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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온 Aug 16. 2022

친구

친구에 대한 단상


​저녁을 먹고 나면 허물없이 찾아가 차 한잔 마시고 싶다고 말할 수 있는 친구,
영원히 없을수록 영원을 꿈꾸도록 서로 돕는 친구,

인품이 맑은 강물처럼 조용하고 은근하며 깊고 신선하며 예술과 인생을 소중히 여길 만큼 성숙한 사람

나의 변덕과 괜한 흥분에도 맞장구쳐주고 나서 얼마의 시간이 흘러 내가 평온해지거든 부드럽고 세련된 표현으로 충고를 아끼지 않는 친구....

 (유안진-지란지교를 꿈꾸며 中)

​​나에게 묻는다. 이런 친구가 있냐고... 누구라고 선뜻 말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있으면 있고 또 생각해 보면 없는 듯하기도 하다. 그렇다면 나는 누구에게 이런 친구가 되고 있는지도 되묻는다. 이 또한 잘 모르겠으니 내가 친구가 많다고 생각하는 건 단지 나만의 생각일 뿐인지도 모르겠다.


얼마 전 친정식구들과 점심을 먹고 근처 옷 가게에 들러 구경하던 중 낯익은 얼굴을 만났다. 고등학교 3년을 내내 붙어 다닌 단짝 친구였다. 식구들도 얼굴을 익히 알아 반갑다고 호들갑을 떨며 인사를 나누었다. 우리 정말 친했었고 솔메이트였다고 친구의 남편에게 인사를 건네면서 슬쩍 나는 겸연쩍어졌다. 그렇게 친했는데 지금은? 그 친구와 내가 소원해지게 된 것이 확실하게 기억나지는 않지만 대학입시 이후였다는 생각이다.


우리는 성향이 비슷해 무엇이든 함께 하고 또 맞추려고 노력했었다. 소방차에 열광하는 친구들에 비해 우리는 들국화를 추앙하는 특이함을 보였다. 이틀 후가 중요한 모의고사였지만 우리는 대학교 강당 앞에서 들국화 콘서트를 보기 위해 줄을 섰고 전인권 아저씨의 "얘들아~공부해! "라는 말 한마디에 열심히 공부하기도 했었다. 공부하라는 엄마 말씀은 지독히도 안 들으면서..


이후 친구는 원하는 대학에 진학했고 열심히 하지 않은 나는 그렇질 못했다. 자존심은 높고 자존감은 낮았던 나는 더 이상 그 친구를 만나고 싶지 않았다. 분명 내가 꼬인 것은 맞다. 딱 꼬집어 이유를 대라면 이 부분인 것 같기도 하나 대학 새내기가 되다 보니 새로운 친구들이 많이 생겼고 그들과의 우정과 친분이 그때는 더 중요했나 보다.


세월이 많이 흐른 지금 친구의 얼굴을 다시 보니 애잔함이 있다. 그 짧은 시간 정신없이 친구는 자신이 살아온 이야기를 했다. 시댁, 승승장구하는 남편, 인 서울로 진학한 아이들, 사는 집의 메이커 등등의 TMI를 오늘이 아니면 할 수 없다는 생각인지 토하듯이 뱉어냈다. 그런데 '이 친구 외롭구나'라는 생각이 번뜻 스치는 이유는 뭘까? 평상시 타인과 많이 소통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말을 되도록 아끼고 상대의 이야기를 듣는데 치중함을 보여준다고 생각했다. 이건 순전히 나의 생각일 뿐이다. 옷 가게에서 잠시 서서 5분 정도의 대화 속에 나는 친구가 나와 떨어져 살아온 30년 가까운 세월을 본의 아니게 읽어냈다. 자랑하던 부잣집 시댁은 완고함이 보였고 승승장구하는 남편과 짧은 인사 속에 이기심과 고집스러움이 읽혔다. 인 서울 한 아들은 엄마의 자랑일 뿐 살가움은 없어 보인다. 그렇게 친구의 이야기를 스치듯 담아내고 우리는 꼭 다시 만나자라며 핸드폰 번호를 각자에게 입력했다. 벌써 한 달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연락을 하지 않았다. 그걸로 되었다는 느낌이었다.


사람은 원래 자기 기준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친구가 그렇지 않을까 하는 것은 단지 나의 생각일 뿐이다. 친구가 잘 되기를 바라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내심 그렇게 잘 나가는 친구를 응원하기가 싫었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궁금했던 것은 친구의 삶에 엮인 가족이나 사는 집과 차가 아니라 친구가 요즘은 뭘 하고 있는지 어떻게 하루를 보내고 있는지가 궁금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반대로 생각해보면 친구도 마찬가지 아니었을까... 너나 나나 딱 거기까지였나 보다.ㅎ



'지란지교를 꿈꾸며'를 기억하며  지금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지 모를 나를 스쳐간 수많았던 친구들을 기억해 본다. 나의 기분이 울적해서 하나의 친구에게 연락을 해야 한다면 나는 차라리 하지 않는다. 한 사람에게 나의 울적한 기분을 전염시키고 싶지 않아서이다. 반대로 기분이 너무 좋을 때는 두루두루 많은 사람들에게 연락해 함께 기쁨을 나눈다.


그렇지만 나이가 드니 노래 가사처럼 늘 푸른 나무처럼 변하지 않고 함께 지란지교를 꿈꿀 단짝 친구 하나쯤은 있었으면 좋겠다. 내가 먼저 그런 친구가 되어야 한다면 삶이 하나이듯 뜻이 하나인 친구가 생길지도 모를 일이다.


오늘은 핸드폰에 저장된 친구들 중 내가 누구에게 딱 맞춤 단짝이 되어 줄 수 있을는지, 지란지교를 함께 꿈꿀 의향이 있는 친구가 있으려나 두루두루 문자로 소식을 한번 전해봐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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