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천둥소리, 비오는 소리와 함께 블랙화면 열리면 자막.
-2025년 9월 5일 검찰청폐지가 결정되고 중수청이 신설 된다. 단, 업무혼선을 감안해 그 유예를 1년으로 한다.-
화면 다시 넘어가고 천둥소리, 비소리는 계속.
#기, 호우살인마
호우주의보를 시작으로 마포대교 경계수위 8미터, 팔당댐의 방류량이 초당 2만4천톤을 넘어서면 그 놈은 어김없이 나타난다. 10년의 미제로 남아 있는 연쇄살인마의 엽기적인 살인행각으로 인한 그 피해자만 무려 12명. 이들에게 공통점은 없다.
오늘 또 하나의 살인사건이 발생했다.
묻지마 살인처럼 장마의 시작과 함께 찾아온 변사체의 주인공은 여당 4선의원에 원내대표 박경수의원이다. 더욱 더 놀라운 것은 변사체가 발견된 장소가 정치중심지이자 만인의 광장인 여의도광장공원이라는 것이다.
호의주의보에 이은 경계수위 8미터 그리고 팔당댐의 방류랑이 임계치에 도달하자 또 다시 발생한 살인사건은 과연 10년의 악몽이 계속되고 있는 연쇄살인인가?
프로파일러들은 진범이 아닌 어느 모방범의 무차별적인 모방살인범죄라고 입을 모았고, 광수대 형사들은 피해자와 관련된 돈, 치정, 원한, 정치권과 종교 등 인과관계에 초점을 맞추고 수사망을 좁혀 나간다.
태풍의 북상과 함께, 광수대 베테랑형사 최진욱은 박경수의 죽음과 연결된 강원도 홍천에 위치해 있는 정체불명의 비밀연구소를 찾아내고 모든 수사력을 그곳에 집중한다.
#승, 검찰개혁
검찰개혁의 끝자락, 야인 김우영은 검찰에서 물러났지만 검찰총장을 지낸 사람으로 겉만 현 정권에 충성하며 대통령의 검찰개혁에 최선을 다해 협조하는 듯 보이지만 그는 여전히 검찰의 실권을 쥐고 있는 검찰실세다. 권력은 무엇이든 가능하다. 재벌과 권력자들의 비밀모임 렛미인은 김우영을 총수로 세우고 홍천의 비밀연구소에서 불법복제인간을 통해 장기를 제공 받아 젊음을 유지하며 영원한 생명을 꿈꾸고 있다.
더군다나 김우영은 검찰엘리트주의로 검찰청을 포기하지 못하고 있는 인물이다. 그에게는 서울중앙지검시절부터 15년의 세월을 함께 해온 두 명의 검찰수사관이 있다.
한 명은 몽주, 또 한명의 이름은 방원이다.
이들 중 방원은 김우영에게 충직한 부하이자 렛미인의 비밀연구소에서 생산된 장기제공자이다.
그리고 몽주는 사격 국가대표 금메달 리스트 출신으로 방원의 실체를 모르며 대통령의 새 시대 검찰개혁에 마지막까지 저항하는 순수한 인물이다.
검찰개혁이 현실화 되자, 김우영은 그의 검찰인생 전부라고 할 수 있는 케비닛을 몽주에게 맡긴다.
폐기야. 무슨 말인지 알지?
케비닛은 김우영을 여전히 검찰실세로 유지시켜주고 있는 비리고위공직자 명단이다. 언제든 기소가 가능하다. 그만큼 두 수사관이 열심히 일한 결과물이기도 하다.
여의도광장공원 살인사건 발생 7일전.
강원도 원주.
동네 할머니들이 몽주에게 서울에서 오신 검사님이라고 부르자 저 검사 아니에요라고 웃으며 답한다.
할머니1: 아이고야, 서울서 오신 검사님이라며?
몽주: 아니에요. 검사 아니고 수사관이에요.
할머니2: 그게 그거 아닌가봐요?
몽주: (웃으며) 네, 비슷하긴 해요.
할머니1: 검사나 수사관이나. 똑같은 거 아닌가배.
할머니3: 할망구야. 아니라자녀. 검사는 검사고, 수사관은 형사 그런 건가보네.
할머니2: 근데 말이야, 누가 죄를 밝혀주는 거면 다 고마운 거 아녀?
