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발 눈을 뜨세요
오늘은 조금 진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진부하지만 언제나 많은 이들이 혼란을 겪는 이야기다. 천연은 안전하고 합성은 위험하다는 해묵은 논쟁에 관한 조금 지루한 글이 될 예정이다. 부형제와 천연 비타민에 관한 이야기는 이미 많은 이들이 분석하고 글을 써놔서 사실 더 깊게 할 이야기가 없지만 사회 전반에 걸친 천연 맹신 풍조에 대한 이야기는 조금 다르다. 아마도?
비타민 분야에서 언제나 이슈가 되는 부형제 이야기를 짧게 하겠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부형제는 전혀 해롭지 않다. 이산화규소, 스테아린산, 마그네슘 스테아레이트 등은 많이 먹어도 몸에 축적되지 않을뿐더러 위험하지도 않다. 이는 인터넷에서 떠드는 온갖 약팔이들과 특정 업체의 공포 마케터들보다 훨씬 똑똑하고 깐깐한 미국 FDA, 그리고 수많은 과학자들이 증명해낸 내용이다. 또한 한국 식약처 역시 화학 부형제가 들어간 비타민, 약이 인체에 아무런 해도 끼치지 못함을 고시한 바 있다.
극단적으로 말해 부형제가 몸에 해로우려면 하루에 3만 정 이상의 비타민을 먹어야 한다. 3만 정, 상상이 가는가? 그 정도면 부형제가 아닌 뭘 먹어도 탈이 난다. 혹시 치킨을 좋아하는가? 피자나 햄버거는? 라면은? 한 달에 맥주 한 캔 이상 마시는가? 커피도 마시고 있나? 설마 담배까지 피우는 건 아니겠지? 만약 그렇다면 부형제를 걱정하느니 인스턴트 음식과 술, 담배, 커피를 끊는 게 더 안전하다. 그것들이야말로 당신의 몸을 정말 망치는 주범이니 말이다. 필자는 인스턴트는 아직 못 끊었지만 술, 담배, 커피를 입에 대지 않은지 이미 7년이 넘었다. 부형제가 들어간 합성 비타민을 복용하는 내 몸이 적어도 술, 담배, 커피를 매일 즐기는 사람들의 몸 보다 깨끗하고 건강할 거라 장담한다. 심지어 나는 물도 하루에 2리터 넘게 마신다.
부형제가 무서워서 천연 비타민을 찾고 이산화규소가 들어있지 않은 유산균을 찾겠다고 비싼 비용과 시간을 지불하는 건 낭비의 극치이다. 다만 천연영양제가 당신의 취향에 맞아서 찾는 거라면 인정하겠다. 원래 비타민은 효과를 기대하고 먹는 게 아닌 결핍을 예방하는 차원에서 먹는 게 현명한 태도다. 따라서 비타민을 선택할 때는 고함량만 찾을 게 아니라 자신의 라이프스타일과 비타민 취향을 종합적으로 분석하여 구매하는 것이 좋다. 애초에 비타민은 약이 아닌 '건강기능식품'이지 않은가. 식품을 먹으며 약의 효과를 바라는 건 100원짜리 동전 던지면서 부자가 되게 해달라고 소원을 비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당신에게 천연과 합성의 이미지는 어떤가. 천연은 깨끗한 물, 푸른 하늘, 이슬을 잔뜩 머금은 풀잎, 청량한 숲길 등이 떠오르는 반면 화학은 독극물, 실험에 미친 박사, 부글부글 끓어넘치는 위험한 용액들, 역겨운 냄새, 형광 녹색이나 시뻘건 무언가가 생각나는가. 그렇다면 당신은 온갖 마케팅에 완전히 물든 것이다.
