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혹동화
양들은 늑대의 공격이 항상 두려웠다.
무리 중에 덩치가 가장 크고 힘이 센 K도 예외는 아니었다. K는 스스로 늑대가 되고 싶어 했고, 늑대처럼 행동했다.
같은 양들 사이에서 이와 잇몸을 드러내며 겁을 주었고 하울링을 했다. 그 어떤 양도 K를 말리지 못했다.
K는 규칙을 지키지 않았다. 항상 제멋대로 행동했고 무리를 이탈해 목양견을 뛰어오게 만들었다.
“네 자리로 돌아가.”
각자의 위치는 목양견에게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K는 목양견의 경고가 귀에 들리지 않았다. 그저 목양견의 날카로운 이빨과 선 분홍 색깔의 잇몸만 보였다. K가 보기에 목양견의 이빨도 늑대의 것만큼이나 날카로웠다. K는 목양견이 무서웠지만 물러서지 않았다. 목양견이 늑대와 같은 날카로운 이빨을 가졌다지만 늑대와는 달리 양들을 해치지 않고 보호한다는 사실을 매우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K도 목양견을 향해 이와 잇몸을 드러냈다. K의 고른 치열이 보이는 순간, 목양견이 피식하며 웃고 말았다.
“너 요즘 그런 식으로 동료들 괴롭힌다며?”
“누구야? 어떤 놈이 그딴 소릴 지껄이는 거야?”
“마지막 경고다. 네 자리로 돌아가. 그렇지 않으면 이 사나운 이빨로 너의 목덜미를 물어뜯어 버릴 거니까.”
K는 겁에 질려 뒤를 돌아보았다. 양들의 무리가 모여 있었는데, 그 양들이 매우 한심하고 초라하고 약해 보였다. K는 혼란스러웠다. 저곳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자신의 위치가 아니었다.
K는 서열과 위치를 매우 중요하게 여긴다. K의 아버지가 누구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K의 어머니 M은 신경질적이고 매사가 불만이었다. M은 K를 임신했을 때 담배를 입에 물고 살았고 술에 취해 자신의 배를 때리며 욕을 내뱉었다. K는 M의 보살핌을 받지 못했고 젖 한번 제대로 물어보질 못했다.
M이 K를 버리지 않는 이유는 목양견으로부터 더 나은 보호를 받기 위해서였다. 목양견 앞에서는 눈물겨운 모성애를 보였고, 보이지 않는 뒤에서는 K에게 폭력을 행사하며 저주를 퍼부었다.
“넌 더 불쌍해 보여야 해. 어쩌면 평생을 걷지 못하는 게 나을 수도 있겠지.”
M은 K의 발바닥을 바늘로 찔렀다.
“아파요 엄마. 제발 하지 마세요.”
K가 울며 빌었다.
“이게 아파? 난 널 원하지도 않았는데도 널 낳을 때 아파 죽는 줄 알았어!”
M은 K를 실컷 괴롭히고 나면 술에 취해 잠이 들었다. K는 성장하면서 암컷 양들만 보면 원인 모를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목양견 몰래 어린 암컷 양들을 붙잡아 두고는 자신이 M에게 당했던 바늘 고문부터 시작해 욕설과 함께 모든 것들을 똑같이 하고 싶은 욕망에 늘 시달렸다. 그럴 때면 떠오르는 하나의 이미지가 있었다. 바로 늑대였다.
K는 동료 양들을 상급과 하급으로 서열을 나누었다. 동급은 없었다. 봄철 짝짓기 계절이 돌아오면 암컷을 차지하기 위해 박치기 싸움을 시작하는데 뿔이 강하고 힘이 센 양들은 자신보다 상급이었고, 약한 양들은 하급이었다. K는 상급 양들에게는 인사도 잘하고 말도 예쁘게 했다. 하급 양들은 철저히 무시했고 함부로 굴었다. 그러니 K를 두고 하는 말은 서로가 달랐다.
“그렇게 착한 녀석이?”
K는 절대로 그럴 아이가 아니라고 말하는 쪽은 K에게 상급으로 인정받고 있는 양들이었다. K에게 무시당하고 괴롭힘을 당하는 양들은 어른들에게 호소했지만 소용없었다.
한 번은 무리를 이끌었던 T가 K를 불러 사실관계를 확인했었다. K는 주저앉아 펑펑 울었다. 오히려 자신이 피해자라고 주장했다. 그렇게 나약해 보일 수가 없었다. K에게 괴롭힘을 당했던 양들은 그 가증스러운 모습에 기가 막힐 뿐이었다.