할머니1: 맞아. 누가 뭐래도, 우리 몽주검사님이 제일 믿음직하지.
할머니3:검사 아니라니까! 이 할망구야. 수사관! 수사관이라고.
할머니들의 대화에 몽주가 웃는다.
새 정권에 의해 검찰청 폐지가 결정된 날이다. 나홀로 검찰개혁 반대 피켓시위로 원주지청으로 좌천되어 평검사와 함께 일을 하며 시골 노인들과 이웃들 또는 지역 건달들에게 다정한 누님이자 성실한 공무원으로 잘 지내고 있는 몽주는 한순간 잘못 내린 판단에 의해 일생일대의 큰 사건에 휘말리게 된다.
한편, 정도전은 중수청 신설 수사1부 부장검사로 김우영과 대치되는 인물이자, 중수청 신설과 관련된 규정과 규약을 법사위와 함께 새로 쓴 인물이기도 하다.
몽주가 좋아하는 사람이다. 혼자 가슴앓이 하며 짝사랑하는 것이다. 이런 몽주를 방원이 또 몰래 흠모한다.
그는 몽주를 직접 영입하기 위해 원주지청을 찾아왔다.
몽주가 가진 업무능력을 높이 사는 것도 있지만, 김우영의 케비닛을 추적해온 그였기에 몽주를 곁에 두고 지켜보려는 것이었다.
정도전의 제안을 정중히 뿌리친 몽주가 검찰청 폐지 뉴스를 지켜본다.
케비닛 디스크파일을 손에 쥐고 백업을 할까 말까 고민하고 있는 그 때 김우영의 연락을 받는다.
디스크파일가지고 당장 올라와.
네.
따로 백업할 필요없어. 그냥 가지고 올라와.
욕망은 화를 부른다. 몽주가 김우영의 명령에 따르지 않고 파일복사를 시도하는 과정에서 파일이 감쪽같이 삭제되어 버린다. 비리고위공작자들의 명단과 함께 그들이 조직폭력, 마약, 성매매, 호텔, 카지노, 해외도박, 재벌탈세 등등 각종 이권에 개입해 수십 억의 대가를 받은 증거도 함께 날아가 버렸다. 검찰수사관으로 살아온 몽주와 방원의 15년 수사기록이 한순간에 눈앞에서 사라져버린 것이다.
그와 함께 모니터화면에 떠오른 메시지 창.
-삭제. 청소부 프로토콜을 진행합니다.-
디스크파일은 행위기반 감지 알고리즘에 따라 비인가 접근시도로 청소부 프로토콜을 호출한다.
화면 빠르게 움직이고 카메라 디지털신호를 뒤쫒는다.
카메라는 원주지청 203호 검사실에서 시작된 디지털 신호를 따라 한강을 건너고 서울 도심의 빌딩을 가로질러 낡은 건물 어둠 속, 청소부의 뇌를 스캔한다.
뇌 속에 박힌 칩이 신호를 받고 번쩍이는 순간 청소부가 두 눈을 번쩍 뜬다.
뇌에 삽입된 칩에 도착한 정보와 신호에 따라 한쪽 벽면을 차지하고 있는 거미줄과도 같은 인물관계도의 사진과 정보를 분석해 인물의 현 위치, 일정, 보안과 경호수준에 따라 제거 순위를 결정한다. 청소는 암호화된 살인명령인 것이다.
이 디스크파일은 김우영만 알고 있는 비밀번호를 이용해 2중 코드로 입장해야한다. 몽주가 알고 있는 비밀번호로 들어와 복사를 시도하면 청소부에게 명단을 전하는 프로토콜을 발동시킨다. 김우영이 AI기반 시스템을 심어놓은 것이다.
#전, 진실
청소부는 고객의 요청에 따라 복사를 시도한 사용자와 명단의 인물들을 하나씩 제거해 나간다. 그 첫번째 대상이 바로 여의도광장공원에서 살해당한 4선의원이자 원내대표 박영수다.
여의도광장공원 CC카메라에 포착된 해태가면의 남자.
광수대 형사 최진욱은 법보행분석을 통해 해태가면의 남자가 홍천 인근의 CC카메라에도 잡힌 검찰수사관 방원이라는 사실을 알아내고 신상을 추적한다.
