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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숏츠

산 자와 죽은 자

너무 예쁜 아이

by 임경주



장령산을 갔다.

아버지기일이라 식구들이 다 모였다. 아버지는 625 참전용사라 대전 현충원에 잠드셨다.

대전 현충원에 들러 엄마랑 합장된 묘비 아래에서 아버지께 술을 따라 드렸다. 아버지는 젊은 시절 유교에 심취한 분이시다. 영숙이랑 말자만 생각하고 있는 어린 날 앞에 앉혀두고 우리 인간이 제사를 지내는 목적은 죽은 자를 위한 행위가 아닌 산자를 위한 행위라고 말씀하셨다. 이게 유교에서 말하는 진짜 제사의 목적이란다. 귀신을 위한 행위나 그런 비슷한 목적으로 의식을 펼치는 건 유교가 아니라고 선을 긋고 단정 지어 말하셨다.

그 딴 놈들 다 사이빈거지.


산자를 위한 행위. 제사가 어떻게 산자를 위한 행위가 될 수 있을까.


아부지. 그런데요 제사는 자식들이 조상귀신을 모셔 식사 대접하는 거잖아요. 그러면 제사의 목적은 죽은 자를 위한 행위인 거지 어떻게 이게 산자를 위한 행위라는 건지 이해 못 하겠는데요.


반문하고 싶었지만 밖에서 날 눈이 빠지게 기다리고 있을 영숙이 때문에 참았던 기억이 난다.


옥천 장령산 아래 펜션을 잡고 식구들은 신나게 노는데 혼자 머리가 복잡해져서 산책을 나섰다.

들꽃이 예뻐 사진을 찍었다. 찍어서 보니 더 예쁘다.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사진을 보냈다. 누구는 예쁘다고 그러고 누구는 대답도 없다.


꽃들이 예쁜 이유는 살아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렇게 예쁜 널 위해 난 뭘 해줄 수 있을까.


우리는 죽음 앞에서 내 삶을 한 번쯤 되돌아본다.

아버지의 묘비와 그 앞에서 술을 따라 올리는 나 사이에는 분명 경계가 있다.

아버지의 묘비는 죽은 자의 영역이고 그 앞에서 술을 따라 올리는 나는 산자의 영역을 대표한다. 간소한 제사상은 죽은 자를 위한 것이지만 결국엔 산자들이 나누어 먹으며 담소를 나눈다.

아버지의 묘비와 나. 죽은 자와 산 자의 경계.

이 경계에서 난 내 삶을 되돌아본다. 소중한 삶이다.

예쁜 꽃이다.


제사는 죽은 자를 위한 행위가 아닌 우리 산자를 위한 행위라는 아버지의 말씀을 이제 조금은 알 것도 같다.


간밤에 내린 비로 계곡 물이 많이 불었다. 거세게 흐른다.

홀로 산행을 하다 펜션으로 돌아오는 길에 아주 예쁜 아이를 보았다.

너무 예뻐 물가에 내놓은 애기처럼 내가 다 걱정이 될 정도로 예쁜 아이였다.


옆에서 계속 지켜주고 싶고 뭘 주고 싶은데 그 예쁜 아이가 오해할까 봐 그냥 웃기만 했다.

하마터면,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잃을 뻔했던 것 같다.


이제는 돌아갈 시간이다.

안녕 예쁜 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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