“동료를 모함하지 마라.”
T에게 혼이 난 건 진짜 피해 양들이었다. 가해자가 피해자로 둔갑된 순간이었다.
지금은 K가 가장 강하다. 몇 달 전 T는 K의 박치기에 나가떨어졌다. 암컷도 K에게 빼앗겼다. 이제 K에게 상급은 없다. 모두가 하급들이었고 한심해 보일 지경이었다.
K는 무리를 이끌게 되자 T의 욕을 엄청나게 하고 다녔다. 없는 말까지도 지어냈다. 그렇게 T를 깎아내리면 자신이 더 돋보이는 것 같은 묘한 만족감을 느꼈다. 하지만 그 만족감은 오래가지 않았다.
양심이 작동한 것일까? 아니다. T가 갑자기 뒤에서 나타나 자신의 뒤통수를 뿔로 들이박을 것만 같기 때문이었다. K는 배설하듯 쏟아낸 욕과 거짓말을 통해 얻게 되는 만족감이 당장은 좋았지만, 언제 어디서 T에게 뒤통수를 얻어맞게 될지 몰라 항상 걱정되었다. 이런 걱정과 우려는 몹시도 짜증이 났다. 괜한 소릴 내뱉었어. 후회는 잠시였다. T를 향한 거짓말과 욕은 더욱더 심해졌다. 손이 더러워지면 비누로 씻어야 개운한 것처럼, T의 흉을 보고 거짓말을 하고 욕과 함께 비난하고 나면 비누로 씻은 듯 개운했다. 욕과 거짓말은 마음의 비누였다. 걱정이 사라지고 청량감과 함께 만족감이 강해졌다. 하지만 불안감이 또 엄습해 온다. 어디 올 테면 와보라지. K는 입을 맞출 협조자까지 구했다.
협조자는 마지못해 K가 지어낸 거짓말에 수긍했다.
“T 말이야. 너도 알겠지만, 늑대가 서쪽 울타리아래 흙을 파고 있는 것을 보고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어.”
“....”
“그래, 너도 알고 있었지? 그 자식 아주 비겁한 겁쟁이야. 늑대가 울타리 밑을 뚫고 들어오면 그때 우리를 재물로 바치고 자기만 살겠다는 거지. 이런 겁쟁이 따위가 우리를 이끄는 우두머리였다니! 정말 너무 화가 난다.”
K의 양심은 작동하지 않는다. 양심보다는 자기감정이 우선하기 때문이었다. 사실, K는 오래전부터 늑대에게 협박을 당하고 있었다. 서쪽 울타리 아래로 동이 트기 전까지 어린양을 한 마리씩 유인해 재물로 바쳐라. 그러면 널 잡아먹는 일은 없을 것이야.
K는 늑대가 했던 말이 떠오를 때마다 공포에 휩싸여 온몸을 떨었다. 마지막 경고야. 당장 내일 새벽에라도 재물을 바치지 않으면 울타리를 뛰어 넘어서라도 네놈부터 물어뜯어 줄 거야.
K는 자신이 곧 저지를 범죄를 T에게 뒤집어 씌웠고, 협조자가 수긍할 때까지 자신의 주장을 펼쳐나가고 끝내 관철시켰다. 상대방이 지쳐서 수긍할 때까지 말도 안 되는 주장과 억지를 펼쳐내는 과정에서 거짓은 또 거짓을 낳는다.
T는 K가 말도 안 되는 자신의 욕을 뒤에서 하고 다닌다는 것을 알면서도 일부러 모른 체했다. 사실 관계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K는 딱 잡아뗄 것이 분명했다.
K는 뻔뻔했다. 난 그런 적이 없다. 나도 들어서하는 말이다. 오히려 누가 그런 말을 했냐며 동료를 곤란하게 만들 것이다. T는 혼자 참는 것이었다. T의 양심은 제대로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무리 중에 강직한 J는 모든 양의 사랑을 받고 있다. K의 악행이 심해질수록 J를 찾는 양들이 늘어났다.
J가 나서줘야 하는 거 아니야?
J와 K가 싸우면 누가 이길까?
모든 양들이 궁금해하는 이 싸움은 일어나지 않았다. J는 절대로 나서는 법이 없었다. 싸움 대신 요리대회, 노래대회를 통해 친구들과 하나 되는 걸 좋아했다.