하지만 16세 이전의 기록이 없다. 16세에 한 가정으로 입양이 되었고 검찰수사관이 되어 김우영의 밑에서 일한 것이 전부였다.
한편, 몽주는 의문을 품는다. 호우연쇄살인이 자신이 지금까지 김우영의 밑에서 해온 일과 연관이 있을 수도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하지만 박영수는 명단에 없는 사람이다. 수사한 기억이 전혀 없는 사람. 특별한 게 있다면 검찰개혁을 추진한 여당원내대표일 뿐이다.
몽주는 서울로 출발 전 집에 잠깐 들렀는데, 외부의 침입으로 무언가를 찾기 위해 난장판이 되어 있는 거실에서 해태가면을 착용한 암살자의 공격을 받는다. 몽주는 부상을 당하고 혈투 끝에 겨우 목숨은 부지하지만 암살자를 눈앞에서 놓치고 만다. 하지만 몽주는 격투과정에서 벗겨진 해태가면을 통해 암살자가 방원이라는 사실을 알게되고 충격에 빠진다.
몽주가 정도전에게 전화를 건다.
고속도로를 달리던 정도전이 전화를 받고는 급히 차를 돌려 옆으로 빠진다.
방원과 함께 즐겨 찾던 경기도 외곽 저수지 낚시터. 방원이 낚시를 즐기고 있다.
왔어?
몽주가 대꾸도 하지 않고 낚시대를 발로차고 방원의 멱살을 붙잡아 세운다.
너 뭐하는 거야? 너 설마? 박영수….
그래. 맞아.
미쳤어? 너 도대체 뭐하는 거야?
아직도 모르겠어? 세상이 바뀌었고, 우리 시대는 이미 끝났어. 남은 건 명단에 따라 실행할 수 있는 정의 뿐이야.
이게 정의야? 살인은 그 어떤 말로도 정당화 될 수 없어.
그런가? 그럼 난 뭐지? 그들 목숨과 내 목숨이 뭐가 다른 건지 잘모르겠네. 마치 우리가 어떨 땐 검사 같고 또 어떨 땐 아닌 것처럼 말이야.
도대체 뭔 소리를 하는 거야!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방원이 평소에도 즐겨부르는 하여가를 중얼거리며 소주를 병째 들이킨다. 방원의 기억은 25년 전으로 돌아간다.
25년 전, 비밀연구소의 독방. 방원이 10세 때이다. 호우주의보, 마포대교 수위표시 8미터에 팔당댐 방류량 초당 2만 4천톤이라는 뉴스속보는 국가비밀기관에서 내리는 살인지령이라고 세뇌를 받는다.
방원은 자신이 처한 상황. 즉, 명령에 거부하고 배신하면 그 대가로 비밀연구소의 복제소년소녀들이 떼 죽음을 당한다는 사실을 몽주에게 끝내 말하지 못한다. 방원은 아직 이성이 남아 있는 상태로 볼모로 붙잡혀 있는 복제아이들을 외면하지도 못한 채 청소부프로토콜을 수행해온 것이다. 방원은 비밀연구소에서 김우영의 유전자복제로 탄생해 줄곧 세뇌를 당했고, 김우영의 프로토콜에 지배를 받은 채로 성장했다.
몽주. 다음 타깃은 너야. 이번엔 안 봐준다.
도대체 왜! 제발 내가 알던 너로 다시 돌아와.
이 바보 순댕아… 우리 예쁜 몽주 어쩌면 좋아.우린 예전부터 이미 버려진 거야. 이 리스트와 함께.
리스트. 이건 뭔가 잘못 되었다. 잘못 되어도 한참을 잘못 되었다.
몽주가 고민 끝에 결론을 내린다.
아니. 그건 가짜야. 내가 복사한 순간 진짜는 사라지고 가짜 리스트가 너에게 간 거야. 네가 살해한 박영수는 처음부터 우리가 작성한 명단에 없었어. 잘 기억해봐. 박영수는 단지 김우영의 적일 뿐이라고.
다 의미 없어. 나에게 마지막으로 존재가치가 남아 있다면 주인을 위한 장기제공 그것뿐이야.
뭐라고? 장기?
우리의 목숨과 우리가 살리는 목숨은 도대체 뭐가 다른 거지?
방원이 혼자 중얼거리는 말이 무얼 의미하는지 모르겠다.
