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방의 추억, 다시 돌아갈 수 있다면
지금은 바바리맨을 찾아보려야 영화나 드라마에서도 찾아볼 수가 없지만 내가 고등학교 때는 동네에 바바리맨이 있었다.
한데, 참 신기한 게 남자인 내가 보기엔 어딜 봐서 그런 짓을 하는 미친놈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런 짓이란 여기서 글로 표현하기가 정말 난감할 정도로 이상한 짓이다. 하지만 남아 있는 글의 이해를 돕기 위해 어쩔 수없이 표현하는 점을 이해 바란다.
전봇대에 딱 달라붙어 개처럼 자기 거시기를 비비면서 누나를 보고 웃고 뒤따라오다가 그 끝판왕을 보여줬다고.
저 아저씨가 그랬다고?
누나는 공포에 질린 채로 로맨스 책을 반납한 뒤 그대로 도망쳤고 난 그 자리에 남아 이현세 작화님의 공포의 외인구단을 진지한 눈으로 보고 있는 그 바바리맨이라는 평범하기 짝이 없는 아저씨를 정말 오래도록 지켜보고 관찰했던 거 같다.
그리고 그 때 나는 분명 분노했었다.
아마 집에 돌아와 막내누나에게 내가 한 질문은 2차 가해에 해당할 것이다. 도대체 직접 보지 않고서는 누나가 한 말을 믿을 수가 없었다.
확실해? 나 저번에 만화책 보다가 그 아저씨랑 라면도 같이 먹었는데?
진짜? 이 미친놈! 너 앞으로 만화방 가지 마. 근데 잠깐만, 너 공부는 왜 안 해?
막내누나는 그때 대학교 1학년이었고 난 시골에서 공부 좀 한다고 광주로 유학을 와 모 고등학교에 다녀 둘이 자취를 하고 있었다.
막내누나는 로맨스에 빠져 있었고 나는 만화책이라면 다 좋아 하루 3천 원이었던가? 아무튼 고행석 작화부터 시작해 이현세 작화님까지 장르를 가리지 않고 대한민국 만화는 다 봤을 것이다.
그때는 실내흡연이 자유로워 만화방에서 하루 종일 살다가 나와 자취방에 들어가면 누나가 다 알면서 어디 갔다 와? 하고 여우처럼 묻곤 했다.
공부하고 왔지.
썩을 놈 담배 냄새가 풀풀 나는데 거짓말하고 있어. 도대체 만화방에서 얼마나 있었던 거야? 그리고 거기 그 미친 범죄자 있으니까 가지 말라니까?
내 거짓말에 누나는 다 알면서 호랑이로 돌변하곤 했다.
누나나 잘해.
둘 다 공부는 안 하고 딴 짓거리하고 산 건 서로 인정해야 할 것이다.
참 지금 생각하면 별일도 참 많았다. 그 작은, 지금 다시 가서 막내누나랑 자취했던 그 작은 방을 보면 코딱지만 해보일 것이다.
그 방으로 여자들만 골라 공격하는 지금의 원룸폭행 사건과도 같은 일들도 적지 않게 일어났다.
내가 아무리 어려도 분명 여기 이 방에 존재하고 있는데 막무가내로 방문을 열고 침입해 들어온 미친놈도 있었다. 그놈도 누나가 쫒아냈다. 악을 쓰고 난리가 나니까 주인집 아저씨 깨어나고. 아무튼.
난 왜 이리 약한 걸까.
아마 그때부터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해 힘을 키워야겠다고 다짐했던 거 같다.
그래서 복싱을 시작했고, 지금도 난 글러브를 끼고 샌드백을 친다. 내 나이… 쉰이 훌쩍 넘었는데 지금도 시간이 나면 스텝을 연구한다.
그래도 여전히 세상은 무섭다.
난 부당거래의 주양이 황정민 앞에서 내가 겁이 많아 검사가 된 사람이야. 이 대사처럼 난 무력하고 지금도 겁이 많아 키울 수 있는 힘이 있다면 그것이 무엇이든 키우고 싶다.
이야기를 하다 보니 산으로 가는 것 같은데.
그래서 내가 지금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이냐.
이런 시절들을 지나왔기에 지금의 내가 있지 않나 그런 말을 하고 싶은 것이다.
지금 그때로 다시 돌아간다면 이현세 작화님의 공포의
외인구단을 진지하게 보고 있는 그 아저씨의 멱살을 붙잡고 밖으로 끌고 나가 실컷 두들겨 패주고 싶다.
너 앞으로 우리 누나 앞에서 한 번만 더 그러면 진짜 절반 죽여버린다.
이건 누나가 겁에 질려 사색이 되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만화방에서 도망칠 때 내가 했어야 할 행동이다.
근데 우리 막내누나도 집사람과 비슷해서 이런 말을 하면 하나도 기억이 안 난다고 그런다.
그러면 이런 죄책감에 시달리고 있는
난 도대체 뭘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