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익계산 너머의 사람들

하루치의 따뜻함 09

by 전태영


<하루치의 따뜻함, 아홉 번째 이야기로 이어갑니다>

하루하루 적어 내려간 기록이 어느덧 아홉 번째 페이지를 채웠습니다. 퇴직을 앞두고 시작한 이 작은 글쓰기가 누군가의 하루에도 잔잔한 온기로 스며들고 있다면 그보다 더 큰 기쁨은 없습니다. 살다 보면 우리는 숫자와 계산 속에서 하루를 살아갑니다. 시간을 얼마나 썼는지, 돈을 얼마나 아꼈는지, 심지어 마음마저 손익으로 저울질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은 그 모든 계산을 잠시 내려놓고, 조건 없이 내어준 마음과 그 안에 담긴 따뜻함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 합니다.
잠시 머물고 싶은 날, 이곳에서 작은 온기를 얻어가시길 바랍니다.

사람은 살아가면서 시간을 얼마나 쓰는지, 돈을 얼마나 아끼는지, 심지어 인간관계 속에서도 나에게 얼마나 득이 되는지를 계산하곤 한다. ‘손익계산’은 원래 경제의 영역이지만, 어느새 일상 깊은 곳까지 스며들었다. 그런데 가끔, 계산이 사라진 따뜻한 마음을 만날 때가 있다.


함께 일하는 한 선생님은 전원주택에 살며 작은 텃밭을 가꾼다. 큰 규모는 아니지만 계절마다 여러 가지 채소를 손수 키우고는, 검은 봉지에 흙 묻은 부지깽이나물과 상추를 담아 직원들에게 조심스레 내민다.


그냥 제 마음이에요.


그 말에 실린 무게 없는 진심이 참 따뜻하다. 손익을 계산하지 않는 마음, 무언가를 바라고 주는 게 아니라 그저 주고 싶어서 주는 마음. 그 선생님의 모습을 보며 문득 ‘아낌없이 주는 나무’가 떠올랐다. 자신은 점점 줄어들지만, 누군가에게는 한없이 베풀며 기뻐하던 그 나무처럼 말이다. 하지만 삶은 늘 따뜻한 마음만으로 채워지지 않는다. 때로는 직장에서 마음을 서늘하게 만드는 사람들을 만날 때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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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상황에서 철저히 계산하고, 손익을 따져 움직이는 사람들이다.

그들의 방식도 이해는 된다. 세상을 살아가려면 때로는 냉정함이 필요하고, 기준이 분명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모습을 가까이서 마주할 때면, 왠지 마음 한켠이 시려온다. “이게 정말 사람 사이의 온도일까?” 하는 생각이 들면서, 현실이 조금은 삭막하게 느껴지곤 한다.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고, 살아가는 방식도 다르다는 걸 알면서도, 이렇게 따뜻함 없이 움직이는 마음을 마주하면 어쩐지 조금 외로워진 듯한 기분이 든다.


어느 날, 주차장에서 후진을 하다 앞차 범퍼를 살짝 건드린 일이 있었다. 당황한 마음으로 차주에게 전화를 걸어 정중히 사과하며 “제가 보상해 드리겠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런데 상대는 다짜고짜 화를 내며 정비소에 가 견적을 보내줄 테니 입금하라는 말만 남기고 전화를 끊었다. 물론 나의 실수였기에 기꺼이 책임을 졌지만, 마음 한구석이 오래도록 무거웠다.

며칠 후, 잠깐 사이에 비슷한 일이 반복됐다. 이번에도 후진하다가 살짝 흠집을 내고 떨리는 마음으로 연락을 드렸다. 상대는 잠시 차를 보더니 “어느 정도예요?” 하고 물었고, 이내 “닦으니까 좀 닦이네요. 괜찮습니다. 그냥 가세요.”라며 웃었다. 그 순간, 그 말 한마디가 그렇게 따뜻하게 느껴질 줄 몰랐다. 사실 나도 한 번, 그렇게 말한 적이 있다. 교회 주차장에 차를 세워두고 예배를 드리던 중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상대방은 자신이 내 차를 실수로 건드렸다며 너무 죄송하니 내려와 달라고 했다. 나가서 보니 큰 흠집은 없었고, 나는 웃으며 “괜찮습니다. 그냥 가세요”라고 말했다. 그분은 연신 고개를 숙이며 감사 인사를 건넸고, 내 마음에도 잔잔한 기쁨이 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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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상황 속에서도 사람은 서로 다른 선택을 한다.


어떤 이는 손해 보지 않기 위해 철저히 따지고, 어떤 이는 마음을 닦아 흠집마저 덮는다. 무엇이 옳고 그른가를 따지기보다, 우리는 점점 ‘따지는 삶’에 익숙해져 가고 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도움이 되는 사람과만 어울리고, 받은 만큼만 돌려주고, 심지어 마음을 주고 난 후에도 계산기를 꺼내는 요즘이다. 그러나 정작 진짜 중요한 것들은 계산으로는 잴 수 없다. 동료 선생님이 조용히 내밀었던 흙 묻은 채소 한 봉지, “그냥 마음이에요”라는 말 한마디, 그리고 흠집마저 닦아낸 후 건네준 “괜찮습니다”라는 따뜻한 말. 그 작은 순간들이 나를 다시 일으켜 세웠고, ‘진심이란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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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두 아낌없이 주는 나무처럼 살 수는 없다.
하지만 가끔은 손익을 내려놓고, 그냥 주는 것, 그냥 받아주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느낀다. 그 마음들이 세상을 조금 더 단단하고, 조금 더 따뜻하게 만들지 않을까.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는 종종 ‘손해 보는 듯한 순간’에서 더 큰 것을 얻는다. 진심으로 베푼 친절은 언젠가 다른 모양으로 돌아오고, 양보한 자리에는 예기치 않은 평화가 찾아온다. 내가 지금 져 주는 것이 결국은 이기는 길이 될 때도 있다. 손해 같아 보여도, 결국 득이 된다. 그러니 너무 따지지 않아도 괜찮다. 마음을 내어주는 일이 결코 헛되지 않다는 걸, 삶은 언젠가 조용히 증명해 준다. 손익계산의 바탕에도 어쩌면 친절과 배려, 나눔과 양보, 그리고 때로는 기꺼이 손해 보려는 용기가 숨어 있는지도 모른다.


그 덕목들이 사라지지 않는 세상, 숫자보다 사람이 먼저인 관계 속에서 우리는 조금 더 행복해질 수 있다.

숫자로는 셀 수 없는 마음, 그것이야말로 내가, 그리고 우리가 끝까지 지켜야 할 가장 아름다운 가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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