솔직히 말해봐. 너도 K가 두려운 거지?
J의 친구 중 한 명이 물었다.
아니?
그래? 그러면 왜 나서질 않는 거야? 저 악마 같은 자식이 하는 못된 짓을 넌 계속 지켜만 볼 거야? 친구들에게 미안하지도 않아?
무슨 말인지 모르겠네. K의 악행에 내가 책임이 있는 거야? 넌 왜 네가 하지 못하는 일을 당연하듯 남에게 넘기는 건데?
네가 겁쟁인지 아닌지 확인하고 있을 뿐이야.
내가 겁쟁이든 아니든 그걸 왜 너에게 증명해야 하냐고. 너 K에게 무슨 일을 당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나한테 이러는 거 아니야. 너 스스로 부끄럽지도 않아? 넌 교활한 집시야. 싸움을 붙이고 뒤에서 구경하며 상황에 따라 행동하겠지. 내 머리 위에서 도대체 뭘 얻고 싶은 거야?
J에게 싸움을 강요하던 친구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너희들도 잘 들어. 내가 나서서 할 수 있는 방법은 꼭 싸움만 있는 게 아니야. 싸움 말고도 여러 가지가 있어.
싸워 이겨달라는 말이 아니야! 우리의 지도자가 되어 달라는 거야!
지도자? 내가 꼭 앞에 나서서 지도자가 되어야 할까? 난 K에게 요리로 헌신할 수 있고, 노래도 불러줄 수 있어. 이게 비굴한 걸까? 우리가 서로 하나 될 수 있는 길은, 아직 많아. 착한 양들이 서로 곤란하지 않게 못된 양들을 제압할 수 있는 방법은 분명 존재해.
O양이 죽은 채로 발견되었다. O양은 K가 T와의 박치기 싸움에서 승리한 후 전리물처럼 차지한 암컷 양이다. K는 O양이 진실을 말해도 믿지 않았다. T를 잊지 못해 몰래 만나고 있다며 항상 의심했고 감시했다.
왜 날 속이는 거야? 누가 만나는 걸 뭐라고 해? 내가 당신을 용서할 수 없는 건 거짓말이야.
아니야. 정말 아니라니까?
거짓말! 또 거짓말!
K는 자신이 잠든 사이 O양이 T를 찾아가 애정행각을 벌이는 망상에 시달렸고 사실을 확인해야 한다는 집착에 빠져 O양을 감금하고 때렸다. 구타는 점점 심해졌고, 성적학대와 고문으로 까지 이어졌다.
O양이 살기 위해 거짓말을 했다. T가 듣고 싶어 하는 말을 하며 제발 살려다라고 애원했다. 지금까지는 당신 몰래 T를 만나왔지만 다시는 T를 만나지 않겠다며 맹세했다. 그리고 맹세의 대가가 죽음이었다.
목양견 S가 O양의 사체 앞에서 사납게 울부짖었다. 동이 틀 새벽이었다. 목장의 주인이 달려와 사체를 확인했다.
늑대의 공격으로 갈기갈기 찢어졌지만 희한하게도 살점이나 내장이 먹히지 않았다. 전문가들이 O양의 사체를 확인했다.
“이빨자국이 늑대의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요?”
“같은 양의 것입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나요?”
“같은 양의 무리 중 누군가가 자신을 스스로 늑대라고 착각하고 있습니다. 이런 일은 양들 사이에서 매우 흔한 일입니다.”
전문가의 말에 목장의 주인은 깜짝 놀랐다.
"변질된 양은 다른 양들이 보는 앞에서 총으로 쏴 죽인 뒤, 목을 잘라야 합니다."
목장의 주인은 전문가의 말에 깊은 생각에 잠겼다. 그는 결국 모두가 보는 앞에서 K를 죽이기로 마음먹었다. K를 붙잡아 제압한 뒤, 총구를 이마에 겨냥한 채로 물었다.
"이 녀석아, 너는 왜 그렇게 행동한 거니? 너 정말 늑대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 거야?"
K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속삭였다.
내가 늙어 좋은 털을 내놓지 못하면… 결국엔 끌고 가서 잡아먹을 거잖아… 늑대가 되고 싶었어. 하지만 나는 늑대가 될 수 없다는 걸 잘 알아… 그래서 더 싫어… 그저 보호만 받고 있는 저 나약한 양들을 보는 것도 싫고 늑대인척 이빨을 자랑하는 S도 싫어! 날 괴롭힌 엄마도 싫고 다 싫어! 내가 원하는 건… 내가 진짜 원하는 건…
K는 사랑받고 싶었고 관심받고 싶었을 뿐이라는 말은 끝내하지 못했다. 주인은 총구 앞에서 벌벌 떠는 K의 모습에 마음이 약해졌다.