이런 질문들은 어떤가. 알록달록한 독버섯은 매일 입는 폴리에스테르 옷과 플라스틱 휴대폰 케이스보다 안전한가? 편의점에서 파는 각종 음식, 간식들은 천연물질로 만든 포장에 들어있는가, 화학 합성물로 만든 포장에 들어있는가? 천연이 주는 이미지는 다분히 광고의 산물임을 알아야 한다. 그렇게 안전함을 강조하는 천연 비타민이나 천연 화장품 역시 화학적으로 만들어낸 플라스틱 통에 담겨 나온다. 그 플라스틱 통에서는 위험 물질이 나오지 않을 거라 확신하는가.
불과 몇 년 전 온 나라를 들끓게 했던 라돈 매트리스를 기억하는지 모르겠다. 이는 유사과학의 결정체인 음이온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음이온은 과학 역사상 가장 성공한 헛소리다. 과학적으로 전혀 말도 안 되는 일본 약장수의 말에 놀아나 한중일 전체가 음이온을 쐬기 위해 돈과 시간을 엄청나게 낭비했다. 라돈 매트리스는 음이온을 극대화하기 위한 더러운 결과물로, 천연 방사능 물질인 모나자이트 파우더를 침대에 넣으면서 발생했다.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음이온이 대량으로 나오는 천연 성분이 그렇게 해로운 물질이라는 것을 말이다.
화장품도 마찬가지다. 천연 화장품이 화합물로 만든 화장품에 비해 더 좋다는 이야기는 정말 터무니없는 이야기다. 애초에 화장품에 들어가는 화합물은 천연 물질(풀이나 꽃 같은)에서 인체에 필요한 것들만 추출해 농축한 것이거나 해당 성분을 화학적으로 카피한 것들이다. 천연 물질에 비해 불순물도 없을뿐더러 기능적인 차이가 유의하게 나지 않는다. 심지어 더 경제적이다. 애초에 100% 천연 화장품이라는 건 존재할 수 없다. 천연 물질에서 원료를 추출하는 과정 자체도 화학적으로 처리되는데다 화장품을 한 달 이상 사용하려면 무조건 방부제가 들어가야 하기 때문이다. 천연 방부제를 사용한다고? 천연이나 합성이나 방부제가 피부에 좋지 않은 건 다 똑같은데 그게 무슨 소용인가. 화장품의 성분이 중요한 건 맞지만 더 중요한 건 합성이냐 천연이냐가 아니라 당신의 피부 상태에 맞는가 맞지 않는가이다. 천연 화장품 잘 못 쓰면 오히려 알레르기만 생겨 피부가 더 민감해진다.
다시 비타민 이야기로 돌아가자. 화합물로 만든 비타민이 위험하다며 광고에 매월 수천만 원씩 퍼붓던 유명한 천연 비타민 업체가 있었다. 어떻게 됐을까. 허위 과장광고로 적발돼서 식약처가 영업정지 처분 내렸다. 화장품과 마찬가지로 비타민도 100% 천연 제품은 있을 수 없다. 이는 얄팍한 상술에 불과하지만 반대로 우리에게 시사점을 안겨준다.
당신은 비타민을 왜 먹는가. 이 질문에 상당히 많은 사람들은 '건강해 지려고 먹는다'라는 대답을 한다. 하지만 엄밀히 말해 비타민은 건강 해지려고, 혹은 미래에 걸릴지 모를 큰 병을 예방하려고 먹는 게 아니다. 저 질문에 대한 올바른 대답은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서'가 되어야 한다. 매일 정상적인 식사를 하고 건강에 해로운 식품과 행위를 피하며 꾸준히 가벼운 운동을 하는 것만으로도 당신은 충분히 건강하게 살 수 있다. 하지만 현대 사회는 스트레스나 기타 여러 가지 요인으로 인해 예상치 못한 영양소 소모나 부족 증상이 나타날 수 있으므로 이에 대비하기 위해 영양제를 챙겨 먹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천연 비타민은 모순 덩어리다. 합성 비타민에 비해 함량은 낮고 음식에 비해 비타민 흡수율은 떨어지니 말이다. 고작 부형제를 피하자고 비싼 돈을 주고 사 먹기에는 참 애매한 포지션이다. 그럼에도 당신 나름의 확고한 믿음이 있어 사 먹겠다면 굳이 말리지는 않겠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