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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차는 달려가고 Apr 13. 2023

가난뱅이들의 잠자리

끄적끄적

과거의 한 시절을 재현한 민속촌이라든가

잘 보존된 옛 동네라든가를 구경하기 좋아한다.

현재에서 과거로 풀쩍 건너뛰는 시간 여행은 재미있다.

물론 그것이 사실과는 거리가 있다는 점은 다.

지금 우리가 옛날 주택으로 알고 있는 기와 얹은 고대광실은 과연 몇 채나 있었겠나.

어느 나라나 지금까지 남아 있는 오래된 주택은 재물과 수공을 많이 들인 중산층 이상의 주거공간이었다고 봐야겠다.


손질한 돌을 잘 쌓아 올려 지은 오래된 런던의 부자 동네도

19세기 중반의 찰스 디킨스 소설 <작은 도릿>을 보면,

길에는 가축 분뇨가 신발에 밟히고.

마차들이 달려가는 시끄러운 소음으로 이야기가 중단되었으며.

하수도가 없어 길에는 온갖 오물들이 빗물과 함께 흘러넘쳤고.

집에 들어서면 갖가지 생활 분비물 냄새로 악취가 진동했다고 한다.

평소 시각적으로만 과거를 상상하기 쉬운데,

, 후각과 청각과 촉각도 더해야겠다.



하물며 적수공권 가난뱅이들은  어느 나라에서내 몸을 누일 한 뼘의 공간도 얻기가 힘들었다.

산업혁명으로 재물이 쌓이고 부자가 속출하던 19세기 영국에서 일거리를 찾아 도시에 온 노동자들은,

잠잘 곳이 없어 밤새 거리를 걷다 길 모퉁이에 쪼그리고 앉았하거나.

돈을 조금 내고 벤치에 앉을자리를 구하거나,

몇 푼 더 내고 앞에 걸린 로프에 몸을 기댈 수 있는 자리

또는 관짝 만한 벌집 상자 안에 누워서 지친 몸을 몇 시간 쉴 수 있었다.

설령 운이 좋아 가족을 이루고 집세를 내는 벽과 천장이 있는 집을 빌렸다 해도,

썩어가고 무너져가는 집은 안전하지도 않고 편안하지도 않았다.

게다가 꼬박꼬박 집세를 받으러 오는 집주인의 대리인은 저승사자가 아닌가, 싶었지.


19세기말 도쿄의 빈민촌을 체험한 글 <도쿄의 가장 밑바닥>을 보면,

고된 노동으로 몇 푼을 벌 수 있었던 뜨내기 노동자들은 그날그날 빈민촌의 숙소를 찾는다.

이부자리도 없이 너른 타다미 방에 수십 명이 우글거리면서,

더위와 또는 추위와 , 빈대와 모기에 시달리며 새우잠을 다.

아침이 오면 가진 것이라곤 몸에 걸친 옷 한 벌 뿐인 노동자들은 일거리를 구하러 숙소를 떠난다.

오늘밤, 다시 이곳으로 올 수 있는지 아무도 모른다.

하루 벌이 중 가장 많은 지출이 하루치 잠자리를 얻는 비용이었고.

삐끗해서 벌이가 없으면 그대로 길에 나앉는 막연한 처지.

노숙은 몸을 상하게 하고,

다음날 일을 하려면 기어이 잠자리를 얻어야 한다.



아주 옛날에는 동굴에 보금자리를 마련할 수도 있었고.

직접 땅을 파고 나무를 해다가 초가삼간이라도 지을 수 있었다.

내가 자라던 1970년대에도 서울의 주택난은 심각했는데,

불법으로 국유지 야산에 시멘트 벽돌을 쌓고 지붕으로 루핑을 올려 내 살 집을 마련한 사람들이 있었다.

그 집들은 차츰 동네를 이루다가 나중에 토지를 불하받아 집주인이 되었다가,

재개발로 아파트 단지가 되었는데.


이제 초고층 건물이 늘어선 첨단 도시에는 천막을 칠 야산도 없어서,

수입의 가장 많은 부분을 주거공간에 지출한다.

달팽이는 집을 등에 얹고 다니는데,

사람은 주거비용이라는 무거운 등짐을 천형인 양 짊어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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