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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온 Aug 16. 2022

음식

음식에 대한 단상

출처:용녀네 집밥(인스타그램)



우리 엄마는 홀로 4자녀를 건사하며 일하고 먹고살기에 바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잠을 줄여서라도 자식들을 위한 밥상은 늘 진심이셨다. 아빠가 돌아가신 후 시골생활을 정리하고 도시로 올라왔다. 엄마 역시 교편을 잡고 계셔서 먹고사는데 어려움은 없었지만 경제적인 부분보다 실질적 삶의 먹고 살아가는 노동이 정말 버거울 정도로 어려움이 있었다. 직장 생활을 하며 육아를 하고 밥을 지어먹는다는 것은 진심 쉬운 일이 아니다. 그때는 몰랐지만 그 세월을 내가 겪어 보니 금을 캐어서라도 엄마에게 훈장을 만들어 드리고 싶은 심정이다.



엄마는 늘 윤기 나고 찰진 밥을 지어 주셨다. 밥이 보약이라는 말을 밥상 차릴 때마다 부록처럼 덧붙여 주신지라 무서운 습관의 힘으로 나 역시 가족들에게 밥이 보약임을 강조한다. 그 밥에 얹어먹는 짭조름한 오징어 젓갈이나 들기름 발라 구운 김, 된장찌개와 얼갈이 물김치는 항상 밥상 한편을 차지하는 메뉴였는데 맨날 똑같은 반찬이라고 철없는 아이들이 투정이라도 부릴새면 두부구이나 계란말이를 급조해 주시기도 했다. 이 메뉴는 나 역시 가족들에게 늘 내놓는 변함없는 식단표이다.



엄마는 자신의 일에 대한 욕심도 크게 가지셨지만 자녀들에 대한 기대도 놓지 않으셨다. 학년이 높아지고 입시가 다가올수록 엄마가 생각하는 자녀의 진로와 현실에는 점점 괴리감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 무엇도 되고 싶지 않았고, 하고 싶었던 것도 없던 나는 대학 입학시험을 치는 날 새벽부터 준비하신 엄마의 도시락을 열고 생각이 많아졌던 기억이다. 도시락은 엄마가 보여주시는 자녀에 대한 기대였고 최상의 표현이었다. 밥에 대한 엄마의 진심을 내가 훼손한 느낌이라 미안했고 그 밥을 먹는 게 부담이 되어 남겨서 기대 안 하는 게 좋으실 거라는 복선을 깔아드렸다. 유치하기 짝이 없는...



몸아 아플 때, 삶에 지쳐 움츠려들 때, 아무것도 먹고 싶지 않고 살기 위해 밥을 먹어야 할 때, 나는 엄마의 찰진 하얀 밥과 된장찌개 하나면 링거 한 병을 맞는 것보다 큰 힘을 얻는다. 그것은 마음의 평화이고 안식이며 쉴만한 물가이다.



팔순의 엄마가 지어주시는 밥은 아직 나에게 보약임에 틀림이 없다. 입맛이 없다가도 이맘때 엄마가 담아주시는 열무 얼갈이 물김치에 된장 하나면 밥 두 그릇은 뚝딱이다. 나는 하늘의 뜻을 안다는 나이가 되어도 아직 엄마의 손맛을 따라낼 수가 없다. 감히 근접할 수 없는 레시피는 배우고 익히고 똑같은 재료를 그대로 가져다 사용해도 다른 맛이 난다. 엄마의 밥에는 자식들에게 주고 싶은 사랑과 간절한 마음이 담겨있어 그 손맛을 더해 고유의 맛이 있나 보다.



객지에 흝어져 있는 나의 자녀들이 집으로 돌아올 때면 나도 우리 엄마랑 똑같은 메뉴의 밥상을 내어 준다. 아이들은 출발하기 전부터 된장찌개를 끓여달라고 카톡을 남기고 각자 먹고 싶은 메뉴를 올려두기도 한다. 나는 엄마의 요리 솜씨는 닮지 못했지만 진심은 닮아 있나 보다. 되는대로 뚝딱 끓여내도 아이들은 엄마의 된장찌개가 최고라고 말한다. 내가 우리 엄마의 된장찌개를 찬양하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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