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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온 Aug 16. 2022

술에 대한 단상


처음에는 사람이 술을 마시고 다음에는 술이 술을 마시고 나중에는 술이 사람을 마신다 -법구경-


법구경의 한 구절을 읽다 보면 술에 대한 명확한 정의를 내려두었다는 생각에 감탄한다. 원래 나는 술을 잘 마시지 못했다. 대학에 갓 입학한 후 동기들과 함께 마신 막걸리에 MT에서 호기로 마신 술에 나가떨어져 흑역사를 가득 남겼고 아직도 동기모임에서는 그 일로 놀림을 받을 때가 있기 때문이다.



육아를 하면서 남편이 마시는 맥주를 슬쩍 한잔 마셔보고는 그 톡 쏘는 탄산의 맛에 취해 조금씩 배우기 시작한 맥주 한잔이 삶의 낙이 되기 시작했다. 이후 운동모임이나 동네 육동 친구들과 지금처럼 장미꽃이 흐드러지게 피는 봄밤에는 막창에 소주 한잔을 배우기 시작했고 그때부터 인생 뭐 있나! 를 외치며 술과 절친이 되었다.


내가 술을 마시기 시작하니 남편은 한편으로는 집에 오니 술친구가 생겨 좋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내심 걱정도 되었나 보다. 술에도 예의가 있다며 근본이 모호한 주도를 알려주는데 힘썼다. 이길 수 있는 만큼 적당히라는 말이 맥락이었던 기억이다.


여전히 나는 술을 좋아한다. 친정식구들 모임에서는 기본 맥주 한 박스와 소주 12병짜리를 냉장고 가득 채워두고 시작한다. 어릴 때 아빠가 좋아하시던 막걸리를 양은 주전자를 들고 술도가에 가서 받아왔던 기억이 나는 만큼 친정식구들도 술을 즐기는 편이다.


아빠는 술을 한 잔 하시고 나면 늘 아코디언으로 동요나 흘러간 유행가를 연주해 주셨고 그 문화에 익숙했던 나는 술에 대해 크게 나쁜 기억이 없어 뭔가 일상의 대소사가 생겨나면 의례히 맛있는 안주를 준비해 술자리를 만든다.


밥반찬은 크게 맛있다 칭찬을 덜 들어도 술안주 하나는 주모급이다. 내가 잘 만드는 안주는 술의 종류에 따라 각기 다르다. 소주엔 고기나 회, 국물과 골뱅이무침, 막걸리는 나물무침, 두부, 도토리묵, 전, 맥주는 구이나 튀김(치킨류, 생선 튀김)을 겸비해 '인생 술집'을 오픈한다. 우리 집에는 술장고가 있어 그 명성을 익히 자랑하기도 한다.



술이라는 주제가 나오니 맥락 없이 많은 말들이 쏟아져 나오는구나. 술을 누가 발명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분위기와 상황에 맞게 적당히만 지켜준다면 삶의 윤활유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법구경의 말처럼 분위기에 취해 정신없이 들이붓다 보면 술이 사람을 마셔버리는 최악의 상황이 발생하기도 한다. 그러나 함께 마시는 사람들이 누구냐에 따라 '적당히' 잘 유지만 된다면  '좋은 사람들과 마시는 한잔의 술'은 최고의 보약이라는 나의 생각에는 여전히 변함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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