그렇지요. 교구의 관리들은 정중하고 정당한 방식으로 약간의 특별 사례가 있다면, 그것을 거절할 만큼 봉급이 후한 편은 아니오.”
(2권 100쪽)
순수한 영혼을 가진 올리버가 험난한 여정에서도 자신을 잘 지켜내고 끝내 행복을 얻는 이상적인 인물이라면,
옳고 그름을 판단하거나 선택할 여지도 없는 어둠의 환경에서 태어나 파란만장하게 살아온 낸씨의 이야기는 현실적으로 느껴진다.
도둑과 깡패들의 미천한 동료이며 저급한 소굴에 버려진 부랑자, 교수대의 그늘에서 사는 감방과 감옥선의 인간 찌꺼기들과 한 패거리-인 낸씨.
(2권 140쪽)
함께 살아온 빌 싸익스를 도와 올리버를 곤경에 빠뜨리기도 했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올리버를 돕는다.
“돈 때문에 이 일을 한 것이 아니에요. 내가 그랬다는 것을 두고두고 생각하게 해 주세요.”
(2권 217쪽)
낸씨는 죽음을 무릅쓰고 난생처음 스스로 판단하고 선택한 올바른 행동을 하고.
여태 함께 해온 의리를 지키느라 혼자 도망치지 않고 악당 싸익스에게 돌아왔다가 그의 손에서 참혹한 죽음을 맞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