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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숏츠

위대한 인간

높은 직업

by 임경주



난 직업에 귀천이 없다고 보는 사람이다.

하지만 높은 직업은 있다. 분명 있다.


이게 말이야 방귀야. 앞뒤가 안 맞잖아?


내가 결혼하고 만난 장모님은 손가락 특정부위에 지문이 없다. 디테일하게 설명하고 싶지만 이 글을 내 아내가 혹시나 보고 속상해할까 봐 이 정도로만 말한다.


닳고 닳아 없어진 것이다. 처녀 때부터 해왔던 힘든 노동 때문이다. 나는 상상도 못 할 그 힘들고 지난했을 노동을 아주 오래 하신 탓에, 세상에나 사람 손의 지문이 사라진 거다.


다들 믿지 못할 것이다. 근데 이건 100 퍼 팩트다.


난 남의 지문을 극도로 혐오해 누가 내 물건을 만지는 걸 용납하지 못한다. 누가 내 물건을 만졌으면 그건 더 이상 내 것이 아니라 그 사람 것이다.

그래서 악수도 싫다. 도장이 찍히는 것 같다. 근데 난 우리 장모님 손 잘 잡는다. 화장실 다녀와서 손을 안 씻은 거 같으시기도 한데 그래도 좋아서 내가 먼저 손을 잡는다. 여자 손가락 마디 두께가 남자인 내 손마디 두 배다. 뒤틀려 있다. 임서방은 손이 여자 손이네. 고와. 어머님은 내 손을 보며 예쁘다고 하시지만 난 내 손이 싫다. 아버지 손을 쏙 빼다 박았다. 자기 손은 거꾸로 봐야 제대로 보인다. 내 손을 거꾸로 보면 진짜 게을러터져 보인다. 찌드런하고 긴 게 여자 손도 아니고 참 꼴 보기 싫다.

이게 예술가 손이라고 한다. 하지만 난 내 손이 싫다. 정말 싫다. 난 장모님 손이 좋다. 장모님 손을 계속 잡고 있으면 장모님이 임서방 그만해 그러시면서 손을 빼신다. 당연히 맨 정신이 아니다. 많이 마시면 꼭 이런다. 집사람은 저 인간 또 시작했네 그러고. 난 그래도 은근슬쩍 또 장모님 손을 잡고 어깨도 막 주물러드린다.

내 어머니 아버지 돌아가시기 전에 해드리지 못해서 가슴에 맺혀 있는 말도 다한다. 어머니 진짜 고생 많으셨겠어요. 세상에 이 손 봐. 얼마나 힘드셨겠어. 당신 잘해라 진짜.


적당히 해라. 아내가 슬슬 경고를 주면 나도 눈치 까고 꼬리를 내린다.


그런 생각을 해본다. 자식들 위해 얼마나 고생하셨을까. 어머님 손을 잡으면 내 친아버지의 이론적인 가르침을 행동으로 보여주는 그 마음이 전해져 오는 과정이 너무 좋다.


오직 의미 있는 것은 행동뿐이다.


그러면 내 아버지의 평생 공부와 서예는 행동이 아닐까?

그건 또 아니다.


작년 여름 탐탐에서 쥔장 눈치 보면서 죽기 살기로 글을 쓰고 있는데 동네 친한 형이 라운딩을 다녀오는 길에 내가 앉아 작업하고 있는 탁자 앞에 그 골프 멤버들이랑 우연히 앉았다.

어, 임작가? 아이고 형님 하면서 반가워하는데 이 형님 다음 말이 가관이다.

이야 좋네. 이 뜨건 여름에 시원한 에어컨 아래 시원한 커피 쪽쪽 빨아 가면서. 와 임작가는 회사에서 돈 벌지 여기서도 돈 벌지 임작가 돈 너무 거저 버는 거 아냐?


이런 미친.

난 너무 화가 났지만 네네 하면서 어서 들어가시라고 말했다.

그들이 떠나면서 소곤거리는데 작가야? 응 작가야. 좋네. 시원한 데서 돈 벌고. 나도 글이나 써볼까?

이런다.

와 저 개 쉐리들. 내가 봤을 땐 다 백도리들이다. 저런 마인드로 공쳐봐야 공이 허락해 줄 리가 없는 인간들이다.

뭘 해도 뒤떨어질 인간들이고 남들 노력하는 거는 절대로 못 보고 부러운 것만 보고 그걸 또 요행이라고 생각하는 작자들이 틀림없다. 저런 인간들이 동네에서 건들건들거리면 그게 바로 시정잡배들이다.


내가 탐탐 입구 뙤약볕 아래에서 돗자리 깔고 쭈그려 앉아 밭에서 일하는 것처럼 태양을 온몸으로 맞으며 글을 써야 일하는 걸로 알려나? 노는 건 너희들이지 내가 지금 너네들이랑 똑같이 노는 걸로 보여?


