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치의 따뜻함 04
<하루치의 따뜻함, 네 번째 이야기로 이어갑니다>
계절이 조금씩 움직이는 것처럼, 이 기록도 어느덧 네 번째 이야기에 닿았습니다. 퇴직을 앞둔 교실에서 시작한 이 조용한 글쓰기가 누군가의 하루에도 작은 온기로 스며들기를 바라는 마음은 여전합니다. 잠시 숨 고르고 싶은 날, 이곳에서 따뜻한 문장 하나를 만나실 수 있기를 바라며 오늘도 ‘하루치의 따뜻함’을 천천히 이어가봅니다.
나는 가끔씩 시집 간 딸에게 전화를 한다.
“딸, 어디야?”
“아빠, 나 집 앞 카페!”
딸은 아늑하게 꾸며놓은 자기만의 방이 있음에도, 노트북을 챙겨 굳이 밖으로 나선다. 그 발걸음은 어김없이 집 가까운 카페를 향한다. 카페에 가서 커피를 마시며 좋아하는 일을 해야 마음이 편하단다. 커피 한 잔을 앞에 두면 일도 잘 되고, 마음이 힐링된다고. 처음엔 그저 젊은 세대의 감성이라 여겼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니 나 역시 그 마음을 안다. 머물고 있는 공간에서 작은 평온과 위로를 찾을 수 있다면, 그만한 가치는 충분하다고 믿는다. 나 역시 언젠가부터 카페라는 공간을 사랑하게 되었다. 커피가 주는 향기보다 더 끌리는 건, 그 안에 머무는 고요한 공기와 잔잔한 풍경이다.
하루라도 들르지 않으면 어딘가 허전하고, 그곳에 가만히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잔잔해진다.
사람들과 함께여도 좋고, 혼자여도 좋다. 마치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듯, 나도 그 공간 앞에선 늘 발걸음을 멈추게 된다. 음악 소리, 커피 기계의 진동, 잔잔한 대화, 창밖으로 보이는 햇살과 천봉산 자락. 그 모든 것이 내 안의 주름을 펴주는 듯하다.
나는 늘 같은 메뉴를 고집한다. 디카페인에 무지방 우유, 시럽은 제외한 ‘나만의 라떼’. 조금 까다롭지만, 익숙한 그 맛이 내 하루를 정돈해준다. 그래서 결국 나는 익숙한 집 앞 카페로 향한다. 매장의 향기, 익숙한 분위기, 변함없는 맛. 그 익숙함이 때로는 하루를 견디게 해주는 작은 위안이 된다.
나는 창가 자리를 좋아한다. 그곳에 앉으면 바깥 세상이 한 폭의 그림처럼 펼쳐진다. 누군가는 무거운 걸음을 옮기고, 누군가는 고수부지 벚나무 사이로 걸어가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비 오는 날에는 창문을 따라 빗방울이 흐르고, 맑은 날엔 눈부신 햇살이 내 어깨를 감싼다. 나는 그 풍경을 바라보며 오늘의 기분을 정리하고, 어제의 감정을 내려놓는다. 그런 나와 비슷한 사람들을 창가에서 자주 본다. 혼자 책을 읽는 사람, 노트북을 앞에 두고 일에 몰두하는 사람,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다 미소 짓는 사람. 아무도 말을 걸지 않지만, 우리는 어쩌면 서로의 고요를 지켜주는 동반자일지도 모른다.
카페라는 공간은 단순히 커피를 마시는 곳이 아니다. 거기엔 생각이 있고, 숨이 있고, 쉼이 있다. 때로는 나를 돌아보는 거울 같고, 때로는 작은 우주처럼 느껴진다. 그 속에 앉아 있는 사람들 모두가, 저마다의 이야기와 상처, 바람을 안고 있지만 그저 조용히 그 자리에 앉아 있다는 것만으로도 어딘가 연결되어 있는 것 같다. 그런 순간들이 쌓여, 나는 오늘도 어김없이 카페로 향한다.
직장에서는 동료와 함께 들러 짧은 여유를 나누고, 퇴근 후에는 아내와 함께 카페로 향한다. 둘이 나란히 앉아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때론 말없이 커피 한 모금 사이로 눈길만 주고받기도 한다. 그 순간이 그저 좋다. 우리 둘이 카페라는 공간 속에서 사람들과 함께 있다는 것, 우리도 그 속의 평범한 한 사람이라는 것이 때론 큰 위안이 된다. 바쁘고 소란스러운 세상 속에서, 익명의 사람들이 함께 숨 쉬고 있다는 사실이 묘하게 든든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카페는 그렇게 내게 쉼터이고, 거울이며, 사람들 속에서 나를 되찾는 조용한 안식처가 되었다. 그리고 그 창가에 앉아 커피를 마시는 이들처럼, 나도 오늘 하루를 그렇게 살아낸 한 사람으로 존재하고 있다.
카페는 내게 단순한 휴식처가 아니다. 그곳은 내가 나를 되찾는 장소이고, 사람들 속에서 외롭지 않게 살아간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는 작은 우주다.
내가 있는 공간에서 작은 행복을 찾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살아갈 충분한 이유가 된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창가에 앉아, 그렇게 하루를 살아낸 한 사람으로 존재하고 있다. 카페 창가에 앉은 사람들은 저마다 다른 이야기와 삶을 품은 채, 같은 공간에서 각자의 장면을 그려간다.
삶이란 꼭 특별하지 않아도 괜찮다.
지금 있는 자리에서 작은 평온을 느끼고, 누군가와 같은 공간에서 숨 쉬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우리는 위로를 얻는다. 오늘도 누군가는 창가에 앉아 자기만의 이야기를 써 내려가고, 우리는 그 풍경 속에서 서로의 삶을 조용히 비춰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