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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온 Aug 16. 2022

옷에 대한 단상

출처:네이버


옷 입는 스타일은 그 사람의 일상을 드러내 주는 프로필과 같다는 생각이다.



예를 들면 공주같이 하늘하늘한 레이스 블라우스, 알록달록한 원색 셔츠, 명확하게 성별을 구분해 주는 원피스와 치마 혹은 강렬한 밀리터리룩, 편안함만 추구하는 운동복, 단벌 신사(이들은 여러 벌을 구비해 놓고 번갈아가며 입는다는 변명을 꼭 한다.) 등등..

​나의 취향은 한결같다. 요즘 나의 스타일은 조거 트레이닝이나 면바지에 면 티셔츠와 운동화이다. 약간 쌀쌀하다 싶으면 위에 얇은 셔츠나 카디건을 걸치는 정도이고 격식을 갖추기보다 내가 편안해야 일도 잘한다는 아집(?)을 부리고 있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치마를 입는 것에 거부감이 있었다. 가끔씩 엄마의 고집에 지는 그날은 온종일 불편함을 달고 살아야 했고 집으로 돌아옴과 동시에 다시는 그 옷을 안 입을 것처럼 발랑 뒤집어 깊이 숨겼다. 치마를 입은 내 모습이 바보 같다는 느낌이었다. 그렇다 보니 운동복이나 편안한 스타일의 캐주얼룩이 내 옷의 전부이고 가끔 중요한 자리에 가야 할 때는 검은색 바지 정장을 입는다. 색상도 마찬가지다. 무채색이 주를 이룬다. 튀는 색의 옷을 입는다는 것은 나를 놓아버리는 것과 같은 행위라고 생각한다. 이런 것도 강박에 속하는 것일까?...

돌아보면 어느 순간부터 내가 이렇게 편안한 옷만 고집했다는 생각이다. 젊은 나이에 사별하고 치열하게 삶을 살았던 엄마의 일상에 우리가 예쁜 옷을 매일 걸치고 갈아입는 행위는 사치였을 수도 있었다. 도시학교로 전학 오고부터 우리 4남매는 바지 옆단에 두 줄이 그어진 체육복을 색깔로 구분해 입고 다녔다. 이것은 우리의 양육을 도와주려고 서울에서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내려온 소위 희생자 이모의 생각이었다.

​이모는 8남매의 막내였고 서울에서 자취하는 다른 이모들과 삼촌들의 밥과 빨래를 담당하며 자신의 일자리를 찾고 있었다. 마침 우리가 처한 상황에 외갓집 식구들은 입을 모아 정해진 것처럼 이모가 가서 우리의 양육을 도와야 한다는 결론이 났던지라 선택의 여지없이 쫓기다시피 내려와 우리를 돌보기 시작했다.

​시골에 살 때 한 번씩 우리 집에 오면 마치 TV에서 금방 튀어나온 연예인이 아닐까 싶을 정도의 세련된 외모와 나긋한 서울말에 나도 이모 같은 예쁜 어른이 될 수 있을까?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반면 이모는 어느 순간부터 거친 말투를 드러내며 보들보들했던 우리 4남매의 동심과 귀를 쌍스러운 욕지거리로 색 입혔고 20대 꽃다운 나이에 어쩔 수 없이 선택한 현실에 몸서리를 내며 스트레스를 조카들에게 쏟아냈다.



나도 가끔 예쁜 옷을 입고 싶어 하기도 했던 적이 있었다. 누구나 그럴 때가 있지 않은가! 어느 여름 한껏 치마와 블라우스로 멋 부려 입고 등교를 하던 차 예외 없이 잔소리가 터져 나왔다.

나도 가끔 예쁜 옷을 입고 싶어 하기도 했던 적이 있었다. 누구나 그럴 때가 있지 않은가! 어느 여름 한껏 치마와 블라우스로 멋 부려 입고 등교를 하던 차 예외 없이 잔소리가 터져 나왔다.

​"꼴값을 떨어라. 그걸 누구보고 빨라고 멋을 쳐내고 가냐? 어울리지도 않는 게!"
비수처럼 그 말은 어린 내 마음에 와서 깊이 꽂혔고 다시 방으로 들어가 두 줄 체육복으로 갈아입고 나왔다.


그래서 치마가 싫어졌나 보다. 어울리지도 않는 옷을 입었다는 평가에 남들의 시선을 의식하게 된다. 아무도 내가 입은 옷에 관심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어린 시절의 센 한방이 남아 나의 옷 입는 스타일까지 변화시킨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기억의 오류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모는 유독 나에게 더 심하게 했던 느낌이다. 내가 순둥 하기도 했고 워낙 말없이 시키는 대로 잘했던 터라 그랬을 수도 있었겠다. 소위 만만한 구석이라고 할까?

이모도 배우자를 만나 결혼하게 되고 자녀를 낳으면서 조금씩 변화되기 시작했다. 세월과 자식 앞에 장사는 없었고 선택의 여지가 없었던 20대 청춘의 희생은 어떤 조카에게는 상처로 남아 다시는 보지 않겠다고 하는 반면 어른이 되어 이모의 나이를 지나쳐 오며 상황을 이해하고자 노력했던 또 다른 조카는 그래도 자주 연락하며 안부를 묻기도 한다.

​자녀들을 키우며 그 취향은 그대로 아이들에게도 계승된다. 큰딸은 나와 똑같은 취향이라 늘 보이쉬함을 추구한다. 이 부분은 미안하게 생각한다. 어릴 때부터 하늘하늘한 원피스에 치마를 사주었다면 성인이 된 지금도 여성다운 룩을 추구할 것이나 늘 한결같은 보이쉬함인데 나름 자신이 트렌드를 달린다는 말을 곧잘 해 웃기도 한다. 작은딸을 키우면서는 엄마로서 조금 정신을 차려야 함을 느끼고 단정한 원피스나 치마를 종종 입혔다. 습관이라는 게 무서운 건지 그나마 이 딸은 가끔 치마도 입고 여성스러운 스타일을 추구할 때가 있다.

​나이가 들수록 편안함을 추구하는 내 스타일은 더욱 강해진다. 가끔은 내가 너무 편안하게 입어 상대방이 나에 대해 너무 가볍게 생각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편한 옷을 고집하는 이유는 내가 입은 옷에서 나를 드러내기보다 내가 하는 말에서 나를 드러냄이 더 큰 힘을 갖는다는 생각 때문이다. 사회생활을 하며 격식을 차려 갖추어 입어도 하는 말마다 수준 이하를 뱉어내는 사람들을 만날 때면 저렇게 되지는 말아야지를 되뇐다. 어찌 보면 어린 시절 겪은 기억과 상처들이 깊이 자리하고 앉아 그런지도 모르겠다. 고집스러운 나의 합리화 일지 모르겠으나 내가 편안해야 만사가 편안하다는 생각에는 여전히 변함이 없다.

​오늘도 나는 여전히 편한 옷을 집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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