내가 골프에 올인했으면 당신들 다 내 발아래 있을 건데 내가 도대체 뭔 부귀영화를 누려보겠다고 여기서 이러고

있을까.


막 화가 나는 건 아니고 그냥 좀 신경 쓰였다는 말을 하고 싶다.


말을 하다 보니 삼천포로 빠졌는데, 어쨌든 사람 먹고사는 일에 직업의 높낮이는 없다는 거다. 육체적인 노동이나 정신적인 노동이나, 누구나 어떤 것이든 일이 되면 책임이 따르기 때문에 그건 힘든 일이 되는 것이다. 다들 각자의 분야와 위치에서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고 노력하는 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높은 직업은 무엇이냐.


엄마가 심근경색으로 쓰러지고 지방 대학병원에서는 늦었다고 수술을 회피하는데 우리 자식들은 어떻게든 엄마 이대로는 못 보낸다 울며불며 살려보겠다고 서울대병원으로 갔다. 이것저것 중간 생략하고 수술을 하게 되었는데 24시간을 예상했던 수술이 12시간쯤 지나서 한 의사가 나와 수술 잘되었다고 말해주었다.

가족들은 환호성을 내질렀고 그 의사가 절대자라도 되는 것처럼 굽신굽신 인사를 하고 병원 정문 근처에 잡아둔 여관으로 돌아가 하루의 피로를 마감했다.

난 혼자 남아 병원 복도를 서성거리는데 5시간쯤 지났나? 새벽 3시쯤 되었을 거다.

집도의가 나와 주변을 두리번거리더니 가족들 다 어디 갔어요?

이런다.

아까 어떤 의사분 나오셔서 수술 잘 되었다는 말 듣고 다 안심하고 자러 갔다니까 이 집도의 어이없어하며 말문이 막혀 한동안 말을 못 하더니.


내가 일 년에 심장 수술을 200번 넘게 하는데 이런 가족은 또 첨보네. 따라 들어와요!

이런다.

뭐지? 왜 화를 내지? 방진복 입고 마스크 차고 뒤따라 들어갔는데 17시간 대수술이 그 때야 뭔지 알겠더라. 주변을 최대한 치운다고는 치웠지만 남아 있는 바닥의 피와 수술이 남긴 흔적들은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이 신경질적인 집도의가 사람을 살리겠다고 얼마나 열심히 집중하고 집중했는지 알 것 같았다.

수술실 들어가기 전과는 정말 다르게 황달로 퉁퉁 부은 엄마를 보는 순간 눈물이 막 쏟아져 펑펑 우는데 이 의사양반 옆에 다가와서 어머님 최소 5년은 가족들과 함께 하실 수 있을 겁니다. 그러고는 그만 나가란다.

나는 질질 짜면서 복도로 나왔고 계속 훌쩍거리고 있는데 그 의사가 옷을 갈아입고는 복도로 나와 가던 길 갈 것 같더니 뒤돌아 나에게 다가왔다.


환자를 살리는 건요 가족들 사랑입니다. 저는 요만한 지식이 있어서 앞에 있는 거지!


이러면서 닥스 재킷을 슈퍼맨 망토처럼 휙 돌려 걸쳐 입고는 어머님 요양원 보내지 마세요. 아시겠어요?

이러고는 여전한 신경질적인 태도로 뒤돌아 가버렸다.


그때 그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난 그 의사 선생님 사라질 때까지 멍하니 뒷모습만 바라보았던 것 같다.

위대한 사람의 모습이 바로 저런 모습이구나. 그런 생각만 하고 있었던 것 같다.


지금도 식구들 만나면 이 말이 나온다. 누나 중 한 명은 자기가 의사면 돈 받고 사람 고치면 그만이지 뭘 가르치려고 드냐고 지금도 똑같이 화를 낸다. 그때 그 중간보고를 해준 의사가 영광 다 차지한 거라면서.


엄마는 결국 요양원에서 생을 마감하셨다.

그 의사의 말대로 5년을 사셨는데 5년 차 그 해 초까지는 가족들과 함께 했다.


직업의 귀천은 없다. 하지만 분명 높은 직업은 있다. 사람을 살리기 때문에 높다는 것이 아니다. 그것이 정신적인 노동이든 육체적인 노동이든 자신을 헌신하고 사랑과 책임으로 임하며 오직 의미 있는 행동으로 직접 보여주고 일하는 사람이기에 그는 자신의 직업을 높게 만든다.

그래서 직업의 귀천은 없지만, 분명 높은 직업은 있는 게 맞다고 본다. 그것은 맡은 바 책임을 다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존경이다.


우리는 대자연의 장관을 보면 압도를 당한다. 압도를 당하는 건 그 안에 담긴 숭고함 때문이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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