"널 죽이지 않겠다. 하지만 폭군은 죽인다. 나의 양들이여, 모두 잘 보아라! 오늘 이 자리에서 죽은 건 양이 아니다. 폭군이다."
탕!
총구가 하늘을 향했고, 총성이 울렸다.
목양견 S는 의심의 눈을 거두지 않고 K의 변화를 지켜보았다. K는 총성이 울린 후 더 이상 늑대를 흉내 내지 않았다. 무리에서 이탈하지도 않았다. 이것이 과연 뉘우침에 의한 반성이며 갱생으로 나아가는 길일까? S에게 K는 늑대보다 더 큰 적이었다. 재물에 관한 소문을 들었다. 모두를 위험에 빠트리고도 남을 녀석이기에 늘 경계를 해야 했다. 하지만 그날의 총성 이후로 많은 것이 바뀌었다. 지금의 변화된 행동이 진심이라면, S는 K가 자신의 과거를 극복하고 새로운 길을 걷고자 한다면 얼마든지 도울 준비가 되어 있었다. 무리를 이동시키는 S의 반복적인 동선이 수직선상에서 K와 나란히 걷는 수평선으로 바뀌었다.
한데, 바로 그때 K가 무리를 이탈했다.
돌아와.
S가 경고했다. 스스로 실망할 수밖에 없었다. 믿은 것이 잘못이었다. 하지만 K는 목장의 한 구석에서 울고 있는 어린양을 발견했다. 그 양은 다른 양들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있었다. S가 K에게만 집중하느라 놓친 부분이었다. K가 어린양을 괴롭히는 양들에게 경고한다.
"당장 그만둬. 박치기로 머리를 다 부숴버리긴 전에. 여럿이서 뭐 하자는 거야? 부끄럽지도 않아?"
가슴속의 분노는 총성과 함께 사라진 것일까? K와 어린양은 나란히 걸었다. 치유의 시간이었다. K는 어린양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었고, 어린양은 K의 이야기에 귀 기울였다. 어린양을 괴롭히던 양들도 나란히 K와 함께 걸었다. K는 자신의 과거와 현재를 되돌아보며, 자신이 왜 이렇게 폭력적이고 지배적인 성향을 보이는지 깊이 고민했다. 그는 어린 시절 겪었던 학대와 소외감이 자신을 어떻게 형성했는지를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K는 자신의 행동이 주변 양들에게 미치는 영향을 직시하기 시작했다. 우상이란다. 내가? 어린양을 괴롭히던 녀석들이 입을 모아 말한다. 그들 중 대장으로 보이는 Z의 가정사에 귀를 기울여본다. 어쩌면 이렇게도 꼭 닮았을까? Z 역시 아버지가 누군지도 모르며 언젠가는 엄마를 죽이는 망상에 빠져 괴로워하고 있었다. K는 도무지 엄마를 용서할 수가 없었다.
다음 날 새벽, 동이 트기 직전.
K가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엄마를 앞에서 안내한다. 서쪽 울타리 아래였다. 그곳에는 늑대가 기다리고 있었다.
엄마가 말한다.
너 낳고 키우느라 제대로 된 연애 한 번 못해봤는데 어디 좋은 남자라도 소개해주려는 거냐?
K는 대꾸하지 않고 울타리 구석으로 엄마를 밀었다.
그래, 그 짓 못하는 게 그렇게도 한이면 늑대랑 많이 하면 되겠네.
늑대?
엄마가 뒤를 돌아본 순간, 다섯 마리의 늑대가 이빨을 드러내며 침을 흘리고 있었다.
살이 부드럽고 맛있는 어린양을 바치랬더니 늙은 양을 데리고 온 건 뭐야? 벌을 받아야지 안 되겠어.
늑대들은 K와 엄마를 동시에 공격했다. 배불리 뜯어먹고 난 늑대가 뒤를 돌아보았다.
잘 보았어? 말을 안 들어 처먹으면 어떤 대가가 따르는지.
어둠 속, Z가 벌벌 떨며 고개를 끄덕였다.
동이 튼다. 새벽의 어둠이 물러나는 목장 한가운데, 목양견 S가 사납게 울부짖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