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이 자라는 시기가 있다
천사 같은 아이들의 얼굴을 보고 있으면 기분을 살피기 그리 어렵지 않다.
종종 무표정한 얼굴을 보이기도 하지만 놀이를 보면 바로 티가 난다.
"안돼! 그건 그렇게 하는 놀이 아니야"
"나는 너 싫어"
"너랑은 안 놀 거야"
'어... 무슨 일이지?'
관계에서 갈등을 만드는 그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부모님이나 양육자 또는 형제, 자매에게 받은 속상한 일들이 아직 감정에 남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가장 힘든 경우는 지지받고 인정받고 싶은 대상으로부터 받은 상처!
영유아기에는 아주 특별한 발달과정은 거치게 된다.
바로 감성을 쌓아가는 시기.
이때 뇌의 시냅스가 폭발하여 애착을 기반으로 감정 조절과 공감능력이 만들어진다.
따뜻한 신체접촉과 정서적 교감!
긍정적인 표정, 음성, 분위기로 감정소통 그리고 자유로운 표현 등으로 아이는 생에 큰 영향을 미치는 능력을 획득하게 되는 것이다.
대리 청정 첫날
"잘하자 자식이 잘해야 아비가 산다"
간섭이 점점 심해지는 영조의 대리 청정은 좋지 않게 끝을 맺게 된다.
자식에서
"너는 존재 자체가 역모야"
영조의 말에 역모를 실행하게 되는 세자가 자신의 아들 세손과 자신의 아비 영조의 대화를 듣게 된다.
"지난번 네 아비가 영빈의 회갑연을 치러 줬다지?"
"그러하옵니다"
"그때 너도 사배를 올렸다지?"
"그러하옵니다"
"네 할미는 일개 후궁인데 어찌하여 왕과 왕비에게만 올리는 사배를 올렸느냐? 그건 예법에 어긋하는 일이 아니더냐?"
.....
"사람이 있고 예법이 있는 것이지 어찌 예법이 있고 사람이 있겠습니까
공자께서도 예법의 말단을 보지 말고 그 마음을 보라 하였습니다.
그날 소손은 제 아비의 마음을 보았나이다."
칼을 들고 밖에서 그 이야기를 듣고 있던 사도가 "사람이 있고 예법이 있다"는 말에 눈물을 흘린다.
두 살 때부터 사도세자에게 제왕의 교육을 시킨 영조.
그 교육은 권위적이었을까?
권위주의적이었을까?
우리는 가끔 이 둘을 명확하게 구분하지 못할 때가 있다.
'다이애나 바움린드'란 학자는 양육의 형태를
권위적, 권위주의적, 허용적, 방임적 양육으로 양육의 방식을 분류했는데
권위적인 양육은 애정과 통제를 균형 있게 유지하여 아이가 자율적이고 자신감이 있으며 사회적 능력이 높다.
반면 권위주의적인 양육은 규칙과 복종을 강조하고 통제가 많아 위축되거나 반항적이면서 의존적인 성향을 보인다.
사도세자가 왕의 말에 복종은 하되 위축되고 반항심이 커져 울화가 생긴 것을 생각한다면 아마도 후자였을 것이다.
사람이 있고 예법이 있다?
이 말은 그 사람이 어떤지 살피고 나서 예법을 배우게 하여하 한다는 말이 아닐까?
아직 자신의 감정을 알기도 전에 상대방에게 피해를 주면 안 된다는 예법을 배우게 된다면 그 아이는 평생 자신의 감정을 읽기 어려워할 수도 있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꿈꾸는 삶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삶이 풍요로워지고 교육의 수준도 높아진 지금.
우리는
다음 세대의 행복을 위해 얼마나 고민하고 있는가?
아비에게 간섭받고 인정받지 못한 결핍으로 세손에게 엄격함을 내세우지 않았던 사도세자.
세손이었던 정조는 당시 세자빈이었던 어머니의 따뜻한 보살핌과 아비인 세자의 관심으로 아비의 마음을 읽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F.A 작가의 여행 소감 : 자식을 기르는 사람의 마음가짐을 되돌아면서 어렵고도 힘든 슬기로운 예법에 대해 생각하게 만들었다.
사진: 네이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