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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킴노인 Mar 03. 2019

[퍼포몸쓰 일상]#2 매트리스 개발자가 알려주는 라텍스

라텍스 매트리스를 사면 안되는 이유

난 침대회사에서 일하며 공부하기 전까지 라텍스가 뭐로 만드는 건지도 몰랐다. 조금 더 정확하게는 관심이 없었다고 하는 편이 맞겠지. 그래서 대진침대 라돈사태 이후에 라텍스에서 라돈이 엄청나게 검출 됐을 때도 크게 주목하지 않았다. 하지만 업무 차원에서 공부를 하다보니 아내나 장모님 등 생각보다 라텍스 제품을 쓰는 사람이 내 주변에 많다는 걸 알게 됐다. 과거에 내가 라텍스에 대해서 알았더라면 적어도 내 가족들은 사지 못하게 말렸을것이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기에 지금이라도 이 글을 보는 사람들은 라텍스 구매에 신중했으면 하는 마음에서 공부한 내용들을 적는다.  



라텍스는 고무나무에서 수액을 추출하여 만든다, 만드는 방식은 대표적으로 두 가지가 있지만 그것까진 굳이 몰라도 되니 넘어가겠다. 고무나무는 따뜻한 곳에서 잘 자라므로 태국과 같은 동남아 지역에서 많이 생산된다. 그래서 라돈 사태가 터지기 전까지만해도 동남아 지역을 여행하면 현지에서 파는 질 좋은 라텍스 제품을 사오는 게 공식처럼 여겨졌다.(특히 패키지 여행이면 중간에 꼭 라텍스 쇼핑 코스가 들어가 있었다) 



여기에 국내 업자들까지 가세해 라텍스의 장점들을 홍보하니, 불과 몇년 전까지만 해도 라텍스의 인기는 하늘을 찌르는듯 했다. 그와중에 라텍스 함유율을 낮추고 천연 라텍스 100%라고 속이는 업자, 통짜로 이루어진 이른바 통몰드 라텍스가 좋다고 현혹하는 업자, 유럽산 합성 라텍스를 고급인것 마냥 비싸게 팔아먹는 업자 등이 판을 치면서 소비자들은 두 눈을 시퍼렇게 뜨고도 어떤 게 진짜 좋은 라텍스인지 구별할 수 없는 혼탁한 시장이 형성 됐다. 그렇게 야바위 같은 업태가 이어지다가 크게 한 방 맞은 게 라텍스 라돈 사태다. 


라돈은 대체 왜 나오는 걸까? 라돈은 음이온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세상엔 검증되지 않은 많은 유사과학들이 있는데, 그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음이온이다. 나는 생명공학을 전공한 공학도로서 음이온이 몸에 좋다는 말이 얼마나 허황된 이야기인지 잘 알고 있다. 음이온이 많이 나오는 제품을 사용해서 체질이나 건강을 유의미하게 변화시킨다는 건 숟가락으로 흙을 퍼서 산을 옮기는 것만큼 어려운 일이다. 


시중에 판매되는 음이온 제품의 원리는 두 가지인데, 하나는 오존을 이용하는 방법이고 다른 하나는 모나자이트라 파우더를 첨가하는 방법이다. 국내에 유통되는 음이온 제품 중 대다수는 모나자이트 파우더이고 공기청정기를 비롯한 소수가 오존 발생 방식이다. 물론 두가지 모두 인체에 좋지 않다. 



만약 오존이 인체에 좋았다면 대체 오존 주의보라는 건 왜 발령하는지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보자. 또한 모나자이트 파우더는 방사능 물질로 이번 라돈 사태의 주역이니 음이온을 발생하는 제품들 치고 건강에 도움이 되는 건 하나도 없는 것이다. 그래서 당신의 집에 음이온이 나온다는 물건이 있으면 사용하지 않는 걸 추천한다. 


이제 음이온과 태국, 그리고 라텍스를 연결해보자. 이들을 단박에 연결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중국이라는 고리를 끼워 넣으면 매우 자연스러운 그림이 완성된다. 중국은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음이온을 매우 좋아한다. 또한 희토류라는 방사능 원소의 최대 생산국인데, 희토류는 모나자이트 광물에서 추출할 수 있다. 게다가 라텍스를 좋아하여 대량 생산을 위해 태국 공장에 OEM을 맡긴다. 이를 조합하면 중국이 태국에 라텍스 OEM 생산 의뢰를 넣으면서 음이온 발생을 위한 모나자이트 파우더 첨가를 요청했고, 그렇게 만들어진 라돈 라텍스가 우리나라를 비롯한 세계 각지로 퍼지게 됐다는 걸 짐작할 수 있다. 


앞서 언급했지만 천연 라텍스는 태국이나 말레이시아 등 매우 한정적인 지역에서 생산되므로 당신이 아무리 조심하여 산다고 해도 결국 그놈이 그놈인 상황이 발생한다. 따라서 라돈이 걱정이라면 천연 라텍스를 구매하는 건 피하고 보는 게 안전하다. 


그럼 유럽산은 어떨까? 유럽에선 고무나무가 자라기 쉽지 않음에도 유럽산 라텍스는 비싼 가격에 불티나게 팔린다. 유럽산 라텍스는 천연과 합성, 두 가지가 있는데 천연일 경우부터 알아보자. 라텍스 채취는 자동화가 이루어지지 않아서 아직까지 대부분 수작업으로 채취한다. 유럽은 인건비가 비싸고 고무나무도 잘 자라지 않아서 당연하게 태국에 OEM을 맡긴다. 그럼 태국에서 생산된 제품은 유럽으로 가서 브랜딩을 거쳐 다시 한국으로 수입된다. 가격은 당연히 비싸질 수 밖에 없다. 


만약 태국에서 생산되는 게 아닌 순수하게 유럽에서 만들어지는 라텍스라면 대부분 합성 라텍스라고 생각하면 된다. 하지만 천연 소재가 좋아서 라텍스를 쓰는데 굳이 합성 라텍스를 비싸게 사서 쓸 이유는 뭐란 말인가. 이래저래 우리가 유럽산 라텍스를 살 필요가 없는 이유다. 


그럼에도 라텍스가 주는 특유의 탄성과 사용감이 좋아 라텍스 베개나 매트리스를 사야한다면 넘어야 할 산이 또 있다. 다행히 라돈을 피하더라도 해당 제품에 천연 라텍스가 몇%나 함유되어 있는지 소비자가 정확히 알기란 요원한 일이다(인증서에도 라텍스 함유량이 제대로 표기되는 경우가 많지 않다). 더불어 통몰드 라텍스라는 건 국내에서 업자들이 마케팅 용도로 만들어낸 것으로 침대가 하나의 레이어로 이루어 져 있어서 좋다는 말은 좀 이상하게 들린다. 


이렇게까지 이야기 했는데도 라텍스 매트리스를 사겠다면 말리지는 않겠다. 하지만 불과 며칠 전인 2월 9일, 원안위는 씰리 침대와 함께 수입산 라텍스 매트리스에서 또다시 라돈이 검출 됐다는 사실을 발표했다. 안전하고 좋은 제품들을 놔두고 굳이 위험을 감수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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