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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숏츠

삼류작가

명품과 위품

by 임경주



이 나이 먹도록 내가 가진 명품은 단 한 개도 없다.


샤넬을 좋아한다. 생노랑도 좋아한다.

지디가 무대 위에서 샤넬과 생노랑을 입고 춤추고 노래하면 찾아본다.


와우. 가격이 놀랍다.


위품, 일명 짝퉁을 만드는 사람들은 명품을 만든 장인에 대한 미안함과 존경심으로 이건 가짜입니다.라고 짝퉁 어딘가에 자신만의 기호를 새겨 넣는다고 한다. 이것은 일종의 시그니쳐다.

작가에게는 레퍼런스임을 밝히는 것과 같다.


박훈정작가의 -지금은 감독님- 부당거래는 지금도 충무로에서 바이블로 통한다. 이 정도만 써내면 어느 제작사 투자사도 콜 한다. 서로 모셔간다. 영화 시나리오 작가를 꿈꾸는 예비작가들은 부당거래를 필사한다. 나도 한번 필사했다. 레퍼런스도 해봤다. 근데 누구 하나 알아주는 사람이 없다. 난 기가 막히게 썼다고 생각하는데 읽는 사람은 아닌가 보다. 재미없나 보다.


근데 솔직히 부당거래 이후 직접 메가폰을 잡은 신세계는 무간도의 기릿바시다. 레퍼런스도 아니다. 자투리다.

하지만 신세계에는 박훈정작가만이 해낼 수 있는 독특한 색깔과 힘이 들어가 있다. 거기에 이 나라를 대표하는 명품 배우들이 그 색깔과 힘을 더 빛나게 살려주었다.


장르작가는 이야기를 만드는 사람이다.

하늘 아래 새로운 건 없다.

내가 만든 그 이야기가 이미 있던 이야기를 흉내 냈든 말든 자기만의 색깔과 힘으로 탈바꿈시키고 그게 먹히면 성공한 거다.


쉬워 보이겠지만, 이걸 해내는 작가는 굉장히 드물다. 해내면 어느 판이든 우뚝 서는 게 현실이다. 이것이 바로 장르문학이자 상업문학이다.


오직 글 하나만으로, 글을 써서 발생하는 수익 하나 만으로 애 셋을 키우며 사는 작가가 있다. 자리 잡기 전까지는 고생을 엄청 많이 한 친군데 지금은 어디 중소기업 꾸준히 다니는 회사원보다 훨씬 더 잘살고 풍요롭다.


글쓰기는 자기만의 색깔과 힘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둔재에게는 일생을 함께 해야 할 기나긴 여정이겠지만 천재에게는 아주 짧은 순간이다.


아마라면 모르겠지만, 프로작가의 글쓰기는 배설이 아니다. 토하는 것도 아니다. 설계다.

얼굴도 모르는 남들이 내 글에 돈을 지불하는 이유는 자기만의 색깔과 그 위대한 힘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주어진 큰 책임이라는 배에 함께 승선했기 때문일 것이다.

프로는 자기가 쓴 글에 책임을 져야 한다.


기릿바시를 사용하든, 레퍼런스를 하든, 대놓고 표절을 하든 내가 뒤틀고 바꾸어 새로운 메시지를 전하면 그건 이미 짝퉁이 아닌 명품이다.

하늘 아래 새로운 건 없다.


쉬워 보일 것이다. 순문학만 해온 어떤 삼류 작가는 이 판이 우습게도 보일 것이고. 하지만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해내면 사람 팔자가 뒤바뀌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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