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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탁수사관

인턴 레퍼런스

by 임경주


이성민 수사관.

국가와 국민을 위한 당신의 노고를 잊지 않겠습니다. 고생하셨습니다.

대검찰청 사무국장이 감사패를 건넸다.

박수소리와 함께 터져 나오는 환호성은 그의 검찰수사관 인생이 얼마나 훌륭했는지를 대변하고 있다.


올해 만 60세 환갑을 맞이해 퇴직한 그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여행이었다.

그는 3년 전 아내를 떠나보냈고 자식들이 아들과 딸 둘이 있는데 뭐가 그리 바쁜지 별로 내키지 않는 영상통화만 보내온다.

그래도 영상을 통해 만나는 손주들을 보면 얼굴에 화색이 돈다. 손주들은 그의 삶의 축복이자 큰 기쁨이었다.


태국 치앙마이 길거리 음악과 함께 하이네켄을 마시고 기분이 좋아져 샘쑝도 홀짝인다.


일본 홋카이도 삿포로 선 술집 이자카야에서 사케를 마시고 온천욕도 즐긴다.

물론 혼자다.

모든 것이 여유롭고 좋다. 하지만 한 가지 생각이 떠오르더니 결국 그를 사로잡고 만다.

그것은 그가 검찰수사관이 되기 전, 형사시절에 해결하지 못한 살인사건이었다.


서울중앙지방검찰청 제1차장 아래 특수수사 1과.

이제 막 검사임용된 1학년 검사 유진은 혈기가 왕성하다. 법조계에 오래된 부모 밑에서 성장한 탓일까.

엘리트 의식이 확고하고 정의롭다. 일을 사랑하고 신세대 검사답게 세련미가 넘친다.

하지만 범죄자를 혐오한다. 길거리 신호등 하나라도 어기는 꼴을 보지 못한다.

법 위에 사람 없다는 신념으로 자신의 모든 행위가 곧 정의라고 믿고 있다.

그래서일까.

다 좋은데 수사관과 마찰이 많다. 갈등이 심해지면 결국 떨어져 나가는 건 수사관이다.


융통성이 없어. 그리고 싸가지 있는 척만 하는 거야. 싸가지 더럽게 없어. 어지간해야지. 난 저런 검사랑은 죽어도 같이 일 못해.


1년 만에 세명의 수사관이 나가떨어졌다. 모두 다 하나같이 입을 모아 하는 말이었다.


수사관들이 기피하는 자리.

서울중앙지검 사무국장이 성민에게 제안을 해온다. 두 사람의 친분은 꽤 오래되었다.


촉탁?

그래 1년 계약이지.


첫 출근 날.

산더미 같은 서류 속 유진이 날밤을 새고 일하다 잠들었다. 성민이 203호 검사실 유진의 이름을 확인한 뒤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들어간다.

검사가 책상에 엎드려 자고 있다. 그는 피의자 의자에 앉아 조용히 기다린다.

주변을 둘러보니 떠났던 직장인지라 감회가 새롭기도 하다.

정말 조심했는데 검사 유진이 자기 코 고는 소리에 놀라 잠에서 깨어났다. 입가의 침을 쓱 닦더니 성민을 피의자 취급한다.

아 왜 이렇게 일찍 온 거야. 거기요. 거기 의자 옆에 중국집 번호 있으니까 짜장면이라도 시켜 먹고 있으세요.

성민의 인자한 어른의 웃음.

저 수사관입니다. 검사님.

네?

촉탁이죠.

촉탁이요?

두 사람의 만남이었다.


우리 검사님 꼬라지가 꼬라지가. 너무 귀하게 커서 그럴까요? 한번 성질부리면 아무도 못 말려요.

실무관이 검사 유진이 자리를 비웠을 때 흉을 본다. 성민은 그저 양쪽 어깨를 으슥하며 웃을 뿐이다.


유진은 정리정돈을 참 못한다. 성민은 그저 뒤에서 묵묵히 그녀의 스타일을 존중하고 따른다.


미해결 살인사건이 재점화되었다.

성민이 형사 시절 해결하지 못했던 살인사건이 호텔 북두 카지노사업과 연결되어 있다는 기사와 방송이 터진 것이다.

어째 돌아가는 모양새가 방송이 터트린 것을 수사기관은 덮기 바쁜 형국이다.

유진 검사가 이 사건을 맡게 되고, 성민은 그 어떤 업무보다 더 적극적인 모습으로 수사를 진행해 나간다.

하지만 카지노사업주 변경과정에서 드러난 검찰의 수사방해와 압력행사 이것 하나만 두고도 두 사람의 마찰과 갈등이 일어나지 않을 수가 없다.

이것은 한 세대의 갈등이기 전에 계급의 갈등이었고 이 갈등은 결국 유진을 돌아보게 하며 한 단계 성장시킨다.


유진은 법조 명문가 출신으로 원칙주의자인데 성민은 현장 경험이 풍부한 실무형이다.

처음에는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지만, 사건을 통해 점차 신뢰를 쌓아간다.


유진은 어느 날 성민의 과거를 알게 되고 성질만 부린 것에 대해 처음으로 상대에게 미안함을 느낀다.


성민은 불합리와 부조리 속에서도 사건해결에만 매달려 아내의 임종을 지키지 못했고 그로 인한 자식들과의 거리감 그리고 은퇴 후의 공허함 속에서 다시 찾아온 미해결 사건이 그의 존재 이유처럼 떠올라 수사해결에 의지를 불태운다.

하지만 그는 유진검사와 달리 노련한 방식으로 범인에게 접근해 나간다.

젊은 시절 앞만 보고 달리느라 놓쳤던 수사 과정에서 실수와 무심코 지나친 단서가 윤곽을 드러낸다.


한편, 유진은 정의감이 강하지만 융통성이 부족해 수사에 장애가 되기 시작하고 처음으로 무력감에 사로잡힌다.

하지만 성민의 성숙한 모습과 노련한 일처리를 통해 법의 정의와 인간의 정의가 따로 존재한다는 것을 깨닫고 성장한다.


두 사람의 본격적인 협업이 시작되었지만 여전히 풀리지 않는 사건.


성민은 과거 놓쳤던 단서에서 호텔 북두 카지노사업과 그 사업자가 교체되는 과정에서 피해자가 국내마약유통과도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낸다.

그리고 그 모든 사건의 배후에는 또 다른 검사이자 검사장이 존재해 수사를 방해한 사실까지도 밝혀낸다.

그리고 그 검사장은 유진의 부친이다.


강한 만큼 상처도 클 것이기에 유진에게 그 진실을 꺼내어 보여주지 못하는 성민에게 촉탁해고장이 날아 들어온다.

어느새 자기도 모르게 유진 검사를 걱정하고 있고 연민하는 모습을 발견한 성민은 자신이 더 이상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203호 검사실을 조용히 떠난다.


태국 치앙마이.

속세를 떠나 한국의 모든 소식도 끊고 길거리 음악과 함께 하이네켄을 홀짝 거리고 있는 성민의 앞에 누군가가 나타난다.

고개를 들어 올려다보니 유진검사다.

여긴 짜장면 안 파나요?

성민이 웃는다.


성민이 떠난 사이 유진이 홀로 사건을 수면 위로 끌어올린 것이다. 그로 인해 사회적 공분이 일어난 상황이었다.


노인의 지혜가 필요합니다.

아버지 상대로 이기려면 촉탁수사관님께서 내 옆에 꼭 있어줘야겠어요.

​뭐부터 시작할까요? 검사님?

성민이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유진이 활짝 웃으며


1화 엔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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