몽주가 몇년 전에 있었던 일 중 한부분의 기억을 떠올린다.
무슨 일인지 김우영과 함께 홍천 출장을 다녀온 뒤, 방원은 한동안 옆구리 통증을 호소했고 얼굴이 창백했다. 그 얼굴은 슬펐다.
방심한 그 때 방원이 몽주의 목에 주사바늘을 찔러넣는다. 가물가물 사라져가는 의식과 함께 쓰러진 몽주는 방원에게 안긴다.
강원도 홍천 렛미인 산하 비밀연구소.
방원이 10대 시절을 보낸 유리벽 독방 안에서 몽주가 눈을 뜬다. 머리는 칩이 삽입되어 피가 잔뜩 흘러 굳어 있고 의자에 양팔과 다리가 제압 당한 상태로 호우살인마의 진실을 알게된다. 방원이 11번째 피해자를 살해하기 전 자신이 직접 녹화한 영상을 틀어준 것이다.
유리벽이 모니터가 되어 영상을 재생한다.
낡은 공장, 피해자 정치인이 덜덜 떨며 해태가면을 벗은 방원에게 묻는다.
너는 김우영의… 너 도대체 나한테 왜 이러는 거야?
왜는 없어. 지령만 있을 뿐…
지령? 그게 뭐야?
호우살인마는 바로 방원이었고 비밀연구소에 갇혀 성장하는 동안 받아온 세뇌와 명령어로 인해 프로토콜이 발동되면 무조건 따르는 것이었다. 김우영은 복종해야 하는 창조주이자 주인이고 자신은 특별한 기관에서 일하는 특수한 존재로 인식한다. 호우주의보를 시작으로 8미터 수위표시 그리고 팔당댐의 방류까지 삼박자가 일치되면 프로토콜이 발동되어 살인지령으로 받아들인다. 김우영에 의해 업데이트 된 청소명단이 뇌삽입 칩으로 전송되면 그 해당 인물들을 제거해왔던 것이다. 호우연쇄살인의 진실이었다. 김우영과 방원은 이런 식으로 정적을 제거해왔다.
넌 미쳤어.
몽주가 그 사정을 알지 못해 영상만 보고 방원을 그저 미친 인간으로 취급하는 그때 김우영이 유리벽 앞에 등장한다. 김우영이 방원에게 평생을 괴롭혀온 머릿속의 통제칩을 제거해주고 장기기증도 끝내주겠다며 몽주를 제거하라고 명령한다. 권총을 한자루 건네주며.
안 돼….
방원이 뒷걸음질 치는 그 때 유리벽이 다시 모니터가 되어 뉴스속보를 전한다. 강력한 태풍이 한반도를 휩쓴다. 호우주의보에 이어 마포대교 수위표시가 8미터를 넘어 10미터에 도달했고 팔당댐의 방류가 초당 2만4천톤을 넘어서는 역대급 폭우 소식을 전한다. 방원의 눈동자가 생기를 잃고 초점이 사라졌다. 프로토콜이 발동된 것이다. 유리벽이 열린다. 총을 들고 몽주 앞에 선 방원이 총구를 몽주의 이마에 겨냥한다.
하지만 방아쇠는 당겨지지 않는다. 총이 떨린다. 프로토콜의 명령어와 몽주를 향한 좋은 감정과 기억 사이에서 충돌을 일으키는 것이다.
내 이럴 줄 알았어.
결국 김우영이 총을 빼앗더니 방원을 상대로 그 총을 이용해 폭력을 행사한다.
방원은 김우영에게 무차별 폭력을 당하는 과정에서도 프로토콜을 이겨낸다.
못 죽이겠어? 내가 직접 죽여주지.
김우영이 총구를 몽주의 관자놀이에 겨냥한 순간 방원이 달려와 몽주의 머리를 안고 온몸으로 보호한다.
뭐야 너. 이거 사랑인 게야?
김우영이 방원의 뒤통수를 내리쳐 기절시킨 뒤, 몽주를 풀어준다.
쏴.
김우영이 이제는 몽주에게 방원을 쏘라고 지시한다.
총을 건네 받은 몽주는 쏘지 못한다.
