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아침 셔츠가 사라진 이유

하루치의 따뜻함 10

by 전태영
<하루치의 따뜻함, 열 번째 이야기로 이어갑니다>

퇴직을 앞둔 교실에서 시작된 이 기록이 오늘도 작은 일상을 담아냅니다.
사라진 셔츠 하나를 두고 오가는 대화 속에도, 우리는 함께 살아가는 삶의 결이 묻어 있습니다.
서로 다른 방식을 존중하며 조금씩 조율해가는 하루, 그 속에서 발견하는 따뜻함을 적어봅니다.
잠시 머물고 싶은 날, 이 글이 당신의 하루에도 잔잔한 쉼이 되기를 바랍니다.

“여보, 내 셔츠 못 봤어? 분명 여기 걸어뒀는데…”


아침마다 반복되는 풍경이다. 출근할 때, 외출할 때, 운동하러 갈 때마다 나는 옷을 찾느라 허둥대곤 한다. 입으려던 그 옷이 늘 ‘그 자리에’ 없기 때문이다. 이유는 단 하나. 내가 즐겨 쓰는 보관법 때문이다.

나는 옷장 문 바깥쪽에 후크를 붙여두고, 내일 입을 셔츠나 바지를 슬쩍 걸어놓는다. 아침에 별 고민 없이 집어 입으려는 나름의 ‘실용적 전략’이다. 퇴근하면 습관처럼 내일의 옷을 걸어두고 잔다.


그런데 아침이면 어김없이 셔츠는 사라지고, 옷걸이엔 아무것도 걸려 있지 않다. 옷장 문은 각 잡힌 채 조용히 닫혀 있다. 아내가 또 치운 것이다. 아내는 ‘옷은 옷장에’, ‘물건은 제자리에’라는 철칙의 사람이다. 집 안의 질서를 가장 성실하게 실천하는 사람. 리모컨도, 설거지 후의 행주도, 심지어 책상 위 펜 한 자루까지 각이 잡혀 있어야 직성이 풀린다. 덕분에 집 안은 늘 정갈하고 편안하다. 대신 내 셔츠는 늘 정갈한 그 안쪽 어딘가에 묻혀 있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옷장 앞에서 어제 걸어둔 셔츠를 찾아 헤맨다.


사라진 셔츠의 비밀을 알면서도, 나는 가끔 그런 아내의 정리에 답답함을 느낀다. 편리한 게 뭐가 나쁘냐고. 눈앞에 있으면 금방 입고 나갈 수 있는데 굳이 넣었다 꺼냈다 할 필요가 있냐는 생각. 구김도 덜 갈 텐데.

하지만 아내에게 집은 ‘정돈된 쉼터’다. 눈에 보이는 것 하나하나가 마음의 흐름에 영향을 준단다. 나는 그걸 이해하려고 노력 중이다. 처음엔 그냥 답답하다고만 여겼지만, 지금은 조금씩 알 것 같다.


우리는 서로 다른 방식으로 삶을 정리해간다.


나는 실용을 따르고, 아내는 조화를 지향한다. 그래서 때로는 서운했다. 내 방식이 틀린 것도 아닌데 왜 늘 내가 바꿔야 하나 싶었으니까. 그런데 돌이켜보면, 나도 아내의 기준을 존중하지 않았던 건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우리는 조금씩 타협해갔다. 나는 꼭 필요한 옷만 꺼내놓고 일정 시간이 지나면 다시 정리하려 하고, 아내는 가끔 내 셔츠를 일부러 꺼내 걸어주기도 한다. 그 후크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다. 예전엔 나 혼자 쓰던 공간이었지만, 지금은 우리 둘이 조금씩 조율하며 만들어낸 ‘공동의 룰’이 깃든 자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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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소한 셔츠 하나에도 우리가 함께 만들어가는 삶의 방식이 담겨 있다.


결국,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도 그렇다. 서로의 관점의 차이에서 오는 갈등이 참 많다. 같은 숫자라도 6과 9는 보는 방향에 따라 다르게 보인다. 내가 옳다고 해서 반드시 상대가 틀린 것은 아니다. 단지, 내가 아직 상대의 자리에서 바라보지 않았을 뿐이다. 사람마다 한 장면을 두고도 무엇에 시선을 두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해석이 나온다. 우리가 마주하는 대부분의 갈등도 다르지 않다. ‘상대가 틀렸다’고 생각하기보다 ‘나는 아직 그 방향에서 보지 못했구나’ 하고 생각하면, 문제의 실마리가 풀릴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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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의 관점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것.

그것이 함께 살아가는 힘이 아닐까.


결국, 우리는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같은 세상을 보고 있다.

중요한 것은 내 자리에서만 보지 않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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