경찰나부랭이들 여기까지 들이닥쳤어. 저놈을 쏘면 우린 안전해. 모든 죄는 저놈이 떠안고 가는 거지. 너도 잘 알잖아. 공소권소멸. 피의자가 죽으면 그걸로 끝이야. 신설 중수청이 죽은 놈을 데리고 뭘 할 수 있겠어. 여기 연구소와 관련된 모든 혐의는 저놈과 케비닛 명단의 놈들에게 돌아갈 거야. 명단의 놈들 사실 여기 고객이거든. 그러니 몽주는 나와 같이 가자.
쏴.
몽주가 고개를 젓는다.
같이 가자? 코웃음이 절로 나온다. 방원이 자신을 쐈다면 방원에게 할 소리를 지금 자신에게 하고 있는 것이다.
어허, 너도 이제 5급이면 검사직무대리야! 너도 여엿한 검사라고. 응? 그냥 기소처리 한다고 생각하고 어서 쏴.
몽주가 총구를 돌려 김우영을 겨누는 그 때다. 몽주가 맥없이 쓰러진다. 머리를 부여잡고 고통에 비명을 내지른다.
좋게 말할 때 들어 처먹어. 개죽음 당하기 싫으면.
김우영이 콘트롤러로 몽주의 머릿속 칩을 제어한다.
다시 고통에 빠져 무릎을 꿇는 몽주.
그 때 방원이 깨어나 김우영을 노려본다.
방원이 덤벼들어 김우영을 제압하고 콘트롤러를 빼앗아 발로 차서 구석으로 보낸 뒤 목을 졸라 거의 죽이려하는 순간이다. 이상행동감지 자동폭파 시스템에 의해 칩이 터지고 방원은 사망한다. 몽주의 얼굴로 피가 튀었다.
방원은 평소 사랑하고 아껴왔던 몽주를 죽여야 하는 프로토콜의 명령어를 끝까지 이성의 힘으로 붙잡고 이겨낸 것이다.
몽주가 방원의 죽음 앞에서 멍해져 있다. 김우영은 재빨리 구석으로 움직여 콘트롤러를 주워 다시 손에 쥔다.
그 때 몽주가 김우영을 상대로 주먹을 날려 제압한 뒤 총을 뒤통수에 겨누고는 따져 묻는다. 머리의 통증이 남아 비틀거리며.
기소를 하는 것도, 하지 않는 것도 다 우리 검찰을 위한 조율이라고 그랬었죠? 그래서 이게 조율입니까?
총내려 이 자식아. 쏘지도 못 할거면서.
우리 검찰의 균형을 위한다는 말은 다 거짓이었나요?
우리? 너 착각하지마. 넌 사실 검사가 아니잖아. 누가 들으면 진짜 검산 줄 알겠네.
15년을 당신 말에 복종하고 충성했어. 당신이 말해왔던 조율, 균형…. 당신이 꿈꾸는 세상이 옳다고 믿었으니까. 리스트의 인간들 그 파렴치한 범죄자들 때가 되면 차례차례 기소할 거라 믿었다고! 근데 이게 그 대가야?
그러게 그걸 왜 복사한 게야?
김우영이 슬그머니 몸을 일으키며 돌아선다. 콘트롤러를 보란듯이 손을 앞으로 내민다.
뭐?
몽주야.
다가오지마! 당신은 그걸로 권력을 독점했지만 이제는 아닌 거지. 검찰청 폐지와 함께 힘을 잃으니 지금 이곳이 드러나는 것도 시간문제였고! 그래서 리스트는 이제 쓸모없는 폐품일 뿐이었던 거야!
함부로 지껄이지마. 나는 이 나라를 위해 검찰청 폐지를 어떻게든 막아야 했어! 리스트야 말로 가장 확실했지.
그래서 살인으로? 나라를 위해?
그래! 살인이든 뭐든 난 어떻게든 이 나라에 경종을 울린 거야. 그래봐야 이 나라를 더럽히는 쓰레기 몇놈 사라진 것 뿐이잖아? 지금 장기제공을 기다리다 떨어져 나간 우리 검찰고객과 재벌! 고위공직자들 다 해서 한트럭이야. 그러니 어쩌겠어? 어떻게든 검찰청 폐지를 막았어야지! 내가 힘을 잃는 것은 곧 우리 검찰 전체가 힘을 잃는 거야. 그런데 넌 여전히 남탓만 하는구나. 일어나지 않을 일이 일어난 건 네가 잘못했기 때문이야. 제가 잘못했습니다. 사과했으면 내가 프로토콜을 멈췄고 그렇게 끝날 일을 왜 이렇게까지 하는 게냐?
비겁한 인간. 당신은 내가 복사할 것을 다 알고 있었어! 이런 식으로 죄를 덮어 씌우고 모조리 폐기처분 할 계획이었던 거야.
몽주야. 우리 몽주야. 이몸이 죽고 죽어 일백번 고쳐 죽어도 내 대답은 같아. 난 그저 만에 하나 유출로 인한 우리 검찰시스템 붕괴를 막으려고 미리 대비해두었을 뿐이야. 잘못한 건 너라고.
거짓말! 대한민국 검찰이 당신 거야?
잘 들어. 난 지금 네 머리를 통제할 수 있어. 너의 목숨 줄을 쥐고 있는 게 나라고!
그래 그러니까 눌러. 눌러 봐 이 개자식아! 쏴버릴 테니까!
몽주가 방아쇠에 걸린 손가락에 힘을 주며 곧 찾아올 통증에 대비해 이를 악문다.
잠깐! 어허, 난 분명 폐기 명령을 내렸어. 잘 생각해.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어. 나와 함께 가겠다면 너도 살고 그 아이들도 죽지 않아.
아이들?
그래 아이들. 렛미인의 비밀연구소는 동과 서 양쪽으로 철저히 분리 되어 있어. 생산과 수술 말이야. 여기는 법적으로 아무 문제없는 부자들의 의료시설일 뿐이야. 이곳이 노출되면 생산 연구소는 자동 폐쇄되고 복제아이들 38명이 폐기처분 시스템에 따라 살처분 돼. 하지만 난 그걸 막을 수 있는 시스텀 제어 키를 가지고 있지. 봐.
김우영이 양복 안주머니에서 제어키를 꺼내어 보여준다.
서쪽에 위치한 연구소의 자동폐쇄를 막는 시스템장비인 것이다.
자 그래서 어떻게 할 거야? 너만 눈감으면 방원이 주범이고 명단의 놈들 사실 여기 고객이니까 공범으로 딱 맞아 떨어져. 우리 둘이 합심해서 렛미인의 실체를 밝혀낸 거라고. 너 대검 사무국장 안 할거야? 상황봐서 중수청 힘이 대검보다 더 세지면 중수청 사무국장도 하고. 응? 내가 만들어 줄게. 그거 뭐 어렵나.
#결, 하여가
탕!
몽주가 결국 총을 쏜다. 악인이 따로 없다는 걸 깨달은 것이다. 하지만 총구는 천장을 향했고, 유리벽 모니터 화면에서 전하는 뉴스에서는 태풍 속에서도 경찰인력이 홍천의 한 야산을 일대로 대대적인 수색작전을 펼치고 있다. 잠시 후 밖에서 경찰들이 강제진입을 시도한다.
이를 막는 연구소 경비용역들과 뚫고 들어가려는 경찰의 싸움이 치열하게 펼쳐진다.
시간 없어. 어떻게 할 거야? 방원이처럼 저 불쌍한 아이들 다 죽길바라는 거야?
몽주가 차갑게 굳어버린 방원의 얼굴을 내려다 본다. 우리가 꿈꿔왔던 세상은 무엇이었을까?
몽주가 다시 총을 든다.
죽여버리겠어.
몽주수사관! 총 내려! 다 끝났어. 그만해.
강제진입에 성공한 정도전과 최진욱이 둘 사이에 나타나 몽주를 설득하자, 김우영이 겁에 질린 아이처럼 유난을 떤다.
꽥! 날 쐈어! 저 미친년이 날 쐈다고! 살려줘!
그때 정도전이 김우영을 체포한다. 불법 복제인간 생산 및 장기제공에 따른 윤리법 위반, 호우살인마 살인공범에 살인교사주범으로 미란다원칙이 고지되고 있다.
뭐야? 난 아무 것도 몰라! 이거 왜 이래? 변호사 불러!
김우영이 수갑을 안차려고 발버둥 치는 그 때 뉴스속보가 뜬다.
김우영의 케비닛이 공개된 것이다.
#반전.
원주지청 203호 검사실. 몽주가 복사를 하기 전에 자신이 알고 있는 비밀번호를 치지 않고 생각에 잠겼다가 김우영의 핸드폰 번호를 쳐본다.
실패.
이번에는 김우영의 생년월일. 실패.
이번에는 검사임용된 날. 검사엘리트니까.
통과.
한번 더 친다. 통과.
진짜 명단이 확보된 순간이었다. 몽주는 이 때 이중비밀번호를 통해 확보해두었던 리스트를 낚시터의 방원을 찾아가기 전에 차를 돌려 도착한 정도전에게 건넨 상태였다.
나쁜 일이 생길 거 같아요. 독점하지 않겠다고 약속해요. 저와 연락이 끊어지면 반드시 믿을 수 있는 기자에게 보내세요.
그리고 방원은 몽주를 유리벽 안에 가둘 때부터 이미 실내카메라 영상을 실시간으로 방송국에 전송시킨 상태였다.
공개된 명단과 함께 김우영의 모든 행동과 말을 전 국민이 지켜보고 있었던 것이다.
김우영! 다 끝났어.
김우영의 손목에 수갑이 채워졌다. 경찰들에게 양쪽겨드랑이를 붙잡힌 상태로 질질 끌려나가는 그가 고개를 돌려 몽주를 향해 씩 웃는다. 입모양이 펑! 하며 소리없이 터진다.
어떻게 해야 하나. 이대로 보내면 나도 죽고 얼굴도 모르는 아이들도 죽는다.
몽주가 다시 총을 겨눈다.
김우영을 향해 조준하지만 자동문이 닫히고 경찰인력 사이로 놈의 모습이 감춰진다.
머리가 조여온다.
놈이 콘트롤러를 누른 것이다.
몽주는 쉼호흡과 함께 집중한다.
0.001초만 넘어가도 끝이다.
탕!
총구를 떠난 총알이 거의 닫힌 자동문을 통과해 김우영을 차례대로 막고 있는 첫번째 경찰의 어깨견장을 스치고, 다음 경찰의 귀밑을 스치고, 여경의 머리카락을 세 가닥 잘라 허공에 날린 뒤 정도전의 광대뼈를 스쳐, 걸음을 재촉하라며 김우영의 머리를 짓누르고 있는 최진욱형사의 검지와 중지사이를 통과해 김우영의 뒤통수를 관통한다.
김우영이 맥없이 풀썩 쓰러지자 양쪽에서 겨드랑이를 붙잡고 있던 형사들이 김우영을 놓치고 만다.
콘트롤러가 손에서 빠져나와 바닥을 구른다. 모두가 놀란 눈으로 뒤돌아 몽주를 보았다.
자동문이 닫혀 있다.
총알이 통과라도 한 거야? 우리 머리는… 도대체 어떻게 맞춘거지?
그들의 표정이 말하고 있었다.
특히 최진욱은 자신의 손가락 사이를 스쳐지나간 총알의 뜨거움으로 인해 더욱 더 놀라고 있었다.
비가 그친 서울. 시민들이 광장에 모여 전광판을 바라본다. 시민들의 반응은 충격 그 자체다.
뉴스 앵커.
“오늘 오전, 김우영 전 검찰총장이 호우연쇄살인교사 및 복제인간 윤리법 위반 직권남용 혐의로 긴급 체포 도중 사망하였습니다. 해당 사건은 몽주 수사관의 내부 고발로 밝혀졌으며, 공개된 명단에는 현직 고위공직자 107명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들은 강원도 홍천에 위치한 비밀연구소에서 복제인간을 통해 장기를 제공 받기로….”
몽주가 병원 침대에 누워 있다. 창밖으로 햇살이 들어온다.
정도전이 머리 맡에서 말한다.
아이들 모두 무사합니다. 독가스가 살포되기 일보직전이었죠. 당신 머릿속의 칩도 잘 제게 되었습니다. 당신은 대한민국 검사 이상입니다. 고생했어요.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몽주가 조용히 속삭이며 눈을 감는다. 뺨을 타고 흘러내리는 눈물….
우리의 목숨과 우리가 살리는 사람들의 목숨은 도대체 뭐가 다른 거지?
방원이 웃으며 손을 흔들고는 뒤돌아서더니 빛과 함께 사라지며.
엔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